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물품 지나친 물량··· 온라인 배송기사들 위협한다
무거운 물품 지나친 물량··· 온라인 배송기사들 위협한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3.18 16:48
  • 수정 2020.03.31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트노조 "쿠팡맨 사망은 예견된 산업재해"
"과로와 중량물에 고통받는 온라인배송노동자 대책 필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가 18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과로와 중량물로 쓰러지는 온라인배송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는 기자회견 진행 전 최근 일하던 도중 사망한 쿠팡 배달노동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기자 dsjeong@laborplus.co.kr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가 18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과로와 중량물로 쓰러지는 온라인배송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 기자회견 진행 전, 최근 일하던 도중 사망한 쿠팡 배달노동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이런 식으로 계속 일하다 보면 쿠팡 기사님처럼 과로로 누구 하나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 A씨는 최근 새벽배송을 하다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4~5층 사이 계단에서 쓰러져 숨진 쿠팡맨 김 씨(46)의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가 쓰러진 배경으로 과도한 물량과 중량물로 인한 '과로'가 지적되는 가운데 대형마트 온라인배송기사들도 같은 이유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A씨를 비롯한 온라인배송기사들이 속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위원장 김기완, 이하 마트노조)은 18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노동자 사망사고는 예견된 산업재해"라며 사측과 고용노동부에 "과로와 중량물로 쓰러지는 온라인배송노동자에 대한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온라인배송기사들은 과도한 물량으로 인해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 B씨는 "이전에도 배송물량이 많았는데 코로나19 이후 물량이 2배 가까이 늘었다"며 "우리 점포에는 허리 통증은 물론이고 곳곳에 통증을 호소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마트노조에 따르면 홈플러스 모 점포는 오후 6시에 나가야 할 마지막 배송이 밤 10시에 나간 경우가 있으며 배송기사들은 홈플러스가 아닌 각 운송사와 계약한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연장수당과 휴일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가 1건으로 배송한 물량 ⓒ 마트산업노조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가 한 건으로 배송한 물량 ⓒ 마트산업노조

이들은 특히 '과로'의 주요 원인으로 우체국택배나 일반 택배회사와 달리 온라인배송기사들은 중량물 제한 없이 배송하고 있는 구조적 배경을 꼬집었다. 마트노조는 "일반 택배는 35kg 이상, 우체국택배는 30kg 이상 상품은 취급을 제한하지만 대형마트, 쿠팡 등 온라인배송기사는 중량물 제한 없이 배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정 마트노조 사무처장은 "생수 12묶음에 다른 상품까지 합해 100kg이 넘는 상품을 배송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며 "거기에 합배송이라도 하면 본주문보다 추가주문이 몇 배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배송기사들은 이처럼 과도한 물량과 중량물에 시달리고 있지만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라 제대로 쉴 수도 없다고 호소했다. 김민수 온라인배송지회(준) 준비위원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배송기사들이 쓰러져가고 있다"며 "치료 기간 중 하루 수입보다 더 많은 용차(대신 배송해주는 업체)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배송할 사람을 섭외해야 하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용차 비용으로 제대로 된 휴식이나 치료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홈플러스 온라인배송기사 B씨도 "평소 용차 하루 비용이 18만 원 정도였지만 최근 한 기사가 과로로 쓰러질 것 같아서 하루 용차를 사용했더니 50만 원이었다고 들었다"며 "우리의 하루 벌이가 9만 원 정도인데 병원을 가려고 해도 도저히 비용 부담 때문에 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이 '합배송개선' '중량물 기준 마련' 등 온라인배송기사의 과로를 막기 위한 요구사항이 적힌 스티커를 노란 배송 상자에 붙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이 '합배송개선' '중량물 기준 마련' 등 온라인배송기사의 과로를 막기 위한 요구사항이 적힌 스티커를 노란 배송바구니에 붙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기자 dsjeong@laborplus.co.kr

온라인배송기사들은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가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트노조는 "회사는 자신들의 매출 창출을 위한 핵심업무인 배송업무를 수행하는 배송기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배송기사의 고강도 노동과 장시간 노동에 대한 노동강도 감소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마트노조는 중량물의 경우 인센티브 제도로 중량 기준을 낮출 것을 제안했다. 마트노조는 "홈플러스는 중량물에 대한 보상을 지급한다면서 70~84kg까지 무게가 나가는 생수 7묶음 또는 쌀 140kg 또는 절임배추 200kg 이상의 주문이 발생할 경우 1만 원을 지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며 "이 기준은 보상기준이라기보다 혹사기준에 어울리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현실적"인 중량기준을 완화하기 위해서 정민정 마트노조 사무처장은 "무게가 우체국택배 기준인 30kg 이상이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식으로 중량 기준을 낮추는 현실적인 방향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마트노조는 "이익을 얻는 대형마트가 정당한 보상을 해야지 고객의 배송료를 인상하는 식으로 고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고용노동부에도 책임을 요구했다. 마트노조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중량물에 대한 지침이 있지만, 온라인배송노동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인 상황"이라며 "노동부는 배송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대한 파악을 시작으로 온라인 배송노동자들이 다시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