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불러도 언제든, 국회의 ‘홍반장’ 시설관리직
누가 불러도 언제든, 국회의 ‘홍반장’ 시설관리직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4.03 15:40
  • 수정 2020.04.03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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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동, 12만 평 관리하는 인원은 187명
21년 정규직 전환 앞뒀지만 … 처우개선 없이 인력난 해소 불가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단편적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일하는 노동자. 노동을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볼 수 있을까요? 노동하는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하는 ‘우리’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듣고 싶은 혹은 들려주고 싶은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다가 양화대교나 원효대교를 지나면 옥색 돔 지붕의 건물이 눈에 띈다. 옥색 돔이 열리면 ‘로봇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소문을 지닌 건물은 바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로 1, 국회의사당이다. 국회는 ‘본청’이라고도 불리는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국회도서관, 국회의정관, 헌정기념관, 사랑재, 방문자센터 등을 포함한 14개 동의 건물과 약 12만 평의 대지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광활한 국회에는 수많은 사람이 근무하는데, 국회의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은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다. 현재 국회의 시설을 관리하는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총 187명이다.

국회 시설관리를 책임지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이번 동행 취재는 국회 본청(국회의사당은 현장노동자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 국회 본청으로 통일한다)의 기계팀 및 외부 건축팀과 함께했으며 반짝 추위가 찾아왔던 3월 5일에 진행됐다.

국회 돔을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사다리. 국회 돔 바로 아래에는 국회 본회의장이 자리하고 있다.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이렇게 사다리 같은 계단을 지나 국회 본회의장 전구를 간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국회 돔을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사다리. 국회 돔 바로 아래에는 국회 본회의장이 자리하고 있다.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이렇게 사다리 같은 계단을 지나 국회 본회의장 전구를 간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정기점검과 공조기 확인으로
오전 업무 시작

두 명의 본청 기계팀 노동자가 N형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FCS 배관을 점검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두 명의 본청 기계팀 노동자가 N형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FCS 배관을 점검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오전 9시 30분, 국회 정문에 도착했다. 동행하기로 한 기계팀이 있는 국회 본청까지는 약간 더 걸어야 한다. 동행 취재가 이뤄진 3월 5일은 국회 본회의가 있던 날이다. 국회는 조용했지만 분주했고,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렵게 들어간 국회 본청에서 우리가 향한 곳은 1층 기계실이었다. 큰 배관 두 개가 천장을 가로지르고 여러 기계 소음이 귀를 자극하는 그곳에서는 이미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전 9시 50분이었다.

두 사람이 N형 사다리에 올라가서 하고 있던 작업은 FCS 배관의 정기점검이었다. FCS는 Fan Coil Supply의 약자로 팬 코일 냉온수 공급관을 말하는데 사무실 창가에 설치된 라디에이터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배관이다. FCS 배관에 결로 현상이 생기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매일 오전 점검하는데, 마침 이날 약간의 결로 현상이 관찰돼 배관을 절개해 보수작업을 했다.

국회 본청 기계팀에서 20년 동안 일했다는 김준기(가명) 씨가 사다리 아래에서 젊은 노동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김준기 씨는 “N형 사다리도 최근에 구매한 것”이라며 “원래 더 열악했는데 노조가 생기고 그나마 바뀐 것이다”고 설명했다. FCS 배관의 정기점검 및 보수작업을 마친 기계팀 인원은 공조기에 들어가는 필터를 챙겼다.

공조란 공기조화의 준말인데, 거주자의 편안함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 중인 공간의 인테리어로부터 열기와 습기를 제거하는 과정으로 실내 공기의 온도와 습도, 기류 등을 알맞게 조절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난방과 환기, 공기정화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 공기조화다.

국회 본청 옥탑(현장에서는 7층에서 한 층 더 올라가 옥상으로 나가기 전의 공간을 옥탑이라고 부른다)에는 28대의 공조기가 있다. 공조기 필터는 매달 교체하는데, 동행 취재를 하던 주는 공조기 필터 교체가 있는 주였다. 밀차에 공조기 필터를 싣고 1층 기계실을 출발한 기계팀은 7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이장선 한국노총 공공연맹 한울타리공공노조 국회시설관리지부 위원장은 “예전에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제한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니까 그런 시선이 있었다”며 “지금도 일부 조합원은 그게 몸에 익어 중앙 엘리베이터보다는 측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교체한 필터는 큰 필터 8개, 작은 필터 4개였다. 필터의 개수는 공조기 용량에 따라 다른데, 보통 공조기에 20~30개의 크고 작은 필터가 들어간다. 이날 필터를 교체한 공조기는 적은 용량의 공조기인 셈이다. 교체한 필터는 버리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세척해 다시 사용한다. 예산을 이유로 일회용 필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회용 필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공조기 필터 세척은 기계팀이 직접 한다.

이날 공조기 필터를 교체한 2년차 정은찬(가명) 씨는 “코로나19로 불안한 점이 많은데 가장 불안할 때는 공조기 필터 교체할 때다”라고 말했다. 공조기 필터를 교체할 때 작업자 얼굴에 필터에 걸린 공기가 닿는데, 어떤 바이러스가 묻었을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정은찬 씨는 “마스크가 한 달에 20개 정도 나오는데 본청 기계팀 전원이 같이 사용하니까 한 달에 하나 정도 받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설만큼 열악한 건 사람
“여기서 일하면 인류애 잃어요”

휴게실 옆에 있는 노동자들의 캐비닛.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오래된 철제 캐비닛을 사용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휴게실 옆에 있는 노동자들의 캐비닛.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오래된 철제 캐비닛을 사용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열악한 시설을 견딘다. 기계실 한편에 위치한 휴게실에서 쉰다. 기계 소음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지만, 그마저도 노조가 생기고 나서야 생긴 공간이다.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 나올 법한 캐비닛과 텔레비전, 어디서 주워왔는지도 모르는 소파가 그들의 쉼터다. 열악한 시설보다 힘든 건 역시나 사람이다.

국회는 많은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가 연일 이어지다 보니 사건·사고가 속출한다. 황당한 요구도 많다. 황당한 요구나 사건·사고를 접할 때면 그야말로 ‘인류애를 상실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장선 위원장은 “한 번은 누군가에게서 ‘고양이가 너무 무서운데 고양이 좀 잡아 달라’는 전화가 온 적이 있다”며 고양이를 잡아줘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이장선 위원장은 “나도 고양이 무서워한다. 근데 어떡하나. 해줘야지”라고 덧붙였다. 고양이 말고 죽은 쥐를 잡은 적도 있다. 이장선 위원장은 “언젠가 악취가 너무 심하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바닥을 다 뜯은 적이 있다”며 “바닥을 다 뜯으니까 죽은 쥐가 나와서 그걸 치운 적도 있다”는 경험도 털어놨다.

그러나 진짜 ‘인류애를 상실하는 순간’은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상황을 고지했음에도 해당 상황에 대해 민원을 넣는 순간이다. 이장선 위원장은 “2017년에 천장형 냉·난방기를 설치한 곳이 있다”며 “새것이니까 당연히 새것 냄새가 날 수 있는데 새것 냄새를 없애 달라고 자꾸 전화가 와서 한 일주일 정도를 소독약 뿌리고 청소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주일을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쪽에서 ‘저희가 그냥 참아볼게요’라고 해서 멍해진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냉·난방기와 관련한 민원은 꽤 많다. 벽면의 냉·난방기에 도색 요청이 들어와 페인트 냄새가 날 수 있음을 이장선 위원장이 미리 고지한 적이 있다. 요청한 쪽에서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해 금요일에 냉·난방기 도색작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월요일, 전화가 왔다. 페인트 냄새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였다. 이장선 위원장은 “미리 고지한 사항이었는데 전화가 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며 당시 기분을 설명했다.

본청 기계팀에서 일하는 문준익(가명) 씨는 “냉·난방기 관련해서는 기자실에서 민원이 가장 많다”며 “한 공간에서 서로 온도에 대해 협의를 보면 되는데, 한 명이 전화해서 추우니 온도를 올려달라고 해서 온도를 올려주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전화해서 더우니까 온도를 내려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물론 국회의 모든 곳이 빠른 민원처리를 요구하지만, 기자실은 유독 더 그렇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기자실 냉·난방기 온도를 조절하기도 해 힘들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5분 대기조다. 그러나 업무와 비교해 인원이 적고 국회라는 공간의 특성상 빠른 민원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일한다. 이렇게 바쁜 가운데 사소한 요구가 물밀 듯이 밀려드는 날은 버겁기도 하다.

이장선 위원장은 “진짜 사소한 요구 중에는 시계 건전지 갈아달라는 것도 있다”며 “그마저도 건전지를 우리가 사비로 사다가 갈아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벽면에 거미줄을 제거해 달라는 요구나 토론회 등 행사에서 사용할 현수막을 벽에 걸어달라는 요구도 있다.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민원이 가장 많은 시기가 도래한다”고 말한다. 바로 4·15 총선을 앞뒀기 때문이다. 보통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의 업무가 가장 많은 시기는 총선이 끝난 후 한 달 동안이다. 총선이 끝나면 의원회관의 재배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방을 재배정하는 것은 물론, 내부 책상이나 방 배치도 새로 한다. 전기 배선을 새로 깔고 방마다 액자 위치까지 조정해야 하는 등 일이 많다. 총선이 끝나면 모든 건물의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1~2명의 근무자를 제외하고는 의원회관으로 향한다. 현재 의원회관팀의 경우, 의원실마다 설치된 개인 화장실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의원회관의 전수조사를 하는 등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4·15 총선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하는 일만큼 대우 못 받는 현실
정규직 전환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오는 2021년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국회에서 가장 늦게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장선 위원장은 “시설관리직이 가장 늦게 전환되는 건 마지막으로 용역을 계약할 때 5년으로 계약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용역계약이 마무리돼야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므로 용역계약이 마무리되는 2021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장선 위원장은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된다고 해도 우리의 처지가 좋아질 여지는 없다”고 단언한다.

현재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이장선 위원장은 “전국 시설관리직 노동자 중 국회의 노동자가 가장 임금이 낮을 것”이라며 “업무의 책임, 기술력, 사무 능력까지 갖춰야 할 능력과 책임은 크지만, 예산을 책정할 때 최저임금으로 책정한다. 17년을 일한 나 역시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는 일만큼 급여를 받지 못하니 인원을 채용하는 것도 난항을 겪는다.

가장 큰 원인은 누구도 시설관리직 노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12년 차 건축팀 노동자 오동환 한울타리공공노조 국회시설관리지부 수석부위원장은 “건축팀 일이 아니어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며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니까 다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환 수석부위원장은 “국빈이 국회를 방문하면 레드카펫을 까는데, 이건 본래 의전팀에서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건축팀에 전화가 온다”며 “레드카펫뿐만 아니라 액자 거는 일, 배수로 청소, 벽에 낙서 지우는 일 등 건축과 관련 없는 일이 반 이상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그저 왔다 갔다 하면서 형광등이나 갈아주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그 때문에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다. 국회 본청 옥상에는 냉·난방기 사용을 위해 실외기가 설치돼 있다. 실외기 역시 매일 확인을 해야 하는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이유로 열쇠를 시설관리직 노동자에게 주지 않았다. 열쇠를 받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에게 보고 후 장부에 서명해야 한다. 그러나 할 일이 잔뜩 쌓인 시설관리직 노동자가 지난한 절차를 지키기는 어렵다. 결국 옥탑 사무실 창문을 타 넘고 다니면서 실외기 점검을 매일 한다.

이장선 위원장은 “화재나 누수 같은 큰 사고에서 컨트롤타워는 우리가 아니”라며 “야간에 근무하는 건 우리뿐인데 야간에 불이 나더라도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해야 불을 끌 수 있다”고 토로했다.

국회의 상징, 옥색 돔 내부는 40년 전 지어질 때 모습 그대로다. H빔 철골과 석면으로 구성돼 있다.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국회 돔 내부 모습처럼 우리의 처우도 40년 전 그대로”라고 말한다.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노동력을 사는 곳. 그곳이 바로 국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국회도서관 기계팀에서 정화조를 점검하고 있다. 정화조는 2주에 한 번 점검한다. 이렇게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가장 어둡고 위험한 공간에서 일한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국회도서관 기계팀에서 정화조를 점검하고 있다. 정화조는 2주에 한 번 점검한다. 이렇게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는 가장 어둡고 위험한 공간에서 일한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오늘도 국회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직각의 사다리를 오르고 더러운 정화조를 점검하러 간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국회에서 일할 수 있도록, 국회를 찾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불이 꺼지지 않는 국회에서 국회의 안녕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