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멈추랴! 교육공무직본부의 새로운 10년
누가 우리를 멈추랴! 교육공무직본부의 새로운 10년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3.01 16:09
  • 수정 2020.03.01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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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윤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현장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이윤희(55·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해마다 재계약하는 학교 급식실 조리원으로 2004년 일을 시작했다. 3월이면 불안했다. 학교 재정이 부족하면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서로 지목해 사람이 잘려 나갔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모멸감”이 들었다. 처우는 부당했고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었다. 그는 학교가 단지 번거롭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적립하지 않고 해마다 정산하는 문제 때문에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부당함에 직접 나서야겠다고 마음먹고 2008년 처음으로 학교에 반발했다. 결국 학교는 퇴직금을 적립식으로 바꿨다.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는 노조가 있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행동했다. 함께할 사람들을 꾸렸다. 그렇게 인천 지역에서 공무직본부의 전신인 전회련 인천지부가 2012년 출범했다. 그 뒤로 “365일 24시간 노조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는 이윤희 본부장은 교육공무직본부 6기 본부장으로 2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공무직본부의 10년을 함께했고 앞으로 10년의 첫걸음도 막 뗀 이윤희 본부장을 2월 17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현장에서 만나봤다. 

이윤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이윤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 이현석 studio175@gmail.com

“내 장기는 ‘현장’이다” 

- 임기 한 달 차다. 늦었지만 공무직본부 6기 본부장으로 나선 배경을 먼저 묻고 싶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웃음) 인천을 떠날 생각을 못 해봤다. 두려움도 있었고. 그러다 지난해 공무직본부 16개 지부장단 중 본부장이 나와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때 여러 사람이 날 추천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려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진심을 다해서, 조합원들이 부당함을 느끼는 학교현장을 하나씩 바꿔나가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간부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큰 꿈을 꿨으면 아마 안 했을 거다.

- 공무직본부 10년사 <누가 우리를 멈추랴!>(2019)에 기록된 내용을 보니 ‘현장’이 본부장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인 것 같다. 
나는 거창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포부, 목표, 계획은 꼭 필요하지만 전문적인 정책국과 조직국에서 다 세우는 거니까. 함께 방향을 잡고 뚜벅뚜벅 가면 언젠가는 도달할 거다. 중요한 건 현장과 동떨어진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조합원은 당장 힘든데 혼자 엄청난 꿈을 향해 간다면 그 갭은 무엇으로 채울 건가? 조합원들한테도 먼 이야기일 테고. 조합원 생각이 내 생각이고 내 생각이 조합원 생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 본부장이 이끌어온 인천지부는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으로 직종별 갈등이 거의 없고 결집력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하더라. 
내가 사람 마음 사는 기술이 있다. (웃음) 조합원들이 아파하는 부분을 잘 알아챈다. 어려움을 공감하고 끌어안아 주면서 조합원들의 마음을 많이 샀다. 그래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연예인 같네, 연예인 같아! (하하!) 

- 인천지부에서 초기에 조직화할 때 매일 학교를 돌면서 하루에 가입원서를 열 몇 장씩 받았다고. 
지부장으로서 내가 먼저 뛰어다녔다. 그래야 사람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현장 가는 걸 잘하기도 했고. 그게 내 장기다. 당시에는 급식실 쉬는시간 2시간 동안 혼자 열두 군데도 뛰었다. 인사하면 쫓겨나기도 하고 그다음에 또 가면 또 쫓겨나기도 했다. 그렇게 2016년 4월에는 혼자 400명을 조직해서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지금도 울컥한다. 현장에서 뛴 결과들이 그렇게 조금씩 눈에 보였다. 지난해 7월 총파업 때는 인천지부 조직률이 50%였다. 두 학교 중 한 학교가 파업에 참여한 거다. 물론 힘든 과정이었지만 점점 조합원들도 내 마음을 알아줬기에 가능했다.

- 김미경 수석부본부장과 김진희 사무처장은 어떤 분들인가? 
김미경 수석부본부장은 전회련 시절부터 나보다 먼저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충북지부장으로 조직을 탄탄하게 다져 충북 지역이 공무직본부에서 다수 노조로 성장하도록 기반을 다진 분이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추진력도 좋다. 보물 같은 간부다. 김진희 사무처장은 경기지부에서 활동했던 분이고 깊은 친분은 없었지만 노조 활동하면서 멋있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한 분이다. 외모만 보고 카리스마가 넘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일해 보니 굉장히 꼼꼼하다. 두 분을 추천도 받았지만 내가 참 잘 선택한 멤버들이라고 생각한다.
 

김진희 사무처장, 이윤희 본부장, 김미경 수석부본부장 ⓒ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김진희 사무처장, 이윤희 본부장, 김미경 수석부본부장 ⓒ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공무직위원회’ 출범 앞둔 2020년 

- 지난해 7월 총파업 이후 집단교섭은 어떻게 평가하나? 
공무직위원회 신설이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공무직 관련해 첫 종합대책을 추진하는 정부 기구가 만들어졌다. 다른 성과는 임금 인상 정도다. 사실 지난해 교섭은 거의 사측에 밀렸다. 교육청끼리 상황 공유를 하며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어느 지역도 절대 뚫리지 말자'는 식으로 담합했다. 게다가 교육감이 교섭의 주체인데 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교섭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시간만 계속 늘어지고 교섭은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투쟁은 투쟁대로 고생스럽게 했지만 모든 직군이 똑같은 성과를 가져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직종들은 소외받는 안에 합의해야 했다. 

- 올해 단체교섭에서는 어떤 대책 마련했나? 
올해는 책임 있는 주체가 나오지 않으면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내용 등 우리 요구안 다섯 가지 정도를 사측에 먼저 제시할 계획이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단체교섭을 깨고 각 지역으로 돌아갈 각오도 하고 있다.

-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이 크게 ▲교육공무직 완성 ▲ 학교 제도 및 문화 개선 ▲ 조직 역량 확대 ▲ 연대 강화 등이다. 최우선으로 진행할 공약은? (*정책과 공약은 김태형 정책국장이 함께 답변했다.)
(이윤희) 하나를 꼽기는 어렵고 모두 중요하다.

(김태형) 중장기적으로 계획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착수는 바로 들어간다. 당장은 공무직위원회 대응이 중요할 것 같다. 

- 공무직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는데.
(김태형) 본부만의 대응이 아니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간 공동 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과 함께 전략을 수립하고 대응하고 있다. 중요한 건 현재 공무직위원회 구조가 전문가 중심이고 노동계는 의견 수렴만 하는 방식이라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보다 노정교섭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공무직본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면서 투쟁 계획도 논의 중이다. 

(이윤희) 2018년에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에서 인천시교육청 전환 심의위원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 구성원 10명 중 노측은 3명뿐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사측 마음대로였다. 표결로 가니까 심한 표현으로 우리가 박살났다. 당시 인천시 정규직 전환율은 0.5%에 그쳤다. 그 뒤로 지난해 7월 총파업 이후 성과를 낸 것이 공무직위원회 신설이다.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와는 다르게 가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윤곽은 3~4월에 나올 것 같다. 

- 공무직본부에서는 2012년부터 교육공무직 법제화를 위한 투쟁을 해왔다. 법제화가 이뤄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윤희) 사회문제라고 본다. 지금 좋은 일자리도 많지 않고 청년들이 취업하기 어렵다. 본인들처럼 힘들게 입사하지 않은 사람들이 몇 년 투쟁을 통해 공무원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입직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은 당연한 건가? 이런 문제는 깊숙한 사회문제고 모두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김태형) 이언주 의원이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표현했듯 학교 비정규직의 노동을 여전히 낮게 평가하는 인식이 여전히 사회에 만연하다. 또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드러나는 노동자 간 경쟁, 분할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 올해는 적극적으로 사회연대나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사업, 캠페인 등을 고민하고 있다. 

- 그래서 공약에도 ‘사회연대’가 강조된 건가. 
(이윤희) 맞다. 학교 비정규직도 월급 30, 50만 원만 받으며 스스로 ‘반찬값만 벌면 되지’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10여 년 투쟁을 통해 많은 성과를 얻어냈다. 이제 뒤돌아보니 우리보다 더 열악한 노동자들이 많이 보인다. 연대를 통해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고 전체를 끌어올리는 일도 노조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김태형) 보통 노조에서 연대라고 하면 다른 투쟁과 결합하는 것이라도 생각한다. 이 부분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무직본부에서 생각하는 연대는 노동자 간 격차를 인식하고, 그 격차를 줄이는 과정에서 단결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민간영역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확대하는 연대사업을 기획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여성노동자로서 여성과 연대, 교육노동자로서 교사를 포함한 교육노동자들과 연대도 함께 고민 중이다.

- 교육공무직 법제화를 위한 공무직본부의 전략은? 
(김태형) 법제화 방향을 다양하게 고려하고 있다. 단순히 교육공무직 노동자만을 위한 법제화라기보다는 공무직 전체, 공공부문 공무직 차원의 법제화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 나아가 공공부문에 머무르지 않고 민간영역의 노동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법, 노조할 권리가 확대될 수 있는 전태일법 등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법제화 방향이 역시 사회연대 관점에서 넓게 보고 있다.

교육공무직본부의 앞으로 10년
“앞만 보며 뚜벅뚜벅 걷겠다”

 - 교육공무직본부가 만 10년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힘들었다. 이럴 줄 모르고 들어왔다. (웃음) 정말 변화무쌍하고 다이내믹했다. 그래도 10년 동안 고생한 만큼 교육공무직원들한테 교육청이나 학교가 대우해주는 태도가 달라진 걸 보면 뿌듯하다. 여성노동자들,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데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낀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 이만큼 와서 정말 좋고 그걸 또 알아주는 조합원들이 있으니 행복하다.

- 10년 전과 지금 비교했을 때 학교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예전엔 학교가 시키면 무조건 했다. 부당해도 말 못 했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했으니까. 이젠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할 얘기가 있으면 한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거다. 그게 가장 큰 변화다. 동시에 학교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예전엔 파업한다고 하면 교사, 공무원, 교장까지 협박이 엄청났는데 이제는 응원해주는 학교도 있고 아이들도 지지해준다. 

- 공무직본부의 앞으로 10년이 다시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처음 말했듯이 엄청난 포부는 없다. 여태까지 해왔던 길이 곧 본부장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단위가 좀 커졌을 뿐이다. 학교를 자주 찾아가고 조합원과 소통하며 현장의 어려움을 우선 해결해나가고 싶다. 현장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다. 먼 데를 쳐다보기보다 그냥 뚜벅뚜벅 앞만 보면서 걸어 나갈 거다. 10년 동안 노조 활동하면서 좌충우돌하고 엎어지고 넘어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본부장 역할을 잘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