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대’에서 ‘전략적 제휴’로, 뭐가 달라졌나
‘정책연대’에서 ‘전략적 제휴’로, 뭐가 달라졌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20.02.26 21:07
  • 수정 2020.02.26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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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정당에 끌려가지 않고 노동정책 주도하겠다 의지 천명
정기대의원대회에 총선방침(안) 상정 … 모바일 투표로 결정
지난 2월 11일 27대 한국노총 집행부와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은영 기자 eykang@laborplus.co.kr

‘정책연대’에서 ‘전략적 제휴’로. 현재까지 한국노총의 정치방침 변화를 키워드로 정리하면 이 두 표현으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지난 대선까지는 정책연대협약이라는 강한 고리였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전략적 제휴로 느슨해졌다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모바일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노총 2020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총선방침이 어떻게 결정될지 주목된다.

한국노총은 이번 정기대의원대회에 ‘제21대 총선 한국노총 방침(안)’을 안건으로 상정해 26일 현재 대의원들의 모바일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모바일 투표는 27일까지 계속된다.

상정된 총선방침(안)은 ▲ 노동정책 후퇴 저지와 반노동정책 무력화 ▲ 노동존중 정책협약 이행과 노동존중사회 실현의 교두보 마련 ▲ 4.15 총선 승리 실천단 구성·운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및 더불어민주당과 ‘대선승리 노동존중 정책연대협약’을 체결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여했지만, 이후 정부·여당은 노동존중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노조법 개정, ILO 기본협약 비준, 타임오프제, 최저임금 산입범위, 유연근무제 등 노동계가 집권세력의 노동정책에 의구심을 가질만한 사안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27대 임원선거에서 ‘정책협약 원점 재검토’를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할 총선방침에 관심이 모아졌고, 김동명 집행부가 ‘정책협약 파기’를 들고 나오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에 상정된 총선방침(안)을 놓고 보면 적어도 정책협약을 파기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난 대선에서와 같이 협약 체결을 통해 특정 정당과 연대하는 방안도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기존의 ‘정책연대’에서 ‘전략적 제휴’로 선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총선방침(안)에는 정기대의원대회 이후 세부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전제로,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한국노총 지지후보를 결정하고, 노동사회정책을 각 정당의 노동공약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정당의 선거대책기구에 참여하는 한편, 각 정당 초청 토론회를 통해 한국노총이 요구하는 노동사회정책이 각 정당의 노동공약에 반영될 수 있게 하고 지역별로 정책 반영을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는 등의 활동계획이 포함돼 있다.

활동계획에서 드러나는 한국노총의 총선방침은 한국노총이 요구하는 ‘노동사회정책’을 각 정당의 노동공약에 반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이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특정 정당과의 정책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정당 중심으로 흘러갈 총선에서 정당에 끌려가기보다는, 한국노총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하고 각 정당이 이를 수용하게 함으로써 한국노총이 노동정책을 주도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김동명 집행부의 의지가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정당보다 ‘정책’을 중심으로 총선에 대응함으로써 그동안 정치방침에 따라 한국노총 내부에서 발생했던 조직적 갈등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 같은 기조에 따라 한국노총은 지난 2월 3일 정책연대협약의 파트너였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고용노동부에 ‘노동현안 관련 정부·여당의 공식입장’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다. 이를 통해 정부·여당의 노동존중정책 후퇴 기조에 대해 경고하고, 한국노총과 정부·여당의 관계를 재확립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 같은 한국노총의 질의서에 더불어민주당과 고용노동부는 2월 10일자로 한국노총에 회신을 보내 정책연대협약의 과제를 이행할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중앙노정협의회, 더불어민주당 내 책임의원 제도 시행, 총선 이후 고위급 정책협의회 개최를 통한 정책협약 이행 프로세스 추진 등을 약속했다.

한국노총은 또 2월 10일자로 주요 6개 정당에 ‘21대 총선 노동사회정책 공개질의서’를 보내 각 정당으로 하여금 한국노총의 노동사회정책에 대한 동의 여부를 답하게 했다. 그 결과 2월 14일까지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이 답변을 보냈고,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은 답변 제출 불가를 통보했다. 이후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은 민생당으로,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은 미래통합당으로 각각 통합 출범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할 때 한국노총이 기존의 정책연대협약 파트너였던 민주당과 결별하고 보수야당과 손을 잡는 길을 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한국노총 핵심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노총은 공개질의서에 답변하지 않거나 반노동적인 노동정책을 내놓은 정당에 대해서는 ‘심판대상’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총선 이후 21대 국회 개원 전까지 이른바 ‘20대 반통법’을 위해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비롯한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대 반통법이란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법’이라는 뜻으로 가구생계비 결정 기준, 해고제한법, 1년 미만 근속노동자 퇴직급여 보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한국노총은 4.15 총선을 계기로 활용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에 제동을 걸고 노동존중의 가치를 정치적·사회적으로 다시 환기하는 한편, 한국노총이 요구하는 노동사회정책을 각 정당이 수용하도록 요구하고, 이후 총선 결과 구성될 21대 국회에서 한국노총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동명 위원장이 정치방침과 관련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집권여당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포함돼 있다. 김동명 위원장은 선거 과정과 취임 이후 일관되게 ‘노동을 민원인으로 취급하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즉 노동계는 민원인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제시한 ▲각 산별연맹과 정부 부처 간 노정협의체 구성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운영 내실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업종별 노사정협의체 구성 등의 요구에 대한 집권세력의 반응에 따라 총선에서의 한국노총의 행보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이 같은 집행부의 총선방침(안)에 대해 대의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정치권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