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사 발표로 고용불안 공포에 떠는 한국MSD
분사 발표로 고용불안 공포에 떠는 한국MSD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3.02 16:54
  • 수정 2020.11.23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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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MSD, 사업부 분사 … 특허만료 약품 몰린 ‘NewCo’ 노동자 고용불안 가중
단체협약으로 고용보장 방안 요구 … 하지만 시간 촉박

지난 2019년 11월 <참여와혁신>은 회사분할에 따른 노동권 침해문제를 다뤘다.(관련기사▶“기업엔 마법 같은 회사분할제도, 노동조합엔 ‘파괴수단’”) 현재 한국의 법은 회사 매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를 적절히 다루지 못한다.

특히 외국인 투자 제약기업(이하 외투제약기업) 노동자는 제도 미비에 따른 피해를 가장 크게 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기업은 신약개발과 더불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주요한 성장 전략으로 삼기 때문이다. <참여와혁신>은 2월 1주를 시작으로 회사분할로 고통 받는 외투제약기업 노동자의 목소리를 연속으로 다룬다. ‘외국계 기업’이라는 선망어린 시선 속에 간과됐던 외투제약기업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어본다.

[회사분할의 그늘, 외투제약기업을 보다] ② 한국MSD

MSD(Merck Sharp & Dohme)는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제약회사다. 독일계 화학-제약 기업인 머크(Merck)와는 '친인척' 관계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내 머크 자회사는 미국 정부에 의해 몰수당했고, 이후 1917년 미국에 있는 메르크(Merck) 가문이 환수 받아 꾸린 회사가 현재의 MSD이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1982년 중외제약과의 합작이었다. 1994년에는 한국MSD를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 발을 들였다.

ⓒ MSD

난데없는 한국MSD의 분사 결정

그동안 한국MSD의 노사관계는 비교적 양호했다. 하지만 2017년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해묵은 이슈였던 ‘실노동시간’이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 국내 제약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업직 노동자들은 영업을 위해 밤늦게 세미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시간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2018년 11월 한국노총 민주제약노조 한국MSD지부(지부장 한선미)가 설립됐고, 이어 2019년 9월에는 한국MSD노동조합(기업별 노조)이 만들어졌다. 현재 교섭대표노조는 한국MSD노동조합에서 맡고 있지만, 한국MSD지부 또한 현안에 대해 공조하고 있다.

한국MSD 노사는 올 2월 초에 실노동시간 산정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교섭은 곧바로 새 국면을 맞았다. 2월 5일 글로벌 MSD가 레거시 브랜드, 여성건강, 바이오시밀러 분야를 분리해 ‘NewCo’라는 새 법인을 만든다고 발표하면서 한국MSD 노동자들 사이에 고용불안이 전면으로 대두한 것이다.

통상 글로벌에서 분사가 진행된 이후 각 지역 지사의 분사가 진행되는 데 반해, MSD는 글로벌의 분사와 한국지사의 분사를 동시에 단행한다고 밝혔다. MSD는 내년 상반기 분사 작업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한국MSD의 사업부는 PC(Primary Care, 당뇨, 순환기, 심혈관 등 만성질환치료제 판매), DV(Diversified Brands, 호흡기, 피부과, 비뇨기계 등 약품 판매), 온콜로지(Oncology, 종양학, 암 연구, 치료, 진단, 예방을 다루는 의학의 분과), 백신(Vaccines), 스페셜티(Specialty, 항생제-C형 간염 등 세분화되지 않은 약품 판매) 등 5개다. 이번 분사로 DV사업부 전체와 PC사업부 중 특허 만료 약품을 담당하는 부서가 떨어져 나간다. 분사예정 인원은 총 인원 700여 명 중 250~300명 정도다.

회사 간판 변경, 노동자는 선택할 수 없다

한국MSD 직원은 회사의 분사 결정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MSD는 분사의 목적을 “재정 효율성 및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분리”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을 우려할만한 지점이 적지 않다.

우선 신설 법인 NewCo의 지속가능성이다. NewCo가 주로 담당하게 될 부문은 특허 만료된 약품들이 다수다. 상대적으로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MSD의 주력 약품은 당뇨병치료제인 ‘자누비아’다. 2023년 특허가 만료되는 자누비아는 한국 MSD가 가져간다. 특허가 끝나 영업이 어려운 심혈관-순환기 계통의 약품은 신설법인인 NewCo가 맡게 된다.

또한, 영업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불이익도 예상된다. 여태까지 한국MSD 노동자들은 자누비아 같은 오리지널 약품을 팔면서 국내 제약회사와 경쟁이 치열한 복제약품(제네릭, Generic) 부문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NewCo로 분사가 결정되면 더 이상 이러한 영업수단을 활용하지 못한다.

한선미 한국MSD지부 지부장은 “국내 수많은 제네릭 약품들과 경쟁해야 해서 업무 강도가 다른 약품들보다 높고 치열하다”면서, “향후 한국MSD의 네임밸류(Name Value)없이 영업하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신설법인 NewCo의 연구개발(R&D) 부문은 기존에 비해 약해진다. 현재 개발 중인 약품들은 한국MSD로 속하게 되고 NewCo의 경우 외주형식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한국MSD 노동자들은 ‘MSD’라는 간판을 보고 입사해 한국MSD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회사가 NewCo로 바뀐다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현재 판례상 회사분할 시 노동자에게 전적거부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한국MSD PC사업부의 노동자들은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해왔음에도 하루아침에 서로 다른 회사로 배정될 형편이다. 한선미 한국MSD지부 지부장은 “회사는 직원들이 거부해도 분사하는 회사로 이동된다는 입장”이라며, “ERP(Early Retirement Program, 희망퇴직) 계획이나 희망퇴직은 없다고 구두전달만 했을 뿐, 서면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별도의 고용보장계획도 없다”고 비판했다.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 단체협약으로 지켜져야

현재 한국MSD지부와 한국MSD노동조합은 아직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고용안정 방안에 대해서는 2월 중순부터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촉박하다. 한국MSD는 ▲3~5월 리더십 팀 확정 ▲2020년 3분기부터 임직원 배치 ▲2020년 4분기까지 분사 준비 작업 완료(실질적 업무 분리) ▲2021년 상반기 분사 등으로 상당히 촘촘히 계획을 설정했다.

글로벌 MSD로부터 구체적인 분사지침은 3~5월 리더십 팀이 결정될 때 내려질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조합은 분사 시 노동자들의 회사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이나, 분사 이후 고용안정책에 대해서 단체협약을 통해 보장받으려 준비하고 있다.

한선미 한국MSD지부 지부장은 “PC부서의 노동자 같은 경우, 전적거부권을 전혀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DV부서 노동자도 하루아침에 네임별류 없는 회사로 가게 된다. 분사 자체가 불이익”이라면서,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분사된 회사로 강제이동이 진행된다면 두 노조가 협력해 단체행동도 불사할 것이다. 이미 두 노조는 협력대응에 합의를 완료했다. 회사의 분사 방법에 따른 추후 행동을 계획 중에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