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일했습니다. 퇴직금은 121만 원이고요”
“1년 일했습니다. 퇴직금은 121만 원이고요”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01 11:03
  • 수정 2020.04.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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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월 환산액 179만여 원에도 못 미치는 건설노동자 퇴직금
전 산업 평균 법정퇴직금 대비 37.6%, 건설노동자 노후는 어디로?

[리포트]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건설노동자 퇴직금, 실질화가 필요하다 ①

스물넷, 2018년 1월부터 형틀목수로 망치를 손에 쥐고 일을 시작했다. 앳된 얼굴에 비해 굵어진 마디, 두꺼워진 손등의 주인공은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산 씨다. 3월 25일 기준 그의 퇴직금 적립일수는 498일이다. 퇴직금 적립원금은 201만 400원이다. 그가 그날 일을 그만두고 퇴직금 신청을 했다면 201만 400원에 소정의 이자를 더해 퇴직금을 받는다. 만 2년 2개월여에 대한 퇴직금이다. 1년에 100만 원 조금 더 적립됐다는 것이다.

2020년 최저임금 기준 월 환산액은 179만 5,310원이다. 퇴직금제도는 사용자가 퇴직 노동자에게 계속노동기간 1년에 대해 30일분의 평균임금 이상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최소한으로 생각해도 1년 일하고 퇴직한다면 179만 5,310원 이상을 퇴직금으로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김산 씨의 1년 평균 퇴직금의 정체가 좀 이상하다. 굵어진 마디, 두꺼워진 손등에 대한 퇴직금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게다가 퇴직금 적립일수라는 말 자체도 그렇고, 왜 건설노동자는 퇴직금을 일별로 적립해야 하는지도 좀 이상하다.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퇴직금과는 뭔가 좀 달라 보인다.

청년건설노동자 김산 씨의 퇴직공제부금 적립액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청년건설노동자 김산 씨의 퇴직공제부금 적립액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없다가 생긴 퇴직금,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건설노동자는 퇴직금이 없었다. 제도적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에 관한 법은 1년 이상 동일한 사업장에서 일한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게 돼 있다. 건설 산업이 수주 산업이라는 특성이 있어 건설노동자들의 고용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으로 건설노동자들은 짧게는 1개월에서 최대 6개월 동안 같은 건설사에 채용돼 일한다. 그러니 건설노동자들은 퇴직금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퇴직금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건설노동자의 노동을 일별로 누적해 계산하는 것이다. 1년 안에 다수의 사용자에게 고용돼 일했더라도 건설노동자의 입장에서는 1년 동안 계속 건설노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일별 퇴직금 일액에 노동일수를 곱한 것이 곧 퇴직금이 되는 방안이다. 그런 방법이 있음에도 제도로 만들어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1996년 12월 31일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약칭 건설근로자법)’이 제정됐다. 그 안에 ‘퇴직공제부금 제도’가 신설되면서 건설노동자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96년 이전부터 건설노동자들이 퇴직금 및 사회보장제도 적용을 요구했지만, 제도로 반영되지 않았다. 결정적 계기는 1994년과 1995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였다. 대형건설사고의 연속적인 발생으로 건설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중에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드러났고 건설근로자법 제정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제정된 법에 따라 건설근로자공제회가 97년 12월 9일 설립됐다. 건설노동자의 퇴직금을 관리하는 기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98년부터 공제회는 퇴직공제제도를 시행했다. 건설사가 건설노동자 명의로 퇴직공제부금 일액을 건설노동자가 일한 일수만큼 공제회에 납부한다. 다른 건설사로 옮겨도 똑같은 방식이다. 그렇게 적립된 총금액에 이자를 더한 금액을 건설노동자는 퇴직금으로 받는다.

건설사가 납입하는 퇴직금은 퇴직공제부금으로 불린다.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금과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운영비 등으로 활용하는 부가금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부금’이라는 말이 붙었다. 현재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 일액은 5,000원이다. 실질적 퇴직공제금 4,800원 + 부가금 200원이다. 2018년 1월 1일 이후 발주 공사부터 적용된 액수이다. 기준이 발주시점이므로 2017년 말에 착공해 대부분의 공사를 2018년에 해도 2017년까지의 일액 4,200원을 적용받는다.

백이면 백 노후 걱정한다는 건설노동자,
현행 제도하에 1년 노동에 대한 퇴직금 121만 원

퇴직공제부금이 도입된 1998년 2,100원으로 시작해 5,000원으로 오르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최저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 인상률은 현실적이지 않았고 더디기까지 했다. 퇴직금이 노후를 위한 적립금이라고 했을 때 건설노동자들이 이 수준의 퇴직금으로 노후를 준비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참여와혁신>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건설노동자가 1년(252일 기준) 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은 121만 원이다. 전 산업 평균 법정퇴직금 대비 37.6%이다. 이 자료에는 “현행 퇴직공제금 적립수준은 다른 산업 근로자의 법정퇴직금에 비해 매우 낮아, 퇴직공제금 인상을 통한 실효성 제고 필요”라고 적혀 있다. 국회나 정부에서도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일액 인상은 지속적인 요청 사항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김산 씨도 본인의 노후가 걱정이라며 실제 현장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줬다.

“주변의 선배들을 보면 백이면 백 노후를 걱정해요. 1년에 125만 원(252 × 5,000원)이라고 단순 계산했을 때 10년이면 1,250만 원, 30년 일해도 4천만 원이 안 돼요. 4천만 원이라 쳐도 퇴직하고 2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1년에 200만 원 수준이죠. 그리고 4천만 원 가지고는 요즘 시대 개인 사업 종잣돈으로 활용하지도 못해요.”

“아, 그리고 이 제도가 98년도부터 시행됐으니 그 이전부터 일해서 이제 곧 퇴직을 앞둔 선배들은 98년 이전에 일했던 노동에 대해서는 퇴직금이 없죠.”

“물론 이 모든 것도 안 다치고 계속 일했을 때 이야기죠. 워낙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 강도나 산업재해율이 높다 보니까. 저는 이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일할 수 있다고는 장담 못 해요.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 해도 다른 사람의 실수로 다칠 수도 있고. 그래서 더욱, 제 이름으로 쌓인 퇴직금을 볼 때 노후 보장용이라기보다는 그냥 목돈, 큰 목돈도 아니고 그냥 쓸 수 있는 목돈으로 보여요.”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오를까?

건설노동자들의 퇴직공제부금은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회가 안건으로 논의해 결정하고, 결정 금액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승인으로 최종 고시된다. 그러나 최저임금처럼 매년 퇴직공제부금을 정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렇다보니 퇴직공제부금 수준에 대한 논의 주기도 따로 없다.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건설산업연맹 제공 자료 정리
건설산업연맹 제공 자료 정리

다만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이 정부의 정책에 따라 변화함은 알 수 있다. 2007년 인상은 늦게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참여정부 대선공약사항으로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4,000원 인상 계획이 있었다. 2018년 인상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중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와 관련해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5,000원 인상 계획이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인상 논의는 당분간 없을까? 아니다. 현재 인상을 논의 중이다. 지난 3월 9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에 퇴직공제금 보장성 강화를 위한 인상 계획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3월 9일 발표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월부터 노사정 정책협의회를 통해 적절한 인상액수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3월 25일 4차 정책협의회를 마지막으로 건설 노사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건설노동자들은 현행법상 공제부금 산출에 적용되는 요율(직접노무비의 2.3%)을 최대로 적용한 6,900원을 제시했다. 건설 사용자단체는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1차, 2차 정책협의회와는 다른 모습으로 업계가 반발하고 있고 4차로 회의가 종결돼서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이사회로 안건이 올라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사회는 4월 15일 총선 전에 열릴 것으로 점쳐진다.

건설 사용자단체 반발의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 부담이다. 퇴직공제부금 인상으로 인해 건설 발주자 부담이 증가하고 소요 정부 예산 증가로 건설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걱정이다. 다만 <참여와혁신>이 입수한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분석 자료에 따르면 “퇴직공제부금 인상에 따른 비용부담액은 전체 건설공사의 연간 발주예산 대비 미미한 수준”이다. 2019년 공사계약액인 178조 2천억 원 기준으로 공제부금 추가(5,000원에서 6,900원으로 인상) 시 원가반영액은 2천 695억 원으로 계약액의 0.1492% 상승으로 돌아온다고 분석한다. 또한 건설 공사 준공 시 원가반영된 금액 납부율이 2019년 기준 평균 87.3%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추가부담액은 2천 321억 원으로 0.1303% 수준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건설노동자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건설노동자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인상
건설 산업 미래와도 맞닿아 있다

건설 산업은 3040세대가 주축인 타 산업에 비해 주 연령대가 50세 이상이다. 50세 이상이 건설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산업의 고령화는 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고령 노동자들이 퇴직하면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향후 숙련 노동자 부족 현상으로 이어져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일하고 싶은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요인이라고 한다.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역시 건설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성격을 띠는 만큼 주요한 노동 환경적 요소이다. 퇴직공제부금이 건설노동자에게 실질적 효과를 나타내야 건설 산업의 현재는 물론 미래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건설업계의 부담 정도가 합리적이라면 퇴직공제부금 실질화를 고려해볼 만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김산 씨도 건설산업의 미래를 위해 퇴직공제부금이 인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퇴직공제부금 좋은 제도죠. 물론 모든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비슷하게 바라보듯 건설노동자도 나이 먹고 퇴직해서 이후의 삶에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수준이 돼야죠.”

“그리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퇴직공제부금 같은 건설노동자 사회보장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면 청년들이 많이 올 거라 생각해요. 건설 산업은 일당 받고 끝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기술도 필요하고 어떻게 짓고 만들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해야 하고, 정시 퇴근해서 자기 삶도 있고. 일만 자기와 맞으면 충분히 권유하고 싶어요. 그냥 권유만 해서 올 수 있는 건 아니고 또 말하는 거지만 퇴직공제부금 같은 사회보장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면 더 오겠죠.”

*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관련해서는 일액 수준이 얼마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다. 하지만 이 외의 문제는 건설노동자임에도 퇴직공제부금 당연 가입 대상이 아닌 경우에서 발생한다. 가입 대상 기준은 공사 규모와 노동자성 유무이다. 전체 발주 공사는 몇백억 원짜리인데 쪼개기 발주를 해서 해당이 안 된다든지, 특수고용노동자라든지 등의 이유로 퇴직공제부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이후 기사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현장 노동자의 입을 통해 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