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세대론을 제기한다
[손광모의 노동일기] 세대론을 제기한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3.30 18:49
  • 수정 2020.03.30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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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평균 54.8살, 남성 81%.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윤곽이 잡혔다. 요약하자면 ‘아재’ 내지는 '할재'들 판이고, 이번에도 ‘청년 정치’는 물 건너갔다.

누군가는 ‘세대론’을 허구라고 주장한다. 세대론이 허구라는 이들은 청년 문제는 현상일 뿐 기저에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청년들이 겪고 있는 주거, 실업, 가난 등이 ‘청년들만 겪는 문제’는 아니며, 따라서 청년에 집중하기보다 주거, 실업, 가난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대론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왜 한국인을 대의하는 국회는 중년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뾰족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기득권은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것인데 말이다. 여기서 이번 총선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던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를 둘러싼 논란은 세대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의당은 합의에 따라 청년/여성/노동 분야 후보에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20대 여성이자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했던 류호정 후보는 실제 투표에서는 당선권 바깥의 낮은 순위에 그쳤지만 가산점에 힘입어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됐다. 하지만 곧바로 ‘대리 게임’ 과 ‘후보자 부적격’ 논란이 제기됐다. "몇 년 전까지 게임 BJ로 활동하던 '애'가 국회의원이 된다더라"는 식이다.

청년 혹은 여성 류호정과 달리 국회의원 후보 류호정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걸 강제할 이유도 없고, 또 강제해서도 안 된다. 어쩌면 당연한 명제다. 하지만 단지 '어리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한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류호정 후보는 대리 게임 논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또 사과할 것은 사과했다. 그런데, 자질에 대한 지적은 청년 후보의 입장에서 뭐라 대응할 말이 없다. 나이가 적으니 경력이 부족한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모두 다 경력자를 뽑으면 경력은 어디서 쌓냐!’ 취업시장 청년의 절규는 국회 문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논란의 와중에 진행된 <참여와혁신> 인터뷰에서 류호정 후보는 자신에게 제기되고 있는 전문성 문제에 대해 “당연히 청년이고 경험이 적은데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하면서, “하지만 청년과 여성을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한 이유가 있다. 청년 한 명 있냐, 없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흔히 세대론을 말할 때 나이 지긋한 상사와 밀레니얼 세대 부하직원 회식 자리를 떠올린다. 자상한 상사의 ‘라떼’ 조언은 부하 직원에게 불편하고 불필요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를 ‘위선적’이라고 표현한다. 그 배경에는 ‘옛날에는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사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청년들이 회식자리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훨씬 더 미시적이다. ‘말의 힘’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 기성세대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이다.

많은 회사와 조직에서 자유롭고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강조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소통의 실패를 극복해보고자 세대 간 문화 차이를 이해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도다. 기성세대가 상상하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의사결정’이 사실은 청년들에게 '포장된' 군대식 상명하복 의사결정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정당이 청년의 정치참여를 슬로건으로 내걸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석연치 않지만 세대론은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국회는 UFC 옥타곤을 제외하고 나이와 계급장 떼고 정말로 한 판 붙을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류호정 후보를 둘러싼 논란, 청년은 씨알도 없는 국회의원 후보 목록의 배경에는 기성세대들이 라이오스 왕이 가졌던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이오스 왕의 아들은 오이디푸스다. 청년의 정치참여를 두려워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