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펄어비스, '당일 해고' 논란
게임회사 펄어비스, '당일 해고' 논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3.24 17:04
  • 수정 2020.03.24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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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노동자 10명의 증언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는 누가 보호해주나”
3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IT노동자 갈아넣는 블랙기업 펄어비스 디버그하겠습니다’ 기자회견 현장.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오른쪽)과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공동성명(네이버지회) 지회장(왼쪽).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게임회사 펄어비스의 ‘부당노동행위’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당일 권고사직’ 등 펄어비스 재직 및 퇴직 노동자들의 주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3월 24일 10시 20분 국회에서 ‘IT노동자 갈아넣는 블랙기업 펄어비스 디버그하겠습니다’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펄어비스는 2010년 9월 창업한 게임회사로 ‘릴 온라인’과 ‘검은 사막’ 개발로 게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건 지난 17일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악덕 기업 펄어비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다.

해당 글에서는 “요즘 시대 구멍가게 수준의 기업도 아닌데 펄어비스가 당일 해고를 밥 먹듯이 한다”면서, “사람 피 말리다 하루아침에 자르는 게 일상이다가 드디어 오늘 팀 단위로 여러 곳이 당일 해고 당한 듯”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블라인드에서는 펄어비스 전현직 노동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정의당과 화섬식품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펄어비스 재직 및 퇴직 노동자 10명의 증언을 취합해 발표했다.

당일 권고사직은 ‘문화’였다

“원래 그랬기 때문에 왜 이번에 논란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회사의 말처럼 대량의 권고사직이 한 번에 된 것은 아니에요. ‘꾸준히 당일 해고를 밥 먹듯이 한다’가 맞습니다. ‘안 맞는다’, ‘실력이 없다’, 등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한 뒤 사인하게 만듭니다. 근속연수는 상관이 없어요. 모두가 공평하게 당일 통보입니다. 권고사직 중 당일 퇴사가 아닌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제 옆자리가 나가는 것도 몇 시간 전에 알아요. ‘저 오늘 나가래요. 안녕히 계세요,’ 이런 대화가 이상하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야근 했는데 당일 통보받아서 서렵게 울던 분도 생각나네요.”

이날 증언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당일 권고사직’이 횡행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펄어비스의 2019년 3분기 기준 평균 근속연수는 1.7년으로 짧은 편이다. 주요 12개 게임업체 평균은 3.7년이다. 해고와 다름없는 권고사직의 이유로는 ‘회사의 방향성과 맞지 않아서’, ‘리더 그룹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등 불분명한 이유가 다수였다.

회사도 당일 권고사직에 대해서 일부 인정했다. 정경인 펄어비스 대표는 19일 사내 공지를 통해 “신속한 보안 조치가 필요하거나 징계로 인해 더 이상의 근무가 어려운 특수한 경우를 원칙으로 했지만, 때로는 당사자의 양해를 구했다는 이유로, 혹은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이유로 당일 퇴사가 이뤄지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펄어비스의 당일 권고사직 증언 글.

포괄임금제 없다만, 장시간 노동은 여전

“주 52시간제를 피하기 위해서 재량근로제를 도입합니다. 윗선에게 대상자들에게 ‘주말에도 나와라’고 합니다. 저도 주60시간을 넘겨 일했어요. 재량근로제를 거부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럼 재미없을 줄 알아라’는 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일개 직원이 거부하기는 힘듭니다.”

‘포괄임금제’는 IT 및 게임업계에서 장시간 노동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제도다. 포괄임금제란 어떤 노동자가 ‘평균적으로’ 주 52시간을 일하는 경우, 초과 노동시간에 대한 수당을 사전에 약정된 금액으로 받는 제도다.

포괄임금제는 사용자에게 연장-야간 수당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회사가 개별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따로 기록하지 않아야 하기에 주52시간 상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펄어비스는 2017년 선도적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했지만, ‘재량근로제’ 등으로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재량근로제는 노동시간과 업무 수행 방식을 노동자가 재량껏 결정하여 근무하도록 하는 유연근로시간제의 한 형태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직무에 한해 적용할 수 있고, 시행 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대표의 합의가 필요하다.

증언에 따르면, 펄어비스는 재량권이 필요한 직무의 노동자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에게 시행됐다. 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또한, 재량근로제 도입과정에서 적절한 조치를 밟지도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노동조합이 없는 펄어비스에서는 근로자 대표의 합의를 받아야 하지만, 정작 “근로자 대표가 누군지 들어본 적 없었다”는 주장이다.

IT-게임 업계에서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펄어비스는 당일 권고사직이 일상화된 업체였다. 그런데 그런 업체가 작년 말에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일자리 사업에서 포상을 받았다”며, “불법 부당노동행위가 횡행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역할을 다했을 때 노동인권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된다. 펄어비스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더 이상 노동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게임업계 노동자였던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놀랍지 않은 증언들이었다. IT-게임 업계에 종사했던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은 권고사직을 막아낼 힘이 없다”면서, “포괄임금제 폐지는 제도로 완성하고, 재량근로제 확대를 종용하는 가이드를 폐지해야 한다. IT노동자를 위한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주52시간 상한제를 위반하는 기업에 대한 근로감독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류호정 후보는 정의당 IT노동상담센터 ‘디버그’를 통해 IT-게임업계 노동자들의 부당함을 추가 제보 받겠다고 밝혔다.

한편, 펄어비스는 논란 이후 여러 차례 사내공지를 통해 ▲퇴사 프로세스와 관련 절차 강화 및 준수 ▲저성과자,업무 부적응자 관리방안 개선 ▲권고사직자 복지 혜택 중단 유예 ▲주52시간 준수 여부 확인 ▲고충처리 위원회 활성화 ▲괴롭힘-성희롱 등 이슈를 익명으로 접수해 해결 ▲모든 업무일정을 주40시간 기준으로 산정 등을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