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노조 파업 유보, 이유는?
메트로노조 파업 유보, 이유는?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8.09.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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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해석 차이로 불법 파업 우려와 내부 조합원 동요에 대한 불안감 작용한 듯

서울메트로 노조가 26일 새벽까지 진행된 사측과의 교섭을 중단하고 예정된 총파업을 잠정 유보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메트로노동조합(위원장 김영후)은 이날 새벽 기자회견을 통해 “사측은 주요 쟁점인 구조조정 추진과 관련 외주화 민간위탁 확대 등에 대해서 중단이나 철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창의경영과 관련해 ‘노동조합의 동참’을 명시하는 등 구조조정 일방 강행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며 “노동조합은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측의 변화된 입장 통보 시까지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필수유지업무제도 해석의 차이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노동조합이 '교섭 결렬'이 아니라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결렬'일 경우 즉시 파업에 들어가게 되지만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파업은 자동적으로 유보되는 것이다.

노조는 총파업 잠정 유보 배경에 대해 “필수유지업무제도 시행과 관련,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노사간 법 적용 시비 다툼이 불거지고 이를 틈타 사측이 온갖 불법지침을 남발하는 등 현장의 혼란이 극도로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유권해석을 책임져야 할 지노위마저 결정을 유보하여 자칫 정당한 파업권마저 강제 무력화되는 상황에 대비해 부득이 파업 유보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사측과 노조는 필수유지업무 인력 배정에 대해서부터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노조는 사측에 제출한 필수유지업무 인력 지정에서 조합원의 파업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순번을 정해 지정했지만 사측에서는 한번 지정된 조합원이 파업 종료시까지 업무를 진행해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불법파업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수유지업무제도를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 42조의 6은 “노동조합은 필수유지업무협정이 체결되거나 제42조의4제2항의 규정에 따른 노동위원회의 결정이 있는 경우 사용자에게 필수유지업무에 근무하는 조합원 중 쟁의행위 기간 동안 근무하여야 할 조합원을 통보하여야 하며, 사용자는 이에 따라 근로자를 지명하고 이를 노동조합과 그 근로자에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밝혀 노사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한 명시가 없는 상태다.

이에 노조에서는 오는 29일 지노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할 예정이다. 지노위의 유권해석은 통상 10여일 후 해석 결과가 발표된다.

노조측에서는 자칫 이러한 법리해석 다툼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업에 돌입해 불법파업으로 규정될 경우 조합원의 피해가 예상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측의 비상근무지침에 대한 불법성 문제

또한 노조는 사측이 총파업을 1시간 앞둔 26일 오전 4시를 기해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 명의의 비상근무지침을 내려 파업을 원천봉쇄하려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고 주장하며 김 사장에 대한 고소ㆍ고발을 단행했다.

사측의 비상근무지침은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인한 위급한 상황에 전 직원을 비상대기시키는 것으로 3조 2교대 근무가 2조 맞교대 근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규에 따르면 7일간 무단 결근시 해고사유가 되기 때문에 노조의 파업발생시 기존대로 한다면 약 15일 정도 지나야 사규가 규정한 무단결근 7일이 확보되지만 비상근무지침을 내리면 7일만 지나도 무단결근 사유가 확보돼 파업참가 조합원에게 심리적 압박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었다.

실제 사측의 비상근무지침에 상당수의 조합원이 회사 근처 찜질방이나 회사에서 대기하는 등 동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에 대한 부감담도 작용한 듯

이와 함께 지난 19일 서울메트로노조 김영후 위원장이 총파업 선언 기자회견에서 “사측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있을시 총파업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듯이 총파업에 대한 부담감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파업과는 달리 여론의 동향이 부정적이지 않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등 경기침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MB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법리 해석없이 섣불리 파업에 돌입하기 보다는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를 계속 모으면서 파업 수순을 밟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조합원들의 내부 동요 또한 집행부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문제로 등장했다. 합법 파업으로 사법당국에 쫓기며 파업대오를 유지하는 위험은 사라졌지만 무노동무임금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사측의 방침과 필수유지업무제도로 인해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파업 장기화에 버틸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조합 내부의 의견이다.

파업 잠정 유보로 집행부 행보에 어려움 예상

노조측은 “교섭과 파업은 중단과 유보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총파업 잠정 유보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노조는 26일 총파업 성사를 위해 내부 결속을 유지해왔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총파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지만 26일 새벽 총파업이 유보되면서 조합원들의 열기가 상당부분 식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총파업 잠정 유보 결정을 내린 집행부에 대한 조합 내부 의견그룹들의 비판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적 조합원들은 총파업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공세적으로 피력할 것이며 강경파 내에서도 이번 유보결정으로 지도부의 투쟁성과 선명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현 집행부가 이러한 악조건을 이겨내고 조합원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