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져야
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져야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0.03.04 00:00
  • 수정 2020.03.03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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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이어져 온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특수성이 아닌 ‘평등’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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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300년을 30년으로 압축한 고도성장으로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압축성장의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 아래, 여성노동자는 성희롱·임금차별·대량해고의 1순위가 됐다. 차별의 대상이었던 여성노동자들은 누군가의 딸도, 엄마도 아닌 ‘온전한 주체’로 존재하기 위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어왔다. 1960년대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여성노동자들이 걸어왔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는 현재 어디쯤 와있는지 되물어본다.

1970년대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 받아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무직 노동자들이었던 일명 ‘넥타이부대’는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금융권 여성노동자들은 ‘여행원’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돼 차별을 받았다. IMF 이후 여성노동자는 구조조정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었다.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에게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최저생활을 하기에도 힘든 최저임금만이 주어졌다. 이들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외침

1970년대 활동한 삼성제약노조는 ▲수유시간 확보 ▲결혼퇴직제 철폐 ▲성희롱 금지 및 위반 시 조치 등을 단체협약 사안으로 요구했다. 지금 봐도 선진적이라고 생각할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1990년대 금융권 노동자들은 ‘여행원’이라는 직군 분리와 결혼퇴직제와 같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여행원제’라는 제도는 사라졌지만 은행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또 다른 차별이 생겨났다.

IMF를 거치며 대거 등장한 ‘비정규직’ 일자리 중 많은 부분을 여성노동자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해소와 낮은 임금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노동계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지난 2018년 한국사회에 들불처럼 번진 미투운동(#Metoo)으로 인해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피해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은 용기들이 모여 큰 목소리를 만들어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크고 작은 차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여성노동자들은 차별과 부당한 처우에 맞서 목소리를 내왔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완전한 해결점에는 이르지 못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여성차별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양대 노총과 여성노조가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진행하는 행사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여성노동자가 당하는 차별의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19년 111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한국노총이 진행한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합리적 방안 마련 ▲좋은 여성일자리 확대 ▲임금·채용·승진 차별 철폐 등을 실현하자고 다짐했다.

민주노총 역시 지난 2019년 세계여성의 날 기념 노동자대회에서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을 확산하는 성별분업 해체”를 요구했다. 여성노조는 오는 3월 8일 112주년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3시 STOP’ 여성파업을 진행한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여성들의 ‘3시 퇴근’을 외친 것이 올해로 4년째다.

여성에 대한 차별, 왜 바뀌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연시해왔다. 나지현 여성노조 위원장은 “성별임금격차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며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임금을 받는 직장에서 일을 한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동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은 <노동시장 내 남녀 임금격차의 영향요인(2013)>에서 “성별임금격차 문제는 노동시장 내 성불평등 기제를 드러내는 극명한 현상 중 하나”라며 “출산 및 양육 등 여성성을 둘러싼 가족적 가치가 여성노동자의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모성임금페널티를 준다”고 밝혔다.

① 가부장적 문화

과거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남자 형제를 위해 여자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려야 했다. 현재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있다.

또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강한 모성이데올로기로 인해 ‘임신과 출산’은 여성들에게 있어 노동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작용했다. 그 결과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고용률을 살펴보면 노동시장에 처음으로 진입하는 25~34세와 노동시장에 재진입을 하는 나이대인 45세 이후의 고용률은 높게 나타나지만,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물러나는 35~44세의 고용률이 떨어지면서 M자형 곡선을 나타낸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M자 커브로 인해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대졸자 여성들이 많은데 이들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며 “여성들의 교육수준은 높은데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는 여성들의 노동시장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한 정책들을 펴나가고 있지만, 실효성을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재호 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여성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과제(2011)>에서 “정부는 여성 고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지만 최근 여성고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 수립 및 집행에서 여성의 특수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주희 교수도 “지금도 정책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정책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정책의 사각지대 해소를 강조했다.

② 여성의 다양한 이해관계

또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앞에서 살펴 본 투쟁에 나선 여성노동자들의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어려움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투쟁을 마무리하고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동료로부터 받은 싸늘한 시선이 아픔으로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이주희 교수는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사정과 처지가 다르다”며 “가진 게 많고 여유가 있다면 연대하고, 어려운 상황을 참아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 피해를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에게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역할들이 주어진다. 누군가의 딸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엄마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에 따라 나의 일터가 우선이 될 수 있지만 나의 가족과 안위가 우선시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는 여성노동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요구해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그 변화는 미미하게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사회에 서 바뀌지 않은 사회 구조의 문제는 여성노동자가 쉽게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작용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성평등, 한 발 더 다가가려면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이 계속해서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주희 교수는 “세계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이룩한 나라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그 중에서도 성평등한 나라로 스웨덴과 미국 정도를 꼽을 수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경우, 공보육이 잘 정착돼 있어 여성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공보육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이민노동력이 풍부하다.

이 교수는 “여성이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노동시장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공보육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며 “공보육은 여성이 일하기 위한 평등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공보육 시스템은 수요는 높으나 공급이 낮다. 한정된 인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여성들은 경력단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동선 센터장도 “보육재정지원정책은 돌봄 노동의 ‘탈가족화’가 핵심”이라며 “여성에게 돌봄 노동 부담을 완화해 남녀 간 유급·무급 노동의 평등한 분배에 기여하고 노동현장에 집중할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공보육의 대상과 범위 확대 ▲기혼 여성 노동시장 진출 시 대체보육비용 지원 등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고 지속적으로 노동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경력단절 후 2차 노동시장 진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정규직 문제, 저임금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노동시장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강조했다. 이동선 센터장은 “노동시간이 지나치게 길 경우, 남성노동자보다 여성노동자에게 더 불리하다”며 “여성에게 돌봄의 요구가 강한 현실에서 여성은 일-가족 갈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거나 노동시간이 짧은 저임금 비정규직 등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로 손꼽히는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은 잦은 야근에 시달린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 장시간 노동이 지속된다면 노동시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미투(#Metoo)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많은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조용히 덮고 넘어가기 급급했다. 혹시라도 목소리를 낸다면 직장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장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투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희망을 건네줬다.

이경옥 전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은 “여성노동자들이 모여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여성들이 일하며 어려웠던 부분을 공감할 수 있다”며 “여성들이 스스로의 울타리를 깨고 나와 서로 연대하고 접촉면이 많아지면 더 단단한 힘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금재호 전 선임연구위원도 “현실과 인식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새로운 캠페인, 밴드웨건의 출범이 필요하다”며 “여성의 어려움을 홍보해 여성고용의 실상과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100만 조합원을 넘긴 민주노총의 경우, 새롭게 가입한 조합원 중 많은 이들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젊은 여성노동자들의 연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여성노동자 문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 없다는 것은 노동계에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것도 좋지만, 이들을 ‘특별대우’하려는 태도도 지양해야 한다. 이주희 교수는 “다르다고 다르게만 취급하면 그건 특별처우가 돼 버린다”며 “여자라는 이유로 다르게 처우하는 게 아니라 남녀가 같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워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평등’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여성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안정감을 가지며 일하기 위해서는 나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당함과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울타리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