[이동희의 노크노크] 그때 노동이 뭔지 배웠더라면
[이동희의 노크노크] 그때 노동이 뭔지 배웠더라면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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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기자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대학 시절 ‘기사쓰기’ 혹은 ‘글쓰기’와 관련된 전공 수업을 멀리하는(필수 전공의 경우에는 멀리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바 있는 대학 친구들은 “네가 기자가 될 줄 몰랐다”며 지금도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내 졸업장에 찍힌 전공은 ‘신문방송학’이다. 쉽게 말해 신문으로 대표되는 지면 매체와 방송으로 대표되는 영상 매체를 배우는 과목인데, 시대에 흐름에 맞게(?) 신문보다는 방송에 대한 학생들의 니즈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실제로 내가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신문방송학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존재했었는데(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 환상을 불러일으킨 것 역시 신문보다는 방송이었다. 내가 입학하기 훨씬 전부터 방송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가 인기를 탔고, 신문방송학과 인기도 함께 치솟았다.

나 역시 화려해 보이는 방송계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사쓰기’도 멀리했지만 ‘영상제작’을 더 멀리했던 나였기에(멀리하지 않은 수업이 있기는 했나.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매체 종류와 상관없이 모든 ‘실습’ 수업을 멀리했던 것 같다) 방송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그저 ‘빡세다’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됐던 방송 스태프의 구조와 현실이 죽음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몰랐다. 관심도 없을뿐더러 직접 목격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쪽 업계는 원래 ‘그렇다더라’ 식의 무책임한 무관심만 있었다.

지난 4일, 2004년부터 14년간 CJB청주방송에서 아이템 선정, 섭외, 구성, 촬영, 편집 업무를 ‘정규직과 똑같이’ 일했던 故 이재학 PD의 죽음이 있었다. 14년 근속에도 월급은 160만 원. 동료 프리랜서 피디를 대신해 처음으로 인건비 인상과 인력 충원을 요구했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회사의 해고 통보였다. 그렇게 그는 프리랜서 고용과 해고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왜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없지?” 방송 스태프의 죽음이 전해질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다. 졸업까지 무려 4년이다. 영상 편집 기법을 알려줬던 교수 중 누구도 방송 스태프의 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방송 스태프에게 어떤 부당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는 무엇인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이걸 가장 먼저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원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방송작가‘였던’ 친구가 생각난다.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지금은 씩씩하게 공부 중인 내 친구. 그때 우리가 노동이 뭔지 배웠더라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친구는 꿈이었던 방송작가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