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콜센터 노동자의 원망 섞인 얼굴
[정다솜의 다솜] 콜센터 노동자의 원망 섞인 얼굴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3.13 16:41
  • 수정 2020.03.17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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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바로 다음 날인 11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은 오후 1시 시작 전부터 북적댔다. 사진기자, 카메라기자까지 포함해 취재진 약 40~50명 정도가 모여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15분 전에 들어갔지만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콜센터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는 서비스연맹에서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모두 발언을 시작하자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코로나19'와 '콜센터'라는 뜨거운 키워드가 만났으니 뜨거운 취재열기는 당연했다. 

발언순서가 바뀌자 방송사 마이크 10여 개도 옮겨졌다. "콜센터 집단감염 소식을 듣고 잠을 못 잤어요. 올 것이 왔구나···" 강규혁 위원장에 이어 다산콜센터 상담사 심명숙 지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보이자 기자회견장은 플래시로 더 번쩍였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한마디, 눈물 한 방울도 놓쳐지는 순간이 없었다. 

이 가운데 오른쪽 끝에 앉아 기자의 눈길을 끈 인물이 있다. 콜센터 전문기업 한국고용정보에서 일하는 손영환 지회장은 조금 냉소적인 얼굴로 번쩍이는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그동안 상담원들의 열악한 환경과 처우개선에 대해 정말 끊임없이 외쳐왔는데, 이런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관심이 쏠려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말씀 먼저드린다."

목소리에는 이제야 받게 된 새삼스러운 관심에 원망이 담겼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콜센터 집단감염은 '예고된' 위험이었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이전부터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쌀쌀한 태도로 취재진에게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를 더 무겁게 봐야한다는 신호를 준 손영환 지회장은 이날 콜센터 노동자들은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독감, 눈병 등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발생하면 평소에도 집단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서 일한다고 다시 한번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대부분 콜센터 사무실에서 상담사 간 거리는 약 50cm에 불과하다, 마주 보고 앉아 일하며 한 공간에 100~200명이 일한다, 소음 때문에 창문 하나도 제대로 못 연다, 마스크를 써도 30분이면 침 범벅이 된다, 개인 정보가 담긴 전산 시스템 때문에 재택근무도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떻게 노동현장이 바뀌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당장은 마주 보고 일하지 않도록 일렬로 책상을 마련해 분산 근무를 실시하고 방역과 공기순환을 수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대책을 책임지는 주체는 정부와 원청이 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콜센터는 대부분 하청업체인데 원청이 주는 용역비 이상으로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청이 책임져야 하고, 원청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할 것이기에 정부도 나서 콜센터 업체를 전수조사하고 원청에 방역지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코로나19 확산 위험지대, 콜센터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장이 몰려든 취재진으로 꽉 찼다. ⓒ 서비스연맹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코로나19 확산 위험지대, 콜센터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장이 몰려든 취재진으로 꽉 찼다.

이날 콜센터 노동자들은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을 설명하고 책임 주체들을 호명했지만 다음 날 마련된 고용노동부의 '콜센터 사업장 예방지침'에는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지침에는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콜센터에 ▲면적과 인원을 고려해 공기청정기 설치 ▲1회 이상 소독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노동자에게 병가·유급휴가 활용한 귀가조치 등의 내용이 담겼는데 이에 대해 콜센터 지부는 "책임 주체가 빠졌다"며 반발했다. 정부의 지침 시행을 누가 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가 빠졌다는 의미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할 뿐 아니라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원청사-콜센터업체 간의 고질적인 갑을관계에서 실적만 따지고 재계약이 최우선인 현실에 기인"하는데 "이런 허술한 지침으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정부의 대책을 비판했다. 게다가 업무 특성상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는데도 정부 지침에는 '가급적'이라는 단서가 달린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적혀있다.

그럼에도 손영환 지회장을 비롯한 콜센터 노동자들은 그 동안 해온 이야기를 오늘 다시 한번 강조했다. "메르스 이후 콜센터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단감염 재발 방지를 위해서 원청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 "비상상황에서는 정부가 긴급 행정명령을 발동해 강력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