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은 여성 건강권 침해”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은 여성 건강권 침해”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2.26 14:17
  • 수정 2020.02.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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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보건휴가 무급’ 조항 신설
공무원 노동계, 정부의 일방적 결정 비판… “지방분권 시대에 역행”
지난해 12월 23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청와대 앞에서 행정안전부의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공동 개최했다. ⓒ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지난해 12월 23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청와대 앞에서 행정안전부의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공동 개최했다. ⓒ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지난해 10월 10일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가 입법 예고한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안이 통과돼 2020년 1월 1일부터 여성 지방공무원의 보건휴가를 무급으로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에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시군구연맹, 위원장 공주석)은 “각 지자체 조례로 정하던 여성공무원의 보건휴가를 복무규정으로 무급 규정하는 건 헌법에 명시된 지방자치분권제를 훼손하는 행위이자 자치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시군구연맹은 해당 개정안 반대 의사를 정부에 재차 전달하고 2020년 대정부 교섭에서 이를 재논의할 계획이다.

*보건휴가의 원래 용어는 생리휴가였으나, 정부는 지난 2018년 여성노동자가 이 용어를 사용해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하기에 불편함이 있다는 제안에 따라 보건휴가로 용어를 변경했다. 해당 기사에서도 용어를 ‘보건휴가’로 통일한다.

여성노동자의 보건휴가, 어제와 오늘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 여성노동자의 보건휴가는 유급으로 주어졌다. 당시 생리기간 중 격무가 임신에 미치는 폐해가 많고, 일본처럼 보건휴가가 무급으로 주어질 경우 우리나라 실정상 가족 생계를 위해 여성노동자가 보건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월 1일의 유급휴가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 결과 “사용자는 여성노동자가 보건휴가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월 1일의 유급보건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근로기준법에 담겼다.

근로기준법상 유급이 보장됐던 보건휴가가 무급으로 전환된 것은 2003년이다. 주5일 40시간제가 법적으로 적용되면서 보건휴가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폐지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해 보건휴가는 유급에서 무급으로 바뀌었으며, 근로기준법에서 ‘유급보건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문구가 ‘보건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문구로 변경됐다. 다만, 노사의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에서 보건휴가를 유급으로 합의했다면 유급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는 노조와 단체협약을 맺어 보건휴가를 유급으로 명시하고 보건휴가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조례를 제정해 사용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30일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을 개정해 보건휴가를 무급화한다고 밝혔다. 기존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에는 보건휴가와 관련된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개정안에는 보건휴가를 무급으로 한다는 신설조항이 담겼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23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공동개최하고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은 여성의 건강권 침해”라며 “보건휴가의 무급화 강제는 전체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대·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기본권을 박탈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보건휴가 무급화 시도 중단 ▲보건휴가 유급화를 위한 규정 개정 ▲여성 건강권 보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양대 공무원노조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입법 예고안대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정부의 일방적 통제, 지방분권 시대에 맞지 않아”

지방공무원 여성보건휴가 무급화의 문제점을 보다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송민주 인천중구공무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동안 인천중구청 여성 공무원노동자는 인천시 중구 공무원 복무 조례에 따라 매월 1일 생리기간 중 휴식과 임신한 경우의 검진을 위하여 보건휴가를 유급으로 보장받았지만, 이번 지방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으로 더 이상 유급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송민주 수석부위원장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가장 먼저 비판하며 “노동조건이 후퇴되는 내용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월 대정부 교섭을 통해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직접 관련 있는 법령을 제정 및 개정할 때는 노조의 의견을 수렴할 것을 약속한 바 있는데, 이번 보건휴가 무급화는 노동자의 건강권이 담긴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송민주 수석부위원장은 “노사 합의 없는 노동조건 후퇴는 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정부는 대정부 교섭이 다시 시작된 해에 후퇴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며 “이는 상호 간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부의 움직임이 지방분권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지방분권 실현을 앞세우고 있는 정부가 각 지자체와 노조가 자율적인 협상을 통해 이룬 보건휴가 유급화를 ‘중앙의 통제로’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송민주 수석부위원장은 “근로기준법에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서 보건휴가가 무급이니 지방공무원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는 지방분권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 발상”이라며 “이 논리대로라면 국가공무원 복무규정과 지방공무원 복무규정을 따로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미 무급이든, 유급이든 각 지자체 실정에 따라 조례로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국가에서 통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연월 공노총 위원장 역시 “국가에서 복무규정을 강제로 개정하는 것이 진정 양성평등, 보호라는 정책을 실현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진정으로 되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보건휴가를 무급화하면 보건휴가 취지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사용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건휴가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송민주 수석부위원장은 여성의 생리를 골치 아픈 문제로 치부하는 인식을 버리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사용률을 높이고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보건휴가를 유급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대한민국헌법 제36조에 따르면 국가는 모성의 모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나와 있지 않은가. 과연 우리 사회가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모성보호 취지에 맞게 움직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