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집단감염 그후, "정부 대책 보면 화가 난다"
콜센터 집단감염 그후, "정부 대책 보면 화가 난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3.26 16:44
  • 수정 2020.03.26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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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정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지회장, "노동부는 일부 콜센터만 조사"
민주노총 콜센터 노조들, 1차 공동행동 확대 계획
염희정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지회장이 25일 낮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콜센터 원청 책임강화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1인 피켓 시위에 나섰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염희정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지회장이 25일 낮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콜센터 원청 책임강화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1인 피켓 시위에 나섰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구로콜센터 집단감염 원청 ACE보험이 책임져야 합니다.' 
'한국장학재단콜센터 원청 한국장학재단이 책임져야 합니다.'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3년 차 상담사 염희정(45·사진) 지회장(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 한국장학재단콜센터지회)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피켓에 적힌 문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최근 콜센터 집단감염으로 드러난 열악한 노동조건의 근본 원인을 '외주화'로 보고 정부에 원청책임 강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지만 재단과 2년 도급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소속인 염희정 지회장을 만나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 이후 현장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잇따른 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물었다.  

콜센터 집단감염 이후,
현장 얼마나 바뀌었나?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낱낱이 드러났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좁은 책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환기도 어려운 사무실에서 업무 특성상 온종일 침방울을 튀기며 일하고 있었다. 하루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잠깐 병원 가기도 어려워 아파도 쉴 수 없었다. 정부도 서둘러 대책을 내놨다. 2주가 흐른 지금, 콜센터 노동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장학재단의 경우 12일부터 거리두기를 위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300여 명의 상담사가 돌아가며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방식으로 출근 인원을 조정했다. "완벽하게 한 칸씩 띄어 앉지는 못하지만 물리적 거리가 약간은 확보된 상황"이다. 근무인원이 줄어든 만큼 노동강도는 높아졌지만 상담원들은 함께 감수하고 있다. 염희정 지회장은 "노동강도는 높아졌지만 서로의 안전을 위한 일이기에 다들 감수하고 있다"며 "물론 고객 입장에서는 빨리빨리 전화 연결이 안 되고 마스크를 낀 상담원과 소통이 불편할 수 있지만 조금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은 "그나마 좋은 지원"을 받은 편이다.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 가입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1,358개 콜센터 중 공공 콜센터는 156곳으로 10%도 안 된다. 90% 이상은 민간 콜센터인데다 콜센터 업계의 고질적인 원하청 구조 문제 때문에 정부도 쉽게 노동현장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염희정 지회장은 "대부분의 콜센터가 아직도 마스크, 손세정제 등을 개인이 준비하고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정부 대책 보면 화가 난다" 

고용노동부는 12일 '콜센터 코로나19 감염병 예방 지침'을 시행하며 전국 콜센터 긴급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16일에는 상시노동자 50명 미만 중·소규모 콜센터의 시설 개선에 최대 2천만 원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잇따른 정부 대책에 대해 염희정 지회장은 "화가 난다"고 이야기했다. 염희정 지회장은 "고용노동부가 전국이 아닌 일부 콜센터만 조사했고 방문시간도 미리 정해서 센터장이나 관리자들하고 10분 정도 만나고 돌아간 게 다"라면서 "현장 노동자들에게 방역조치가 잘 되고 있는지, 마스크 등은 지급받는지 등은 묻지 않는 보여주기 식이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핵심 대책으로 요구한 '원청 책임 강화'가 빠져 있었다. 대부분 하청업체인 콜센터는 원청이 주는 용역비 이상으로 노동조건을 바꾸는 데 투자하기 어려워 원청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도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도급단가는 정해져 있고 인건비만 따먹는 구조인 하청 구조에서 원청이 책임지고 시행하지 않으면 시설도, 시스템 점검도 불가능하다"며 "무분별한 외주화 남발을 금지하고 방역을 비롯한 예방조치, 휴업수당 지급에 대해 원청이 직접 책임지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강제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콜센터 그렇게 힘들면
다른 데서 일하면 되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이후 열악했던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자 '그런 줄 알고 들어간 거 아니냐'는 온라인 댓글도 종종 눈에 띄었다. 염희정 지회장도 그런 댓글을 읽어 봤다고 했다.

"당연히 더 인정받고 더 대우받는 일을 하고 싶다"고 운을 뗀 염희정 지회장은 "콜센터 노동자 대부분은 중년 여성"이라며 "특히 50대 여성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나이 든 여성노동자가 콜센터에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사회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닭장'으로 표현되는 사무실에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은데다가 한 푼이라도 아쉬운 여성노동자들은 콜센터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물론 '한 푼'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람도 있다. 염희정 지회장은 국가장학금이 아니면 대학을 못 가는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을 주기 위해" "한 번이라도 더 기회를 주기 위해" 온종일 방법을 찾아보는 날이 많다고 했다. 염희정 지회장은 "도움이 정말 필요한 학생 한 명, 한 명을 보며 일한다"며 "끝까지 학생들을 도와서 각자 인생에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보람,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가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코로나19 확산 위험지대, 콜센터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콜센터지부가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코로나19 확산 위험지대, 콜센터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민주노총 콜센터 노동조합
1차 공동행동 확대

염희정 지회장을 비롯해 더 안전하고,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콜센터 노동자들은  24일부터 1차 공동행동에 나섰다. 민주노총 산하 콜센터 노동조합들은 각 콜센터 원청 앞에서 1인 시위, 기자회견 등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는 아파도 쉴 수 없게 만드는 실적성과연계를 폐지하고 방역을 비롯한 예방 조치, 휴업수당 지급을 원청이 직접 하도록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콜센터 노조들은 고용노동부와 25일 오후 2시 서울에서 '콜센터 코로나19 대책' 관련 실무협의도 진행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확산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점검 항목 보완, 콜센터 감독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 원청 중심 감독 등을 요구했다"면서 "고용부가 항목 보완 등은 검토할 의향을 비쳤지만 원청 중심 감독은 쉽지 않은 문제라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기 대책은 노동조건 개선 문제였다"면서 "특히 공공기관 콜센터는 정규직화 문제가 있다. 이날 실무협의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다른 논의 틀에서 다뤄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이날 협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의 추가·보완 대책을 점검하면서 27일로 예정됐던 1차 공동행동을 다음 주까지 연장하고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최명선 실장은 "이번 주는 1인 시위를 했지만 앞으로 조합원 단위까지 확대해 인증샷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집단행동 규모를 키우고, 민주노총 다른 산하 가맹과 시민사회에도 연대를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