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일하고 있습니다!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일하고 있습니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3.20 11:12
  • 수정 2020.03.21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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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연기, 학교와 집 오가며 일하는 교사
"교사 혐오인식 조장하는 표현 지양해야"
전교조, “학사일정 조정 및 수업시수 감축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필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표현에 대한 반발이 거센 가운데,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된 상황에서 교사의 일과를 살펴봤다. 기사 중 일부 내용은 한희정 교사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한희정 교사의 일주일

□ 주중 3일, 긴급돌봄지원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된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 전교조 조합원이자 서울실천교사 대표인 한희정 씨는 여느 때와 달리 조용한 3월의 학교로 출근한다.

긴급돌봄에 지원한 한희정 교사는 일주일에 3일을 학교에 간다. 실제 긴급돌봄지원은 일주일에 2번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비상 대기조로 하루 더 출근하기로 했다. 긴급돌봄지원 교사가 밀접접촉자로 통보를 받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돌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희정 교사는 “우리 학교는 비상 대기조가 학년마다 한 명씩 따로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인 한희정 교사는 교실에 들어서면 먼저 아이들 등교 명단 리스트를 확인한다. 아이들은 개학연기로 학교에 가지 못하면 돌봄 공백이 생기는 맞벌이부부 등의 자녀들이다. 한희정 교사 교실에는 하루 8명 안팎의 아이들이 온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면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손을 씻게 하고, 체온을 재고, 그날 참여자 수와 체온 이상자 유무를 보고한다.

위생 지도가 끝나면 학습, 놀이 활동 시간이다. 긴급돌봄은 개인 자율학습이 원칙이다. 한희정 교사는 2m 간격으로 아이들을 책상에 앉힌다. 독서를 하게끔 유도하지만, 한창 개구질 시기 아이들은 금세 몸을 들썩인다. 한희정 교사는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함께 부채 만들기 같은 실습활동이나, 각자 제자리에서 몸만 움직여 할 수 있는 구구단 놀이, 눈치게임을 한다. 아이들을 교실에만 둘 수 없다는 생각에 함께 운동장에 나가서 산책도 한다.

어느덧 12시.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은 배달 온 도시락 뚜껑을 연다. 서울시 교육청이 긴급돌봄참여 학생에게 1인당 5,000원씩 중식비를 지원해서 마련한 도시락이다. 한희정 교사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 뚜껑을 연다. 한희정 교사는 “교사 급여에 정액급식비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긴급돌봄지원 교사들은 따로 도시락을 챙겨온다”고 했다.

긴급돌봄지원 교사는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12시 50분까지 아이들을 돌본다. 정상적인 학교운영과 동일한 시간 편성이다. 오후 1시부터 나머지 시간에는 돌봄전담사가 아이들을 책임진다. 학부모가 신청할 경우, 오후 7시까지 돌봄전담사가 아이를 돌봐준다.

한희정 교사가 속한 학교에서 긴급돌봄을 신청한 아이들은 60여 명이다. 성북구에서 가장 많은 수다. 오후 4시 30분이면 아이들은 모두 하교한다. 그 이후 긴급돌봄을 신청한 학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긴급돌봄을 지원한 한희정 교사가 아이들을 기다리는 아침 교실. 개학 없는 3월, 칠판에는 “안녕 반갑다. 친구야!”란 문구가 적혀있다 ⓒ 한희정 교사
긴급돌봄을 지원한 한희정 교사가 아이들을 기다리는 아침 교실. 개학 없는 3월, 칠판에는 “안녕 반갑다. 친구야!”란 문구가 적혀있다 ⓒ 한희정 교사

□ 주중 2일, 재택근무

한희정 교사는 학부모 단체 채팅방을 개설했다. 매일 아침 단톡방을 통해서 학부모들에게 인사하고, 학습에 도움될 만한 자료가 있으면, 아이와 함께 하라고 권한다. 교육부는 아이들 재택 교육에 온라인 강의실을 활용하라고 교사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EBS, 에듀넷에 온라인 강의실을 개설하고 학부모들에게 안내했다. 반응은 좋지 않다. 학교에 못 오는 아이들이 집에서 좀 더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아이들이 EBS, 에듀넷을 재미없어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내 경우 학부모에게 추천 영화리스트를 전달하고, 영화 보기 전후에 할 수 있는 학습 활동을 소개한다. 원래는 학교에 있을 아이들과 하루 종일 있으려면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런 부담을 덜어주고자 이런저런 활동을 소개해드리는 거다.”

그렇게 한 단락 끝나면 학부모들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개학연기 관련한 뉴스를 보면서 생긴 궁금증, 개학 후 수업은 어떻게 계획 중인지 등을 질문하면 답하는 식이다.

단톡방 업무를 마치면, 다음은 학년교육과정 운영업무를 볼 차례다. 한희정 교사는 학습준비물 담당이다. 학년별 수업에 쓸 교구(敎具)를 준비한다. 3월 16일에는 3학년 아이들이 수학 시간에 쓸 분수학습 교구를 살펴봤다. 저가 사이트를 돌아보며 아이들 4명이 한 세트씩 쓸 수 있게끔 수량과 예산을 맞추기 위해 엑셀을 두드린다.

초등학교 학습준비물 담당 교사들은 직접 교과서를 살펴서 올해 필요한 준비물 목록을 만든다. 예상 금액에 맞춰서 구매 계획서를 작성한 뒤, 같은 학년 교사들에게 알린다. 교사들이 논의한 끝에 구매물품이 정해지면, 행정실장과 교장에게 결재를 올린다. 승인 받은 물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학교카드로 결제한다. 배달 온 교구의 검사‧검수까지 완료하면 학습준비물 담당 업무가 끝난다.

한희정 교사는 “재택근무 업무 하나하나는 사소하지만, 건건이 하다보면 하루가 다 가 있다”고 말한다.
 

□ 소통에 벽이 된 재택근무

개학이 미뤄지면서 교사들은 반 아이들을 한 번도 못 만난 채 온라인으로 소통 중이다. 새롭게 학년이 올라가서 대부분 처음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가정환경, 형편이 어떤지도 모르고 학부모와 비대면으로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한희정 교사는 재택근무의 고충을 호소하며, 개학이 돼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길 바란다고 했다.

“어느 교사도 재택근무를 선호하지 않는다. 재택근무로는 아이, 학부모와 소통이 극히 제한적이다. 교사는 아이가 어떤 성향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2학기나 학년 말이라면 지금보다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학부모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상태니까, 연락에 답이 없어도 ‘바쁘시니까, 직장 다니시니까’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은 학부모에게 연락해서 답장이 없으면 그 학부모가 연락 자체를 거부하는 건지, 바쁜 건지, 기분이 안 좋은 건지, 아이는 어떤지 가늠할 수 없다. 문자든 톡이든 그냥 깜깜한 공간에 던지는 느낌이다”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표현...교사 혐오인식 조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5일 페이스북에 작성한 댓글이 교사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조희연 교육감은 시민과 개학연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 “학교에는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과 ‘일 안 하면 월급 받지 못하는 그룹’이 있는데 후자에 대해선 개학이 추가로 연기된다면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썼다. 해당 표현은 학교 정규직인 교사와 교육행정직 공무원을 지칭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16일 조희연 교육감은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표현에 대한 사과문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같은 날 오전 코로나19 관련 긴급 추경 편성 온라인 브리핑에서도 "묵묵히 헌신과 희생을 다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또 한 차례 사과했다.

16일 오전 코로나19 관련 긴급 추경 편성 온라인 브리핑에서 교사들에게 사과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서울특별시교육청
16일 오전 코로나19 관련 긴급 추경 편성 온라인 브리핑에서 교사들에게 사과하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서울특별시교육청

한희정 교사 사례가 모든 교사를 대표하지 않지만, 많은 교사가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교사들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고, 교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고 강화하는 표현을 썼다며 조희연 교육감을 비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지부장 조연희)는 16일 “과중한 행정업무, 도를 넘는 악성 민원, 교사 홀대에 이어 교사혐오까지. 서울교육의 수장이라면, 학교의 교육 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사를 ‘일 안 하고 월급 받는 그룹’이라고 지칭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조희연 교육감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평했다.


□ 3차례 개학연기, 수업시수 조정 혼란

개학연기로 인한 교사의 고충은 학사일정 조정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3월 17일 3차 개학연기 발표로 개학은 4월 6일로 연기됐다. 교육부는 이에 맞춰 수업일수와 수업시수(교육법시행령 상 각 교과목을 이수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감축을 허용했다. 교사들은 감축된 수업일수와 수업시수에 따라 과목별 수업시수를 조정하고 학년 교육과정 편성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개학이 3번 연기 됐으니 이번이 네 번째다.

문제는 수업시수 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있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이 아닌, 창의적 체험활동의 수업시수를 감축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다. 하지만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시행하도록 규정된 안전교육, 성폭력예방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등 범교과 교육 시간이 과중해서 창의적 체험활동 단축에도 한계가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권정오)은 “학사일정 조정 및 수업시수 감축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 신속한 후속 조치와 장기적으로는 과도한 수업일수와 수업시수 감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천교육교사모임(회장 정성식)은 15일 성명에서 “시기나 시간까지 규정되어 학교 현장을 옥죄고 있는 각종 범교과 교육을 대폭 정비해야 한다”며 “(과중한 범교과 교육 탓에) 학교가 이미 상시적인 지침 위반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하면서, 개학연기에 따른 수업시수 조정에 법적 안정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