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요즘 뭐 읽니?
노동조합, 요즘 뭐 읽니?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3.03 00:07
  • 수정 2020.03.03 2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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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가 책?” “갑자기 웬 책?”
안 읽는 듯하더니… 한 권씩 꺼내 들어

[리포트] 요즘 노동조합이 읽는 책

북커버 챌린지 ‘#7days7covers’가 SNS를 꾸준히 달구고 있다. 이 챌린지는 7일 동안 하루에 한 권씩 좋아하는 책 표지를 SNS에 올리며 다음 참여자를 태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독서문화 확산이라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인의 다양한 독서 취향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문득 요즘 노동조합은 뭘 읽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다. “갑자기 웬 책?” 기자가 갑자기 들이댄다고 난색하다가도 “읽는 책이 있긴 한데…” 책을 한 권씩 꺼내 들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설명과 독후감이 없는 북커버 챌린지보다 재밌었다. 무려 10권을 모아서 자신의 독서 편력을 설명해준 사람도 있었다.
 

나지현 여성노조 위원장
<그곳에 내가 있었다>,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이프북스, 2019

“네? 책이요? 아··· 잠시만요” 

이 책은 지난해 ‘일하는여성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치유글쓰기 워크숍의 결과물이에요. 여성노조 모윤숙 사무처장을 비롯해 10명의 여성 노동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써 내려간 내용인데요. 1980년대부터 여성 노동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삶을 살아낸 기록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개인들의 삶을 쭉 읽어내다 보면 여성 노동운동의 계보가, 역사가 자연스럽게 이해돼요. 한편씩 나누어져서 이동하며 짬 내서 읽기도 좋고요.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기도 하니 3월을 맞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네요. 
 

송보석 민주노총 대변인
<천년의 질문2>, 조정래, 해냄출판사, 2019

“스마트폰 보기도 바쁜데··· 읽는 책 있긴 있어요”

예전에 사놓고 한 권 반 읽었어요. 지난해 9월에 금속노조를 그만두고 노는 동안 읽어보려고 사뒀는데 놀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아직도 다 못 읽었어요. 이 책은 시사주간지 기자를 중심으로 재벌과 정치인, 변호사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특히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알았던 국회·검찰 등과 상조하면서 한국사회를 절망의 늪으로 빠뜨린 재벌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이죠. 다행히 오늘 책을 들고 왔네. (웃음)
 

이지현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유영규 외 4인, 루아크, 2019

“어? 요즘 책 읽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한국노총 자료실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간병살인’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제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할머니가 치매를 오래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주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돌보셨는데 그때 너무 힘드셔서 “너네 어머니 좀 치워달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50년 넘게 살며 금혼식도 하셨는데 마지막 순간이 되니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런 이야기까지 하셨을까 싶었죠. 시아버지도 1년 동안 의식 없이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당시 병원에 시어머니가 매일 들락날락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어요. 이런 경험과 함께 저도 나이가 들고 부모님도 70대가 다 되어가니 아무래도 이젠 죽음이 남 일 같지 않아요.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끌렸던 것 같기도 해요.
 

한상규 민주노총 금속노조 교육부장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로라 래첼·데이비드 우젤, 이매진, 2019

“무슨 기사예요? 가볍게 말해도 되는 거죠?” 

올해 금속노조가 전체 조합원 교육주제로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을 잡았어요. 기후위기가 전 인류의 과제인 만큼 시민으로서 조합원들도 알 필요가 있어서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조업 중심인 금속노조에는 탄소 배출로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사업장이 많아요. 이 가운데 정부가 기후위기를 근거로 규제를 강화하고 규제에 근거해 사업도 재편되는 상황이고요. 노동조합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 주체들인 노동자가 모여 있는 조직인 만큼 환경문제를 모른다거나, 무시하거나, 수세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에 교육을 시작으로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이 책은 교육을 준비하며 실무적 차원에서 읽기 시작했어요. 해외 노동조합 간부나 활동가들이 쓴 책이라 국제적으로 노동운동이 환경문제를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좋더라고요. 
 

진병우 한국노총 공공노련 정책실장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이진우, 휴머니스트, 2019

“하하하! 이렇게 갑자기 들이대도 되는 거예요?”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자체보다는 추종했던 사람들을 비판한 정치철학자예요.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말했는데 사유하지 않으면 누구든 악의 주체로 동참할 수 있다는 거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늘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선거 때 왜 노동자계급, 서민계급을 대변하지 않는 사람을 노동자와 서민이 추종할까? 다양하게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현실을 고민해 보려고 골랐어요. 물론 책에도 명확한 답은 없어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때 정치도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큰 틀만 제시하죠.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론은 없더라도 이 내용은 노동계에도 필요한 이야기라고 봐요. 노동조합도 특히 정치활동이나 선거에서 조직의 수장이 가자는 방향으로 대부분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과정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사유가 들어갈 틈이 있나? 고민해볼 필요가 있죠.
 

김진일 민주노총 택배연대노조 교육선전국장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 창비, 2015

“왜요? 기사 취지가 뭔데요?”

학교 동문들과 독서토론을 하는데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라 읽었어요. 인상 깊었던 내용은 ‘9. 출퇴근, 업무의 연장인가 아닌가 - 출퇴근 재해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분인데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노동의 권리 등 ‘사회권적 기본권’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출퇴근 시 교통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는지 아닌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 흥미로웠어요. 노동과 관련된 판결이라 더 눈길이 갔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은 독서토론에서 이야기 나눴나요?) 아, 책은 재밌게 읽었는데 늦게 가서 토론은 못 하고 뒤풀이만 참여했어요. 하하. 
 

공광규 한국노총 금융노조 정책전략본부 국장
<논어(論語) : 중·영·일·한 4국어대역>, 공자, 유교전파협회, 2017

"읽는 거요? 많죠~ 뭘 소개할까요?" 

스무 살 무렵부터 논어를 읽었어요. 지금도 늘 곁에 두고 놓지 못하고 있는 책이에요. 천하에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논어인데, 논어에는 인간관계와 처세술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해요. 예를 들어 ‘거짓 없는 마음을 표현한다’는 등 동양시학의 원리가 이 안에 다 있죠. 그래서 틈틈이 논어를 보며 제 시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해요. (공광규 국장은 시집 8권을 낸 시인이다) 
 

김선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
<백범일지>, 김구, 돌베개, 2005 외 9권 (한국사회 노동자 연구,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무소유, 시장·국가·민주주의 한국민주화와 정치경제이론, 희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문익환 평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옥중서신1)

“안 돼요 안 돼. 주목받고 싶지 않아!”

중2 때 얼굴에 흉터가 많아서 외모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백범일지’를 읽었는데요.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었던 김구가 얼굴 좋은 것보다 몸 좋은 게 낫고, 몸 좋은 것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더고요. 그 말이 힘이 됐어요. 똑똑한 사람이 되긴 어려워도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할 수 있으니까.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무소유’는 고등학생 때 돈이 없어서 서점에서만 읽고 못 샀는데 스님이 돌아가시고 출간이 안 된다고 해서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구한 책이에요. 대학 다닐 때는 전공 따라 정치학 관련 책을 주로 읽었고요. 저는 사람에 관심이 많아 인물 책도 많이 읽었는데요. 리영희 선생이나 문익환 목사님은 자기 삶에 시대를 몸담고 산 분들이에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10권은 제가 꾸준히 팠던 책들이고 제 독서 편력을 보여줍니다.
 

김윤정 한국노총 정책본부 차장
<플라스틱 없는 삶>, 윌 맥컬럼, 북하이브, 2019

“흠 어려운데··· 그럼 환경 책 소개할게요”

한국노총 내에서 이효원 여성본부 차장, 박주현 조직확대본부 차장이랑 셋이서 1년 전부터 환경 동아리를 하고 있어요. 동아리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환경 관련 책도 지정해 이야기 나누는데요. 2월 책이 바로 ‘플라스틱 없는 삶’이에요. 이 책에는 어떻게 플라스틱 없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이 소개되어 있어 각자 실천 방법들을 정해 만날 계획이에요. 저는 플라스틱 없는 욕실 만들기를 먼저 실천해볼 생각이에요. 간단해요. 리필 제품 사용하기, 플라스틱 대신 나무 면봉 사용하기 등을 실천하면 되는 거예요. 독서 외에도 지난해에는 ‘줍깅’이라고 여의도공원에서 조깅하며 쓰레기 줍는 활동도 함께 했어요. 올해는 각자 목표를 잡아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프로그램도 진행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