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는 장기파업 사업장 … ‘노동자 간 연대’가 큰 힘
코로나19가 한국을 멈췄다. 마찬가지로 노사 간 대화도 끊겼다. ‘무노동-무임금’을 감수하고 파업을 감행한 노동조합은 곤경에 처했다. 일부 회사도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교섭을 해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코로나19 핑계삼아 교섭해태하는 기업들
① 파업 80일차 듀폰코리아노동조합
3일 오후 4시 듀폰코리아 울산공장 입구는 한산했다. 인적은 드물었지만, ‘듀폰 동지들의 총파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 수십 개는 바람에 나부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파업현장의 모습이었다.
한국노총 화학노련 듀폰코리아노조(위원장 정철웅)는 2019년 12월 17일부터 불합리한 인사평가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오늘로(6일 기준) 80일에 접어들었다. 2018년 7월 듀폰코리아 울산공장에 노조가 설립됐다. 이후 듀폰코리아 노사는 2018년 8월 31일부터 32차례나 정식교섭을 가졌지만 결국 2019년 11월 노사 대화는 끊어졌다.
파업 이후에도 지지부진한 교섭은 최근 코로나19로 더욱 힘들어졌다. 회사는 2월 말 공문을 통해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교섭 2주 휴지, 전화교섭 등을 요구했다. 노조의 동의가 없었음에도 회사는 지난 주 교섭에 일방적으로 불참했다.
김석진 듀폰코리아노조 사무국장은 “일방적인 교섭 불참 이후 다음 교섭에서도 회사측 교섭위원 중 2명은 전화로 참여했다”면서, “회사가 코로나19를 교섭 회피의 기회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교섭의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심산”이라고 비판했다.
② 파업 122일차 SY탱크터미널공동투쟁본부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에스와이탱크터미널공동투쟁본부(본부장 김성호)는 파업 122일차(6일 기준)를 맞았다. 에스와이탱크터미널공동투쟁본부는 관리직으로 구성된 에스와이탱크터미널지회와 현장직으로 이뤄진 에스와이여수탱크터미널지회으로 구성돼 있다. 공동투쟁본부는 불공정한 성과급 배분 개선을 요구하며 2019년 11월 5일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공동투쟁본부는 2월 27일 광주 대아빌딩 앞에 천막을 꾸렸다. 노동자들이 여수 사업장을 떠나 광주를 찾은 이유는 에스와이탱크터미널의 실질적인 교섭대표가 고혁주 대아건설 대표라고 봤기 때문이다. 고혁주 대표는 에스와이탱크터미널의 지분 51%를 소유하고 있다.
김성호 에스와이탱크터미널공동투쟁본부 본부장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노조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성호 본부장은 “현재 회사와 대화를 진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참 갑갑한 심정”이라며, “회사에서는 코로나19로 정세가 어수선하니 파업을 접고 들어오라고 계속 권유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집회를 못 해
③ 파업 107일 한국조에티스지회
수많은 제약회사 본사가 위치한 강남구 테헤란로에는 아침저녁으로 한국조에티스 노동자가 매일같이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조에티스는 애완견 심장사상충 치료제인 '레볼루션'으로 유명한 동물의약품 회사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한국조에티스지회(지회장 김용일)는 2019년 11월 20일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반발해 파업에 들어갔다. 오늘(6일 기준)로 107일째다.
한국조에티스지회는 인사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조합원 상대 징계 남발, 지회장 징계 등 노조탄압 행보가 강화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조에티스지회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지회장의 징계(정직 3주)가 부당하다고 구제를 신청했고, 지난 2월 부당징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조에티스 노사의 대화는 2019년 10월 1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김용일 한국조에티스지회 지회장은 “상급단체인 화섬식품노조 수도권 본부에서 회사에 대화를 하자고 요청했지만 형식상으로만 응할 뿐이다. 상급단체에서 대화를 요청한 이후 다음날 또다시 지회장 징계위원회를 열었다”면서, “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소수 노동자로 선전전을 진행하는 게 전부다. 코로나19로 대규모 집회나 연대집회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④ 파업 254일차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지회장 홍재준)는 오늘(6일 기준)로 전면파업 254일 째를 맞이했다.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2019년 6월 26일 충북 음성 공장에서 회사의 ‘성과급 최저임금 녹이기’에 반발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서울 본사 앞 상경 투쟁도 200일을 훌쩍 넘었다.
일진다이아몬드 노사도 마찬가지로 교섭에 난항을 겪었다. 2019년 2월 7일 상견례를 가졌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4개월을 보냈다. 파업이 8개월이 지난 현재 일진다이아몬드 노사는 총 106개 조항 중 임금, 징계, 노조활동과 관련한 핵심 12개 조항의 합의를 남겨두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일진다이아몬드지회도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 2월 24일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코로나19 관련한 상황이 심각하여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전면파업 투쟁도 최소화한다”며 노조 SNS에 공지했다. 서울 마포구 일진다이아몬드 본사 앞 천막농성장을 3동에서 1동으로 축소했고, 충북 음성 공장 앞 농성장도 최소 인원만을 남겨뒀다.
김대권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사무장은 “파업 형태 자체가 전면 중단되다시피 했다. 모든 외부 활동 등 중단했다”며, “아무리 투쟁이 길어졌다고 한들 국가적 재난 상황이고 공익을 위해서 중단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대’와 ‘관심’은 큰 힘이 됩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노동자들의 연대는 빛났다. 김석진 듀폰코리아노조 교육부장은 노사 대화가 난항인 상황에서 연대하는 노동조합에서 건네준 ‘현수막’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김석진 교육부장은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투쟁과 더불어 조합원 건강도 고려해야했다. 조합원 건강이 더 중요하기에 투쟁 동력 손실을 감내하고 중단한 상황”이라며, “몸은 떨어져 있지만, 현수막에서 연대조직의 든든함을 느꼈다. 함께 투쟁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성호 에스와이탱크터미널공동투쟁본부 본부장은 “조합원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면서, “조합원들의 의지가 강하니 오히려 집행부를 북돋아 준다.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용일 한국조에티스지회 지회장은 사람들의 사소한 관심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용일 지회장은 “한국조에티스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분에게는 낯선 회사”라며, “페이스북을 통해서 댓글을 달아주시고, 검색도 해주시고, 공유도 해주시는 것 자체가 지금 국면에서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김대권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사무장은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현 상황을 버티는 힘이고 말했다. 김대권 사무장은 “여기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참아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향후 노동조합을 지켜나가면서 현장에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