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 비정규직 노조 투쟁에 작은 변화 '꿈틀'
대구MBC, 비정규직 노조 투쟁에 작은 변화 '꿈틀'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3.31 17:28
  • 수정 2020.05.11 0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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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건당 임금 지급 강요한 대구MBC
대구MBC "비정규직 노조와는 교섭 않겠다"
다온분회 "우리는 주체로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선다"

2019년 1월 31일. 대구MBC 비정규직 노조가 출범했다. 노조 출범 당시 한 조합원이 '모든 좋은 일이 다 들어온다'는 뜻의 순우리말 '다온'을 넣자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국언론노조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분회장 윤미영)를 이름으로 정했다.

2019년 1월 31일 다온분회 결성 총회가 열린 대구MBC 7층 대강당.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2019년 1월 31일 다온분회 결성 총회가 열린 대구MBC 7층 대강당.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건당 임금 지급 방식으로 전환,
싫으면 조합원끼리 회사 만들라"


3월 3일, 편성제작국 자막CG팀 조합원 2명이 대구MBC 편성제작국 보직국장에게 들은 말이다. 보직국장은 두 노동자에게 현재 지급하는 주급은 없애고, 프로그램 건당 임금을 지급하는 '바우처 형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통보했다.

다온분회에 따르면, 자막CG팀 22년 차 조합원의 주급은 약 41만 원, 6년 차 조합원의 주급은 약 32만 원이다. 이들은 노동 시간에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액수를 받는 ‘정액제’로 임금을 받고 있다. 연차수당, 야간수당 없이 명절‧야간근무를 이어가며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를 받는다.

비록 낮은 액수지만 주급은 일정 소득을 보장한다. 조합원들은 현재 기본급 개념으로 받는 주급에 더해 협찬이 붙은 프로그램에 한해서 추가수당을 받고 있다. 추가수당은 프로그램 내 한 코너만 맡을 경우 약 4만 8,000원, 프로그램 전체일 경우 약 9만 7,000원이다. 협찬프로그램이 줄어들면 임금도 줄지만, 그나마 주급이 있어서 일정한 월 수익을 보장받는 것이다.

반면, 주급 없는 바우처 방식으로 전환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온전히 담당하는 프로그램 개수에 따라 정해진다. 재난, 선거 등 편성국 프로그램이 줄어드는 시기에 편성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릴 우려가 있다. 윤미영 분회장은 "코로나19로 보도국 프로그램은 늘었지만, 예능‧문화 분야 등을 맡는 편성국 프로그램은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3월 1, 2주에 방송이 예정됐던 편성국의 주간 정규 방송 3개 중 1개 방송이 결방했다. 총선 시기인 4월 1, 2주에는 주간 정규 방송 3개 중 2개 방송이 결방 예정이다. 방송국이 하루에 방송할 수 있는 프로그램 수는 한정적이다. 보도국 프로그램을 늘리려면 편성국 프로그램은 줄여야 한다. 임금이 줄어드는 걸 피할 수 없다.
 

매일 출근하는 '프리랜서'

다온분회 분회장을 맡게 된 보도국 자막CG팀 윤미영 씨는 2012년과 2017년 두 번의 '공영방송 정상화' 파업 중 고용불안을 겪으며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2년 차부터 22년 차까지, 열악한 노동 현실에 갑갑함을 느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합류했다.

윤미영 분회장은 "하루에 두 번 출근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 작년 보도국 자막CG팀 한 명이 퇴사하면서 결원이 생겼는데 충원을 해주지 않았다. 교대근무 특성상 업무에 오전 1명, 오후 2명이 필요하다. 1명이라도 휴가를 가거나 비번이 생기면 나머지 2명이서 오전, 오후 근무를 다 해야 한다. 2명 중 1명은 오전에 출근했다가 퇴근 후에 다시 오후 근무를 하러 방송국에 가야 한다"며 현장의 고충을 전했다.

다온분회 조합원 수는 설립 당시 15명이었다. 이후 4명이 퇴사하고 1명이 합류하면서 현재 12명이다. 퇴사한 조합원 4명은 퇴사 후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퇴직금과 함께 야간 휴일 수당, 연차 수당, 주휴수당을 받았다. 다온분회는 "퇴사 후에야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음으로써 지급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온분회 조합원들은 보도국 자막CG, 보도국 영상편집 편성국 자막CG, 편성국 사무행정, 기술국 MD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3교대 야간근무 혹은, 매일 생방을 운행하며 365일 교대로 근무한다. 다온분회는 "조합원들이 사실상 상근직이지만, 프리랜서라 불리며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노조와 교섭 없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대구MBC


다온분회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측에 교섭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사측은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노조의 교섭요구를 받지 않겠다'는 기조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다온분회는 작년 6월 비정규직 노동조건을 논하고자 경영국과 한 차례 협의자리를 가졌다. 윤미영 분회장은 "경영국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을 거란 걸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상급단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통한 공식적인 교섭 요구에도 사측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 논의는 시작과 동시에 그쳐버렸다.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대한 공식 논의는 정규직 노조인 MBC본부 대구지부와 사측 간에 먼저 이루어졌다. 당시 지부와 회사는 2019년 11월 2차 노사협의에서 조합 내 실무 협의팀을 구성해 회사와 단계적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진전은 없고 반전만 있었다. 사측이 다온분회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미뤄오다가, 편성국 자막CG팀 조합원 2명에게 건당 임금 지급 전환을 3월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다온분회는 회사가 신사옥이전, 인사발령, 비상경영발표 등을 이유로 노조와 만남을 미뤄왔다고 주장했다. 윤미영 분회장은 "회사에 신사옥이전을 위한 부지 매각 등의 큰 사안이 걸려 있어서,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해결될 때까지 공식적인 만남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대구지부에서 대구MBC 전체 비정규직 문제를 사측과 논의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주셨지만, 문제가 잘 해결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힘내라 대구MBC 다온분회!

다온분회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는 역시 주체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24일부터 "바우처 전환계획 즉각 폐기 및 노사 교섭"을 요구하며 피케팅과 '노란조끼 입고 업무하기'를 시작했다. 회사 구성원들에게 먼저 알려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서다.

다온분회는 매일 아침 출근시간(오전 08시 30분~09시 30분)과 점심시간(오후 12시~1시)에 대구MBC 앞에서 2인 1조로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또한 조합원들은 업무 시간에 모두 투쟁 조끼를 입으며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공론화를 위해서 '노란조끼입고 업무하기'를 하고 있는 다온분회 조합원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공론화를 위해서 '노란조끼 입고 업무하기'를 하고 있는 윤미영 분회장(왼쪽)과 다온분회 조합원들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투쟁을 시작한 이후, 대구MBC 정규직, 비정규직 구성원들이 다온분회의 투쟁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피케팅을 하고 있는 분회 조합원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거나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온 경우도 있다. 윤미영 분회장은 "피케팅 중이던 두 조합원에게 얼굴도 모르는 외부사람이 음료수 두 개와 함께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메세지를 주고 가셨다. 보도국 기자분께서도 고생이 많다며 커피를 사서 건넸다"고 전했다.

투쟁에 임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심정을 묻자, “우리 노조원들은 서로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날 정도다. 서로 걱정하고 다독여가며 투쟁에 임하고 있다”고 윤미영 분회장은 답했다.
 

"우리가 뉴스다!"

대구MBC는 공공기관, 민영기업 등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보도를 이어왔다. ⓒ 대구MBC 유튜브
대구MBC는 공공기관, 민영기업 등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보도를 이어왔다. ⓒ 대구MBC 유튜브

2019년 1월 31일 다온분회가 설립총회에서 외친 구호 중 하나는 "우리가 뉴스다!"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나타내는 구호이자, 동시에 비정규직 문제를 보도해왔던 대구MBC에 대한 자기반성 요구였다.

방송‧언론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대구MBC에만 있지는 않다. 인건비 인상과 인원 충원을 요구했다가 담당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한 뒤, '억울해 죽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2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등 방송‧언론계 내부 비정규직 문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한혜원 부분회장은 '오마이뉴스' 기고 글에서 "국민의 알 권리라며 다른 비리들을 파헤치는 모든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빼고 논하는 저널리즘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부디 비정규직 방송계 종사자들에게도 한 줄기 빛이 생기길 바란다. 우리는 투쟁으로 오늘 한 발자국 더 전진할 것"이라고 언론 스스로 방송‧언론계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길 호소한 바 있다.

윤미영 분회장은 31일 '참여와혁신'과 전화통화에서 "오늘 경영국이 자막CG팀 조합원의 바우처 전환 계획 취소를 알려왔다. 하지만 다온분회를 교섭상대로 인정하고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논의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MBC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윤미영 분회장(좌)과 한혜원 부분회장(우)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대구MBC 앞에서 피키팅을 하고 있는 있는 다온분회 조합원 ⓒ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