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터를 위해 알아야 할 ‘직장 내 괴롭힘’
행복한 일터를 위해 알아야 할 ‘직장 내 괴롭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3.02 11:36
  • 수정 2020.03.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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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관계’에 방점을 두는 법”
[인터뷰]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저자 문강분

책에서 만난 노동_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 인터뷰

“법대로 합시다!” 서로 치열하게 말싸움을 하는 두 사람 사이에 ‘법’이라는 말이 나온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법은 공명정대하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승소와 패소가 깔끔하게 구분되는 판결에서 죄를 지은 가해자와 무결한 피해자만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겪는 괴로움에는 언제나 선악이 명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어떤 이가 직장에서 괴로웠고 그 괴로움을 회사가 어떻게 해결해줄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대체적 분쟁 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이라고 말한다.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가디언, 2020)의 저자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는 대체적 분쟁 해결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가다. 문강분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승패나 논리를 따지는 전통적인 법학의 관점이 아니라 갈등을 빚는 사람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법이라고 설명했다. 처벌로는 행복한 일터를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의 관계를 보자는 것이 문강분 대표의 생각이다.

 

《이것도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는 누구를 위한 책인가?

대중을 위한 책이다. ‘직장’이라고 하면 직장인만 있을 것 같지만, 직장에는 어머님도 있고, 누군가의 남편도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괴롭힘’이기도 하지만, ‘갈등 예방과 해결을 위한 가이드북’이라는 부제가 더 알맞다고 생각한다. 괴롭힘 자체가 모든 갈등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 여성법률노동지원센터 등 국내에서 많은 활동을 하다가 돌연 유학길을 떠났다. 분쟁 해결에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을 느껴서라고 하는데?

여성법률노동지원센터에서 활동했을 때, 아무리 분쟁을 잘 해결해도 고용 유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쟁을 해결할 때 직면하는 가장 어려움이었다. 분쟁 해결의 결과로 돈이나 처벌이 나오더라도 정작 문제제기자의 관계는 더 고립됐다.

대안적 분쟁 해결이라는 분야는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계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려면, 제3자가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이해를 많이 해야 한다. 법적 소송 장면에서는 갈등을 겪는 당사자는 제3자만 보고 서로를 보지 않는다. 아무런 접점이 없다. 결국 재판은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냐의 게임이 된다.

많은 분쟁이 오해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그 오해도 법원에 가면 모욕죄로 성립된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종종 문제의 정의(Justice)를 생각한 다음 논리를 짜 맞추는 오류를 범한다. 여기에는 인간도, 관계도, 정도 없고, 정말 법적 논쟁만 있을 뿐이다.

사회의 많은 갈등 중 특히 직장 내 괴롭힘에 집중한 이유가 있는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가정을 폭력적인 구조라고 말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바꾸긴 어려워도 직장은 바꿀 수 있다. 또한, 집이 재벌이 아니라면 누구나 일해야 한다.

사실 ‘행복한일연구소’에서 ‘일’의 의미는 ‘직업(Job)’이 아니라 ‘노동(Work)’이다. 예를 들어 현재 택배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처절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택배노동자의 문제는 직업이나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문제다.

직장 내 문제가 해결되면 사회 전체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행복한일 노무법인은 몇몇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 상담부터 조사까지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고쳐야 하는 걸 제안한다. 사실 분쟁 상황에서 사용자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면 분쟁 해결은 정말 어렵다. 사용자들로 하여금 노동자와 분쟁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더불어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까지 관심을 넓히고 있다. 직장 내에서 괴로움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분명히 신체적으로도 증상이 나타나길 마련이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데 3월 ILO에서 주관하는 SOLVE 프로그램 수강 차 이탈리아 튜링에 간다.

실무를 담당하는 노무사로서 기억에 남는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있는가?

책에서 나오는데, 맥주회사의 분쟁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사실 책에 적은 것보다 더 극적이었다. 처음 이 사건은 ‘여자 점장이 남자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케그(맥주통)를 나르는 걸 도와주다가 농담을 하는 중에 넘어져서 엉덩이에 손을 댄 것이다. 그 때 “성희롱이네! 신고할 거야”라고 하니 여자 점장이 “해봐”라고 장난스럽게 받아치고 끝났다. 당사자도 기억이 흐릿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흐르고 경영진이 성추행으로 징계를 내렸다.

성추행 사건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 점장은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너무 기이했다. 알고 보니 기저에 갈등이 있었다. 여자 점장은 홀을 맡고 있었는데, 맥주를 만드는 젊은 남자 직원들은 ‘맥주도 모르면서 어떻게 점장이 됐지?’라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 점장은 이전에 매뉴얼화 돼있던 곳에 있다 보니 직원들을 딱딱하게 관리했다. 그런 오해 속에 성추행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문강분 행복한일 연구소 대표.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아직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직장 내 괴롭힘은 무엇이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괴롭힘으로는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 괴롭힘은 ‘보충적’이다. 어떤 수단을 써도 보호받을 수 없는 것까지도 보호하자는 것이다. 모든 걸 괴롭힘으로 처벌하자는 건 말이 안 된다. 노동조합을 괴롭히면 당연히 부당노동행위로 봐야 한다.

더불어 ILO 190호 협약을 보면 작업장 내 폭력(Violence at Work)과 작업장 내 괴롭힘(Harrassment at Work)이 달리 규정된다. 여기서 폭력은 육체적 폭력을 포함한 실제 폭력이다. 괴롭힘은 육체적 폭력에는 이르지 않지만, 불편하게 하면서 자존감이 상실되는 쪽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까지 포괄한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한 예다. 아줌마라는 호칭은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줌마라는 말은 굉장히 불쾌하다. 이 경우가 괴롭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괴롭힘을 무엇이라 정의해서 괴롭히는 사람을 처벌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효용이 없다. 성희롱이 법에 명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법원에서만 이야기가 됐지 사업장 내에서 이야기가 안 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핵심은 사업자 스스로 예방과 조치를 하라는 거다. 모든 것을 법이 가르쳐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괴롭힘은 일하는 방식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에서는 “야, 너” 이런 호칭이 엄청 불쾌할 수 있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그렇게 불쾌하지 않을 수 있다. 회사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을 봐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을 두고 많은 논란을 빚었다. 이 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데, 이유는 무엇인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특별법 형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에 들어왔다. 대상도 노동자로 제한되고, 근로기준법의 최소 적용 단위인 5인 미만 사업장이 배제된다. 또한 괴롭힘에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근로감독관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이런 비판들은 타당하다. 하지만 법이 통과된 지 1년이 겨우 넘었고, 시행한 지는 1년도 안 됐다. 당장 실효성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개인적으로 굉장한 실효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법이 제정된 이후 많은 기업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교육했다. 우리사회가 ‘무례한 사회’에서 ‘존중하는 사회’로 돌아서는 분기점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승패를 가르는 법’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법’이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일단 사용자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이 법의 특징은 사용자에게 엄청나게 많은 의무를 주는 거다. 벌칙은 적지만 사용자한테 모두 다 하라는 거다.

사실 사용자가 아니면 이 일을 누가 하겠나? 근로감독관이 몇 십만 명 있어도 직장 구석구석까지 지켜볼 수는 없다. 괴롭힘은 회사 밖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다. 그 회사에서 해야 한다.

또한, 누구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들은 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과정에서 힘듦은 당연히 발생한다. 거기서 발생하는 힘듦을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비판해야겠지만, 어떻게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겠나. 그래서 과태료 정도는 괜찮아도 형사처벌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출판하면서 바라는 점이 무엇인가?

이 책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건 ‘오직 나만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괴롭힘 문제에서 항상 가해자의 위치와 피해자의 위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겸손해져야 하고, 스스로 항상 뭘 잘 못하고 있는지 돌아봐야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CEO나 관리자, 특히 노동조합 관계자가 읽으면 많은 생각거리가 있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