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399’ 따라다니느라 해외여행 가이드는 ‘에구구’
‘299’, ‘399’ 따라다니느라 해외여행 가이드는 ‘에구구’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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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걱정할 정도의 노동조건
사실상 손 놓은 정부 … 개선은 까마득

[리포트] 노동권 사각지대에 빠진 해외여행 가이드

2016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방영됐던 예능프로그램 ‘뭉쳐야 뜬다’를 기억하는가? 이 프로그램은 ‘패키지로 세계일주’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4명의 연예인이 패키지여행에 함께 하는 여행프로그램이다. 그동안의 여행프로그램이 자유여행을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면 ‘뭉쳐야 뜬다’는 자유여행이 부담스러운 여행 초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같은 방송사에서는 ‘더 패키지’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파리에서 해외여행 가이드를 하는 여성이다. 패키지여행의 낭만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드라마 방영직전, 해외여행 가이드의 노동권 문제가 제기됐다. 채용공고와는 다른 근무여건, 고용계약서 미작성, 저임금과 미지급 퇴직금, 그리고 꼼수 영업까지. 유럽여행 가이드 전문 업체에서 드라마 제작에 1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해당 업체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해외여행 가이드의 노동권 문제제기 후 29개월, 해외여행 가이드의 삶에는 변화가 생겼을까?

지금이 초성수기인데 …
생활고 걱정할 판“

정연주 씨는 베트남에서 해외여행 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노총 노동평등노조 베트남해외여행가이드지부 지부장이기도 하다. 정연주 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때문이다. 우한지역과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중국 인근 국가라는 점과 해외여행에 대한 얼어붙은 심리로 패키지여행객이 급감했다.

“매년 2~3월이 동남아시아 여행의 초성수기입니다. 평년 같으면 가이드 한 명당 3박 5일 일정 기준으로 한 달에 5~6회 정도의 일을 할 수 있거든요. 근데 지금은 한 달에 한 번도 일할 수가 없어요. 2월에 취소된 여행객 인원만 최소 3만 명 정도 됩니다.”

일이 없으니 자연히 수입도 없다. 지난 2012년부터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환자가 발생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2002년 중국에서 발병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때도 해외여행을 계획했던 여행객 대부분이 여행을 취소했다. 그때 당시 역시 병이 잠잠해지고도 한동안은 일이 없었다. 정연주 씨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해외여행객 감소 역시 3~4개월 정도 지속할 것이라는 생각에 괴롭기만 하다.

정연주 씨가 겪고 있는 괴로움의 핵심은 해외여행 가이드가 여행사에 속한 직원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생긴다. 현지 랜드사(업계에서는 현지 여행사를 현지 랜드사라고 표현한다)가 필요할 때 해외여행 가이드에게 일을 맡기긴 하지만 현지 랜드사와 해외여행 가이드는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다.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기본급은 없다.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 가이드가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만 생활고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여행 가이드는 언제나 생활고를 걱정한다. 심지어 초성수기에도 생활고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정연주 씨는 “상위 10% 정도는 충분히 먹고살 만하지만 한 달에 1,000달러의 수입도 없는 가이드도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지에서 살아가는 데 한 달 생활비가 최소 1,500달러 정도 됩니다. 한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현지에서 가이드를 하는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가이드 일로 수익이 안 나면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야 살 것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생활고를 비관해 생목숨을 끊는 가이드도 많아요.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어렵게 버티고 산다고 해도 사는 게 아니죠.”

정연주 씨와 같은 해외여행 가이드가 근로계약을 맺을 수 없는 건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외국인 여행 가이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캄보디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외국인 여행 가이드는 불법이다. 그 때문에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도, 고정된 기본급을 받을 수도 없다. 또 노동현장이 외국이기 때문에 국내 노동법의 적용을 받을 수도 없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최악의 노동조건
개선 노력도 결국 제자리

정연주 씨는 해외여행 가이드의 노동조건에 대해 “최악의 노동조건”이라고 단언했다. 하루 평균 12~14시간을 일한다. 주말이나 공휴일은 언감생심이다. 최저임금, 4대 보험도 모두 꿈같은 얘기다. 이뿐만 아니라 일을 하게 되면 해외여행 가이드 본인의 지출만 늘어난다. 3박 5일 일정, 여행객 16명을 기준으로 하면 해외여행 가이드는 최소 200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당연히 여행사에서 지원되지 않는다.

“지난번에 여행객 한 분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봉사하러 나오신 분이 열대과일도 한 번 안 사주고, 커피도 한 잔 대접 안 하고, 소주 한 잔 대접을 안 하나요?’라고. 여행객이 이렇게 요구하는데 어떻게 지출을 안 하나요? 고객이 클레임을 걸면 다른 패키지여행팀 배정이 안 되는데….”

해외여행 가이드 애로사항 및 해결방안 추진안. ⓒ 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조
해외여행 가이드 애로사항 및 해결방안 추진안. ⓒ 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조

문현군 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동조합 위원장은 “태국에서 해외여행 가이드 한 분이 투신했다”며 지난 2018년 ‘해외여행 가이드 애로사항 및 해결방안 추진안’(이하 추진안)이 만들어졌던 과정을 설명했다. 문현군 위원장은 “태국 패키지여행에 참여했던 여행객이 귀국 후 국내 대형여행사에 쇼핑에 대한 클레임을 걸었다”며 “현지 랜드사에서는 당연히 해당 일정을 수행한 해외여행 가이드를 문책했고 해당 해외여행 가이드는 만져보지도 못한 가이드 팁까지 반납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해당 해외여행 가이드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2018년 2월, 노동평등노조(당시 공공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여행업협회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노동평등노조는 해외여행 가이드의 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했다. 결국 같은 해 3월,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였던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간담회를 진행했던 4개의 조직이 모여 추진안을 만들었다.

추진안을 통해 문화체육관광부는 ▲품질관리 강화 ▲근로여건 개선 ▲가이드 지위개선 등을 해외여행 가이드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방안으로 제시했다. 해외여행상품 품질관리 강화를 위해 ▲여행상품 운영의 적정성 여부 검토 및 시정을 위한 모니터링단 운영 ▲저가 여행상품에 대한 소비자 피해사례 전파 ▲우수여행상품 선정 및 홍보 ▲여행상품 광고 표준안 개발 및 보급 등을 하기로 했다. 해외여행 가이드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여행시간 계약서 등에 가이드 활동비의 최소 30~40% 이상 지급을 명시하도록 했고 해외여행 가이드의 지위개선을 위해 현지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가이드로 활동할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문현군 위원장과 정연주 씨는 모두 “추진안을 만들었지만 변한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연주 씨는 “추진안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노동조건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현군 위원장은 모니터링 센터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확인 결과,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 이하 문체부)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문체부 관계자는 “얼마 전에 인사이동이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며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 후 답신이 오지 않았다. 모니터링단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문현군 위원장은 “해외여행 가이드의 노동현장이 외국이기 때문에 외교부도 만나봤다”고 설명했다. 이에 외교부(장관 강경화)에도 문의를 했으나 외교부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정부에 한국인 관광가이드 등의 합법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나, 이들 정부는 합법화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며 “해외 체류하는 우리 국민의 편익 증진 차원에서 관련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 있으나, 각국의 국내 제도 변경이 필요한 사안이라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로 인해 추진안이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났지만, 해외여행 가이드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최악이다.

항공사-대형 여행사 유착관계 깨야
노동조건 개선 가능

문현군 위원장은 “핵심은 항공사와 대형 여행사의 유착관계”라고 강조한다. 문현군 위원장은 “항공사는 성수기에 대형 여행사에 좌석을 몰아준다. 비성수기에는 팔리지 않은 좌석을 대형 여행사에 넘겨 팔도록 한다”며 “대형 여행사는 여행객을 모집만 한다. 여행객을 모집하면 현지 랜드사에 그냥 떠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때 대형 여행사는 항공료와 호텔비만 책정한 29만 9,000원 혹은 39만 9,000원의 ‘299’, ‘399’ 상품을 판매한다. 결국 현지 랜드사는 차량, 식사, 관광지 입장료 등 일정표에 기재된 모든 일정 비용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문현군 위원장은 “여행경비에 가이드 팁이 40달러 정도로 책정돼 있지만, 여행 상품 자체가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해외여행 가이드가 그 돈을 가져갈 수 없다”며 “수익을 내기 위해 선택 관광이나 쇼핑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3박 5일 일정 기준, 여행객 1인당 80만 원 정도를 써야 마이너스 상품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다.

해외여행 가이드가 노조를 만든 2017년, 노동평등노조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찾아갔다. 문현군 위원장은 “항공사와 대형 여행사의 유착관계, 거기서 파생되는 현지 랜드사와 해외여행 가이드의 여건이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외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국외여행표준약관 중 일부. ⓒ 공정거래위원회
국외여행표준약관 중 일부. ⓒ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 관계자는 “항공사와 대형 여행사의 유착관계에 대한 조사 진행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며 “이런 카르텔 조사의 경우, 증거가 핵심인데 조사 진행 여부가 유출되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 누구에게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노동평등노조에 가입한 해외여행 가이드는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통일된 정부부처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문체부, 외교부 등 다양한 정부부처에서 실태를 파악한다고 했지만 여러 부처에서 실태 파악을 진행하다 보니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안 보인다는 것이 노동평등노조의 입장이다.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사한다고 한 게 3년 전입니다.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저희한테 알려줘야 저희도 개선방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부가 손 놓고 있으니 답답하네요.”

정연주 씨가 바라는 건 불안한 현재의 노동조건에서 탈출하는 것 하나다. 4대 보험과 최소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의 해방. 단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