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으로 '역 직원'의 일상을 전합니다
웹툰으로 '역 직원'의 일상을 전합니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3.02 13:14
  • 수정 2020.05.17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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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교통공사 웹툰 작가 클락스틸
"공사 직원이라는 이유로 욕먹어야 하나요"

네이버 도전만화에 웹툰 '역 직원'을 연재하는 '클락스틸'은 서울교통공사 직원이다. 2007년 입사해서 12년간 역 직원으로 근무했다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웹툰이 입소문을 타서 지난해부터 역사디자인팀으로 근무부서를 옮겨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역 직원’은 서울교통공사를 홍보하기 위한 업무이지만, 클락스틸에게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클락스틸은 주인공 '김서교'를 내세워 지하철역 직원으로 일했을 당시의 애환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취미가 일이 됐을 때, 업무적인 만족도가 높을까?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하던 '공사 웹툰 작가'인 클락스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울교통공사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는 공사 직원이자 웹툰 작가인 클락스틸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서울교통공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는 공사 직원이자 웹툰 작가인 클락스틸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Q. 현재 소속 부서는 어디이고,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운영처 역사디자인팀 소속이다. 드로잉 작업을 하고 있다. 공사 홍보물에 쓰이는 그림과 웹툰을 그리고 있다. 요즘은 홍보나 캠페인을 할 때 시각적 비중이 높아졌다. 사람들은 글만 있는 홍보물은 읽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에서도 그림을 넣은 홍보물을 제작하려 한다. 역사디자인팀에 점점 더 많은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 그 중 홍보물 만드는 게 절반 정도다. 웹툰은 나머지 시간에 그린다.

Q. 지하철에서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그림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캠페인은 주로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 에스컬레이터 이용 등 지하철 공공질서를 안내하고 권장하는 내용이다. 홍보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에 우리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도 있다.

Q. 홍보로 지자체나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대표적인 게 무임승차 예산 지원이다. 고령화로 지하철 무임승차 비중이 높아지는데, 서울시가 책정한 예산은 충분하지 않다. 공사 재정구조가 악화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지자체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홍보하는 거다. 가령 ‘대표적인 노인복지인 무임승차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통공사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같은 홍보물을 만든다고 해보자. 시민에게 무임승차의 필요성을 알리는 측면도 있지만, 서울시가 서울교통공사에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도록 시민여론을 형성하는 의미도 있다. 서울교통공사도 결국은 회사니까 제정 안정이 중요하다.

Q. 웹툰 연재를 다른 업무와 병행하면 힘들지 않나?

업무량이 많긴 하다. 캠페인, 홍보물 제작 등 다른 업무로 바쁘면 웹툰 그리는 게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도 있다. 연재에 차질이 없도록 미리 만화를 그려놓긴 했지만, 일이 몰리는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웹툰에 소홀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너무 무리해서 그리기보다는 분량을 줄이거나 단편으로 대체한다. 종종 분량이 적은 걸 지적하는 댓글도 있지만, 분량으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웹툰 연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나름의 페이스 조절이다.

Q. 예명인 ‘클락스틸’은 어떤 의미인가?

어렸을 적 오락실에서 즐겨 하던 게임 '킹오브파이터즈'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락실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가서 살았을 정도다. 오락이 너무 하고 싶은 나머지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오락실에 달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거기에선 외국어 이름을 사용했다. 그때 클라크를 외국어 이름으로 정했고, 그 이름을 본 딴 클락스틸을 지금까지 계속 내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Q. '역 직원'의 주인공 김서교는 어떤 인물인가?

취업 관문을 뚫고 서울교통공사 사원이 된 평범한 대한민국 20대 청년이다. 처음에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진 신입사원으로 소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 직원으로서의 고충과 한계를 겪으며 넘치는 패기보다는 일상적인 문제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Q. 공사가 바라는 것과 작가가 원하는 웹툰 방향이 일치하는가? 작가의 주관이 어느 정도 반영되나?

웹툰은 전적으로 내 주관에 따라서 연재한다. 아무래도 나보다 윗세대인 상사들은 웹툰에 익숙하지 않다. 그림이나 캐릭터 등 웹툰 자체에 관한 관심보다는, 웹툰의 결과인 홍보효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혼자 기획하고, 에피소드도 정하고, 그림도 그린다.

Q. 만화를 좋아하고, 직접 그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조금 소심한 성격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 웹툰은 그런 부담이 적다. 언변이 좋은 사람은 말로, 필력이 좋은 사람은 글로 자기를 드러내듯이, 만화는 나를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특히 웹툰 작가는 실명을 밝히거나 얼굴을 드러내놓지 않아도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많은 웹툰 작가가 오로지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Q. 만화가가 아닌, 교통공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20대 때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만화가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화가로 살려면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야 하는 것 같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만화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만화는 포기했었는데, 역 직원으로 일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다.

Q. 사내 게시판에 올린 만화 '역무일지'가 웹툰 연재의 계기가 된 걸로 안다. ‘역무일지’는 왜 그리게 됐나?

다른 직원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고속터미널역처럼 민원이 많은 역에서 일하다 보면, 억울하거나 속상할 때가 많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진다. 그럴 때면 힘든 걸 하소연하거나,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역무원에게 공감을 얻고 싶은 감정이 생긴다.

사내 인트라넷 소통게시판에 만화를 올렸다. 어차피 익명으로 쓸 수 있으니까 마음껏 그림을 올렸다. 아무래도 글보다는 쉽고 재밌으니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댓글도 많이 달렸다. 관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재밌다', '더 올려 달라' 같은 응원 댓글이 달리니까, 업무 중 남는 시간에 휴대폰으로 틈틈이 만화를 그려 계속 올리게 됐다. 그렇게 만화를 그리다 보니 2019년까지 3년간 어느덧 90화 정도를 그렸다.

Q. 사내게시판에서 익명으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네이버 도전만화에 ‘역 직원’을 연재하고 있다.

'역무일지'가 입소문을 타면서 내 정체가 밝혀졌다. 익명으로 올렸지만, 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내가 웹툰 작가라는 걸 알 수밖에 없다. 조금씩 내가 클락스틸이란 게 알려졌다. 회사에서 역사디자인팀으로 옮겨 그림을 그리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홍보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Q. 단편 '감정 노동은 힘들어' 에피소드를 보면 대민업무를 보는 역 직원의 고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나 일반적으로 역 직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때는 언제인가?

개인적으론 상충하는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다. 예전에 역에서 껌을 파는 할머니가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조치를 하려고 했는데, 이번엔 어르신을 쫓아낸다고 민원이 들어왔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그런 민원을 처리할 땐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규정대로 민원을 처리하면 또 욕을 먹게 된다. 그럴 땐 참 난감하다.

일반적으로 보면, 역 직원은 주취폭력을 가장 힘들어한다. 대화가 안 되니까 역 직원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공사 직원들, 특히 대민업무를 하는 공사 직원들은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좋게 말로 해결해야 하는데, 취객은 대화가 안 되니까 말로 해결할 수 없다. 경찰이 올 때까지 주취폭력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 클락스틸
ⓒ 클락스틸

Q. 공적 영역에서 대민업무를 봐야 하는 역 직원 특유의 고충인 것 같다.

역 직원을 보호할 제도가 보완됐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지하철역에는 친절한 응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사람을 상대하니까 ‘친절’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친절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특히 야간에는 상식 밖의 일들이 일어난다. 역 직원을 보호할 장치는 마련해주지 않고, 그저 친절하게 대하라고만 하면 역 직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

Q. '역 직원'을 통해서 회사 홍보보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려는 것 같다.

교통공사 직원의 애환을 알리는 게 효과적인 홍보이자 캠페인이 될 수 있다.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속편하게 시간을 때우면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그런 직원도 있지만, 공공기관 직원도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사명감도 있다. 공적 업무를 다루다 보니 욕도 많이 먹는다. 역 직원으로 근무할 때 시민들에게 '세금 떼먹지 말고 똑바로 일하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구의역 김군, 채용비리 등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면 일선에 있는 직원들이 욕을 먹는다. 공사 직원들도 그런 일이 생기면 속상하긴 마찬가지다. 우리의 현실과 고충을 알려서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교통공사에 '월급 루팡(월급도둑,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일컫는 신조어로 소설 속 도둑의 대명사인 루팡에 빗대어 만들어졌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꾸준히 알리면 교통공사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만화를 그리는 게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내 주변에서 어떤 일지 벌어지는지,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경험을 되새기다 보면, 잊지 못할 일들이 떠오른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역 직원으로 근무할 당시, 철로를 정비하던 하청업체 직원이 차량에 치여서 숨지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만화를 그리다보면 그런 생각들이 자꾸 떠오르고,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전에도 사회 문제에 관한 만화를 그려서 커뮤니티에 종종 올렸었다.

Q. 지금 서울교통공사에 하고 있는 업무에 만족하는가?

만화 그리는 일을 할 수 있게 돼서 좋다.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자존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업무를 수행하고 실적을 인정받으면 기분도 좋고 자존심도 높아진다. 그런데 직장이 좋지 않은 곳으로 비친다면, 기분도 안 좋고 일에 대한 의욕도 떨어진다. 기왕이면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가 좋은 곳에서 일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서울교통공사 홍보에도 힘을 쏟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