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2층’에서 안전한 ‘2분’ 만드는 중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2층’에서 안전한 ‘2분’ 만드는 중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3.04 00:00
  • 수정 2020.03.03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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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부터 생방송까지, 사건·사고의 총집합
한국도로공사의 얼굴? 지금은 그저 고립된 섬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노동’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단편적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일하는 노동자. 노동을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볼 수 있을까요? 노동하는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하는 ‘우리’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듣고 싶은 혹은 들려주고 싶은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이 시각 교통상황입니다.” 명절, 가장 관심 있게 보는 뉴스를 알리는 소리다. 고향의 노모는 그 소리에 그리운 자녀를 몇 시쯤 볼 수 있을지 가늠한다. ‘이 시각 교통상황’을 만드는 곳은 어딜까? 해당 뉴스를 끝까지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바로 한국도로공사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 246.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옆에 자리한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에서는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CCTV를 볼 수 있다. 여기서 확인한 CCTV 영상을 바탕으로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2층에 자리한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스튜디오에서 ‘이 시각 교통상황’을 제작한다.

국민의 안전한 고속도로 이용을 위해 오늘도 ‘이 시각 교통상황’을 제작하고 있는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2층의 문을 열었다. 이번 동행 취재는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의 대목인 설 명절 2주 후인 2월 7일 진행됐다.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전경.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전경.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5분 전 리허설,
생방 직전에도 바뀌는 교통상황

웬만한 예능프로그램 제작진 인원보다 적은, 30여 명의 단출한 인원으로 구성된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금요일의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은 꽤 분주했다. 7시부터 21시까지 40회의 방송이 있었다. 주말이나 명절에는 방송이 더 많다. 금요일이기에 40회의 방송 중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주말예보 방송이었다. 10시부터 16시 30분경까지 동행한 기자는 10시 48분, 12시 40분, 16시 총 3회의 생방송을 지켜봤다.

10시 48분, YTN DMB 생방송을 위해 PD가 전화로 큐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10시 48분, YTN DMB 생방송을 위해 PD가 전화로 큐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10시 48분, YTN DMB 생방송이 진행됐다. 2분 정도의 짧은 시간을 채우는 것은 오롯이 교통캐스터의 몫이다. 10시 48분 생방송은 8년차 조혜진 캐스터가 진행했다. 조혜진 캐스터는 “8년차긴 하지만, 출산과 육아로 경력의 절반은 쉬었다”고 겸연쩍어했다.

생방송 전, 리허설을 한다. 10시 48분 생방송의 리허설은 10시 45분에 진행됐다. 음악방송 리허설이나 생방송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연극 리허설은 한 시간 전에 진행하는데 교통방송 리허설은 생방송 직전에 진행되는 이유가 뭘까? 안홍규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조 한국도로공사교통방송지부(이하 노조) 지부장은 “고속도로 교통상황은 실시간으로 바뀐다”며 “리허설을 너무 빨리하면 내용이 다 바뀌기 때문에 리허설은 5분 정도 전에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고속도로 교통상황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교통방송 캐스터는 대본 없이 생방송에 임한다. 생방송을 마친 조혜진 캐스터에게 대본은 누군가 써주는 것인지 묻자 “생방송 대본은 캐스터가 직접 쓰지만, 오프닝 멘트 정도만 쓴다”고 답했다. 1분 사이에도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전체 대본을 작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교통상황을 전달하는 교통캐스터의 애드리브로 2분 남짓한 RT(방송시간, Run Time)가 채워진다.

16시 방송의 리허설은 5분 전인 15시 55분에 진행됐다. 리허설에 들어갈 때 사고처리 중이었던 구간은 리허설 종료 후 사고처리가 종료됐다. 리허설 후 약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추이를 지켜보던 13년차 조주은 캐스터는 생방송 직전, 해당 구간의 상황 전달을 제외하기도 했다.

RT를 캐스터의 순발력으로 채우고 생방송 직전 어느 구간의 상황 전달을 제외할 수 있는 건 캐스터가 방송 전, CCTV 화면을 고르며 방송 내용 구성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CCTV 화면을 고를 때는 상황지를 참고한다. 상황지는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2층, 교통방송 맞은편에 자리한 교통상황실에서 만든다. 전국 모든 CCTV를 모니터링하는 교통상황실에서는 전국 고속도로 상황을 문자정보, 그러니까 상황지로 만든다. 상황지에 표시된 정체 구간 혹은 사고 구간을 보고 해당 지점 CCTV를 확인해 방송 내용을 구성한다.

교통방송을 만드는 우리,
남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삶

한국도로공사 교통상황실. ⓒ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 교통상황실. ⓒ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 대표적으로는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CCTV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속도로에 설치된 CCTV는 각도 조절과 고배율의 줌이 가능하다. “고속도로에서 뭘 하든 그냥 다 보인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안홍규 지부장이 설명했다.

안홍규 지부장은 “고속도로 사고에서 가장 위험한 건 2차 사고”라며 “도로에서 사고가 난 차량의 번호판을 줌으로 당겨서 확인 후 하이패스에 등록돼 있다면, 그 고객정보를 확인해 차주에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2차 사고 예방을 위해 사고처리를 갓길에서 할 것을 유도하는 일은 한국도로공사 교통상황실에서 하지만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역시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 입사한 김연주 PD는 “좀 큰 사고가 나면 편성이 없는 시간에도 속보방송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 번은 속보방송을 준비하면서 CCTV를 확인하니까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이 사고가 난 차량을 추돌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며 “그런데 여기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고를 목격하니까 고속도로 교통사고가 굉장히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

안홍규 지부장은 “여기서 일하면 사고에 대한 안 좋은 장면을 많이 본다”면서 차량 화재 사고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안홍규 지부장은 “화재가 발생한 차량이 1·2차로에 있다면 그건 위험한 상황”이라며 “저번에 양재 부근에서 불이 난 소형차가 2차로에 서 있는 것을 CCTV로 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한 아주머니가 차량 뒤편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쓰러져 있었다”며 “나중에 들어보니 운전자가 딸이었는데, 불이 난 차량에 껴서 못 나오고 있었고 어머니는 탈출해 뒤에서 오열하고 있던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딸이 걱정돼 자리를 뜨지 못한 이 여성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소방관에 의해 포승줄에 묶여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됐다.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옥상에 달린 고속도로 CCTV. 이 CCTV는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의 전경 메인인 서울요금소를 비춘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옥상에 달린 고속도로 CCTV. 이 CCTV는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의 전경 메인인 서울요금소를 비춘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전국 모든 고속도로의 CCTV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안 좋은 화면만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CCTV 때문에 재미있거나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안홍규 지부장은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중에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우리가 볼까봐 손을 흔든 사람도 있다”며 “‘나 손 흔들고 있는데 봤어?’하면서 전화까지 했었는데, 우리는 못 봤던 적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귀여웠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안홍규 지부장은 “갓길에 정차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위”라고 근엄하게 덧붙였다.

김연주 PD는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일하면서 ‘여기 왜 이렇게 막히냐’고 묻는 연락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안홍규 지부장은 “친하지는 않고 외부방송 때문에 안면을 텄다가 연락이 끊긴 타 방송사 PD가 ‘촬영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안 막히냐’고 연락을 하곤 한다”고 말을 이었다. ‘얄미워서 잘못된 정보를 준 적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적은 없고 그냥 ‘다 똑같이 막히니까 내비게이션 보고 가라’고 말한 적은 있다”고 답했다.

명절은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가장 큰 사업이다. 그렇기에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노동자에게 명절은 그저 일하는 날이다. 그러나 극심한 정체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약간의 위안이 된다. 명절에 일한다는 것이 서운할 가족들을 위해 캐스터의 경우, 고향으로 송출되는 지방방송의 교통캐스터로 발탁해 방송을 통해서나마 가족들과 인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은 생방송이 대부분이다. 올해부터는 녹화방송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지만, 녹화방송 역시 생방송처럼 NG 없이 한 번에 간다. 그렇기에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생방송’이 주는 압박은 엄청나다.

2013년부터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교통캐스터로 활약한 김류아 캐스터는 “우리는 오프닝 멘트 빼고는 전체가 다 애드리브니까 평소 언어습관을 굉장히 조심해야 하는데, 모 종편방송과 연결해 사고방송을 하다가 평소 언어습관이 그대로 나온 적이 있다”며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사고를 ‘꼬라박았다’고 표현해 진땀이 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또, 생방송이기에 RT를 맞추는 것은 생명이다.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송사고는 RT에 대한 사고였다. 안홍규 지부장은 “여기서 처음 일할 때 ‘캐스터가 끊임없이 말하는데 PD가 말로 사인을 주면 캐스터의 말이 꼬이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매우 크다”며 “예전에 PD 선배가 그 걱정에 캐스터 말을 못 끊고 RT가 넘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RT가 넘치자 방송사에서는 ‘어서 끊으라’며 전화가 왔다. 그런데도 해당 PD가 마치는 사인을 주지 못해 강제로 방송을 끊어야 했던 일화가 있다.

한국도로공사를 위해 일하지만…
깊어지는 시름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은 한국도로공사의 얼굴이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일하는 30여 명의 노동자는 한국도로공사 소속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다. 2005년 개국한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15년을 넘게 일한 안홍규 지부장 역시 1~2년에 한 번씩 소속 업체가 바뀐다. 한국도로공사 직원은 출·퇴근길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지만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직원은 아니다. 그래서 고속도로가 아닌 뒷길을 이용한다. 하이패스센터를 통해 들어올 수 있지만, 하이패스센터 역시 한국도로공사 직원임이 확인돼야 주차 차단기를 올려주기 때문에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특히 2018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제기 이후에는 한국도로공사 직원들과의 관계도 경색돼 일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 4년 정도의 경력 단절을 겪은 조혜진 캐스터는 특히나 더 절감하고 있다. 조혜진 캐스터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이전에 휴직했다가 지난해 복귀했다. 휴직 전에는 한국도로공사 직원들과 함께 식사나 모임을 자주 가졌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불법 파견의 소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 이후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은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에서 고립된 섬이 됐다.

한국도로공사와의 관계 단절은 명절에 크게 느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슈 전에는 ‘다 같이 명절에 고생하는 사이’라는 생각에 과일이나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남들 다 쉬는 명절에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서로를 보면 안쓰러워 과일이나 간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전의 정겨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번 명절 역시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내부 구성원끼리 조촐하게 간식을 나눠 먹었다.

안홍규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조 한국도로공사교통방송지부 지부장이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안홍규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조 한국도로공사교통방송지부 지부장이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으로 한국도로공사와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이 단절된 이유는 전환 방식에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는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을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식회사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은 ▲방송을 위해서는 한국도로공사의 내부 보안망을 이용해야만 한다는 점 ▲한국도로공사의 정책 홍보 등 한국도로공사에서 직접 업무지시를 받고 있다는 점 ▲한국도로공사가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의 설립 이유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재난방송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힌 점 등을 이유로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정규직 전환 협의체가 구성됐지만, 자회사 전환을 요구하는 한국도로공사와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정규직 전환 협의체는 공전을 거듭하다가 틀어졌다는 것이 안홍규 지부장의 설명이다. 특히 올해 1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식회사가 기타 공공기관 지정에서 탈락하면서 노조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식회사에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이 포함됐다면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은근한 압박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치고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밖으로 나서는 기자에게 안홍규 지부장은 “처음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에 입사하던 시기에는 비정규직이 뭐고 용역이 뭔지 잘 몰랐다. 그저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여기서 일할 후배들이 좀 더 떳떳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와 노조의 간담회에서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의 뜻을 강경하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도로공사의 강경함에 노조와 한국도로공사 교통방송 노동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