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3일째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면세점, 3일째 손님이 한 명도 없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3.31 14:44
  • 수정 2020.06.09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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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감염 공포 떨던 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
이젠 매출과 싸우며 매장에서 홀로 '스탠바이' 중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 이어 면세업계에도 후폭풍이 몰아쳤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면세점 매출은 1조 1,026억 원으로 1월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3월 들어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으로 접어든 만큼 실적 악화는 심화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관광운송업 등에 이어 면세업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가운데 코로나19 감염 공포에 떨던 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은 이젠 매출과 싸우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확대로 그나마 다행이라는 입장이지만 매장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홀로 손님을 '스탠바이'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당초 영업시간이 오전9시~오후 8시 30분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오전 9시~오후6시로 단축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당초 영업시간이 오전9시~오후 8시 30분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오전 9시~오후6시로 단축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3일째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인천국제공항 신라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인 박근영(45) 씨는 20년 동안 면세점에서 근무했지만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초반엔 감염에 대한 공포로 떨었지만 요즘은 매출과 싸움이 더해졌다. 근영 씨는 오전 6시 50분까지 매장에 출근해 환율표를 바꾸고 청소를 한 뒤로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고객이 와야 매장 정리, 빠진 물건 채우기, 서류작업 등 다른 업무가 연결되는데 지금은 매출도 고객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음 근무자가 오는 오후 3시 50분까지 근영 씨가 하는 일은 '스탠바이'뿐이다. 

실제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하인주, 이하 백화점면세점노조)이 한 면세점 내 7개 브랜드의 3월(1일~25일) 매출을 조사한 결과 7곳 중 6곳은 매출이 0달러, 나머지 1곳은 -405달러였다. 백화점면세점노조 면세업종 김성원 본부장은 "매출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취소가 있어서 마이너스가 나는 경우가 있다"며 "정말 손님이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다. 면세점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매출 충격에 인천공항점을 제외한 대부분 면세점들은 단축영업과 휴업으로 대응하고 있다. 롯데·신라·신세계 빅3 면세점은 하루 2~7시간 단축영업 중이다. 김포공항, 김해공항, 제주공항 면세점은 모두 휴업 상태다. SM면세점은 25일 2015년부터 운영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반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주부터는 연중무휴로 운영하던 면세점들이 법정공휴일에 쉬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면세점노조가 "남들 쉴 때 쉬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던 '공동휴식권'이 코로나19로 보장될 가능성이 높아진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됐다. 다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쉬는 날이 늘어나는 만큼 심리적으로 고용불안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비행기 편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인천공항 탑승동 쪽에서는 마지막 비행기 시간에 따라 면세점을 조기 폐점하는 경우도 생겼다. 김성원 본부장은 "노조 차원에서 조기 폐점으로 인한 임금 삭감은 막으려 한다"면서도 "만약 아침 10시 비행기가 마지막이면 그날 하루는 출근을 안 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엔 휴업수당 지급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시간 단축, 무급휴가··· 
비용절감 자구책 찾는 협력업체들

면세점에 입점한 협력업체들도 각각 무급휴가, 유급휴가, 로컬매장 배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실근무시간 기준 임금 지급, 계약직 정규직 전환 취소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전국 면세점 총직원 중 약 90%가 파견·협력업체 소속인 상황에서 면세점 매출 하락은 협력업체의 허리띠 졸라매기와 소속 노동자들의 고통분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화점면세점노조가 25일 조사한 결과 면세점 브랜드 22개 중 17곳은 7일 이상 무급휴직을 신청받거나 시행 중이었다. A브랜드의 경우 4월부터 백화점 등 로컬매장이나 로컬콜센터로 로테이션할 인원 신청을 받기도 했다. 김성원 본부장은 "해외에 못 나가는 고소득자들이 로컬로 몰려 몇몇 명품 브랜드들은 로컬 특수를 누리고 있어 면세점 직원들을 로컬로 로테이션하는 회사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 10년이 넘은 부루벨코리아는 2월에 5일, 3월에 10일 유급휴가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일부 브랜드는 무급휴가를 강제하기도 했다. 김성원 본부장은 "어떤 브랜드에서는 무급휴가 동의서를 매장에 내려보내고 점장이 사인하라고 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못 하겠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많은 노동자들이 동의 아닌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그나마 다행"

무급휴가 압박을 받던 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은 지난 25일 고용노동부의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대책 발표로 그나마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정부는 4월부터 3개월간 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모든 업종에 임금의 70% 정도인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기업이 해고 대신 고용유지를 택할 유인책이 마련된 셈이다. 

다만 기업이 10%라도 부담하는 정부의 유인책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인 상황이라 노동자들이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김성원 본부장은 "대부분 기업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하겠지만 지원금 신청 절차를 까다롭다고 생각하거나 10%도 부담하고 싶지 않은 기업은 마음만 먹으면 무급휴직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면세업계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
업종 연계된 업체들 모두 포함해야

백화점면세점노조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발표 이전에 면세업계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정부가 지난 16일 지정한 특별고용지원 업종은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본 여행업·관광숙박업·관광운송업·공연업 4가지로 이들 업종은 6개월간 휴업·휴직수당의 90%까지 지원받는다. 하지만 룸메이드 등 관광숙박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관련 업종으로 등록돼 있지 않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면세업계도 마찬가지다. 면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9명은 개별 브랜드에서 파견 나온 납품·협력업체 소속이다. 이들 업체들은 고용보험상 업종코드가 면세업이 아닌 도소매업, 무역업 등으로 등록됐다. 면세업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돼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김성원 본부장은 "면세점 업종으로만 묶어서 지정할 경우 해당 업종에서 함께 근무하는 수많은 협력업체는 사각지대에 놓인다"면서 "지정된 업종에 연계된 업체들까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성원 본부장은 기업을 통해서만 노동자에게 전달되는 정부 정책 구조를 바꿔 노동자가 기업을 거치지 않고 정부로부터 직접 혜택을 받는 방향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원 본부장은 "대부분 노동자는 회사 정책에 끌려가는 상황"이라며 "한시적으로라도 노동자들이 직접 자기 소득에 대해 증빙하면 고용유지지원금 중 정부부담금을 따로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제도가 뒷받침되면 노동자들에게 더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