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3.05 16:28
  • 수정 2020.03.05 1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중원, 이재학, 설요한, 박선욱, 서지윤, 한광호’가 이야기한 노동 현장
노동자 자살의 근본적 이유 들여다본 증언대회

자살을 바라볼 때 흔히 개인의 사연에 집중한다. 개인의 사연에 집중하고 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함을 듣는 것은 중요하다. 듣는 것을 통해 자살을 택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또 다른 자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앞선 자살들을 통해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범주화하고 맥락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일터와 관련된 일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4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최근 잇따른 노동자 자살 사례를 통해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현장을 증언하는 자리가 있었다. 참가자들은 사례 증언으로 노동자 자살의 근본적 이유에 대해 다가가려 노력했다.

증언 사례는 ▲한국마사회 경마기수, 문중원 ▲청주방송 PD, 이재학 ▲중증장애인 동료지원활동가, 설요한 ▲간호사 박선욱, 서지윤 ▲유성기업, 한광호 등 총 5가지 이야기였다. 사례들은 과도한 경쟁, 공정하지 못한 사법과 행정, 학습된 폭력 등이 노동자 자살의 이유라고 말했다.

4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현장을 증언한다 : 유보된 해결, 지연된 정의가 불러온 죽음' 증언대회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4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노동자의 죽음을 부르는 현장을 증언한다 : 유보된 해결, 지연된 정의가 불러온 죽음' 증언대회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➀경쟁, 또 경쟁
마사회 경마기수 故문중원 씨의 죽음으로 또 다시 마사회의 무한 경쟁 체제가 문제로 제기됐다. 이날 고광용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 지부장은 “살기 위해서 조교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옆 동료보다 열심히 일해야 하고, 동료가 다치면 속으로 웃었다. 고참이 조교사와 트러블이 생겨 잘리면 행복했다. 같은 마방 식구끼리도 이렇게 됐다”고 증언했다. 기본급은 적고 상금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 기수들은 동료보다 많이 경기에 나가고, 어떻게든 순위권에 들어야 했다.

지난해 12월 5일 중증장애인 동료지원활동가 故설요한 씨가 자살했다. 2017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중증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외치며 85일 동안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 농성했다. 결과로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이 만들어졌다. 2019년부터 시범 시행된 사업으로 중증장애인이 동료지원활동가, 중증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등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며 다른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증언에 나선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동료지원활동가의 경우 월 60시간을 채워 월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해야 하고 한 명당 월 5회 만나서 취업의욕 고취와 직업연계 상담을 해야 했는데, 이동권이 열악한 현실에서 힘든 노동 조건”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이것은 실적 조건이기도 했다.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기관에 임금(65만 9,650원)을 반납해야 했다. 故설요한 씨는 실적 압박에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자살을 택했다.

➁공정성에 던지는 의문
청주방송 故이재학 PD가 2월 4일 자살했다. 故이재학 씨는 청주방송에서 동료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2018년 4월 말에 해고당했다. 같은 해 9월 그는 부당해고라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동료와 같은 비정규직이었던 그는 소송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 부당해고이고, 인정받지 못하면 계약해지 된 프리랜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 22일 1심에 패소했다. 곧바로 항소장을 냈지만 끝내 2월 4일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날 유가족대리인인 이용우 변호사는 “법원의 판사라는 자가 쓴 판결문 자체가 매우 의도적이고 작위적이고 편향된 경향이 눈에 띄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미 청주방송은 비정규직 실태에 대한 조사를 노무법인 유앤을 통해 받았고 해당 자료에 이재학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단도 들어있었지만, 회사는 자료가 없다했고 재판부는 회사가 없다니 넘어 갑시다라고 했다”며 사법부의 판단 과정을 비판했다.

유성기업 노동자 故한광호 씨의 사례를 증언한 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교육부장도 마찬가지 사례를 들었다. 김성민 교육부장은 “노조를 파괴한 유시영 회장은 이제 징역 1년을 구형 받고, CCTV 설치한 것 가리려고 올라간 사람도 징역 1년을 구형 받았다”며 “우리나라 법이 어떤지 아십니까?”라고 분노했다.

또한 “검찰 과거사 조사에 유성기업 사례가 들어갔지만 조사하지 않고 있다”며 “유성기업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인 게 이유였다”고 검찰을 규탄했다. 김성민 교육부장은 “이미 많은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왜 처벌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며 “만약 당시 2012년에 처벌했다면 한광호 열사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➂‘우리’라는 이름으로 학습된 폭력
이민화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사는 이미 ‘태움’으로 드러난 간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실태를 ‘서울아산병원 故박선욱 간호사’, ‘서울의료원 故서지윤 간호사’의 사례로 재조명했다.

이민화 간사는 “간호학생 시절부터 문제가 있다”며 “간호학생 시절은 개인의 행복보다 우리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해서 학습하게 되는 기간이고, 이 기간을 통해 간호학생들은 (폭력에 대해) 침묵을 강요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로 故박선욱 간호사의 사례를 들었다. “박선욱 간호사는 간호학생 시절에 성적도 최고였고 교우관계도 좋았다. 병원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라고 말했다”며 5개월 만에 같은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의문을 던졌다. 결국 태움으로 불리는 시스템에 학습된 폭력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날 증언대회를 통한 노동자의 자살 사례를 보면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경로를 알 수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노동자가 잠시 기댔던 사법부와 행정부의 공정성에 외면당한다. 종국에 이러한 상황을 빚은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고 극도의 무력감을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고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증언대회 사회를 맡았던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왜 이 노동자들은 다른 의사소통을 택할 수 없었고 자살이라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자살하는데, 그걸 파악하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증언대회의 의미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