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동물의 숲’에 가보고 싶다
[박완순의 얼글] ‘동물의 숲’에 가보고 싶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03 16:36
  • 수정 2020.04.03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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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다. 이 시국에 “모여봐요”라고 유혹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닌텐도 게임이다. 코로나19로 자발적 격리에 나선 시민들은 동물의 숲에 모이고 있다. 실제로 게임 판매량이나 이용량이 늘었다.

더 이상 집 안에서 할 놀이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던 찰나에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새로운 놀이였고,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인기글로 올라올 정도이다. 그런데 이 게임이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로 또 다른 하나가 있다. 게임할 때도 반영되는 ‘한국인 특징’ 때문이다.

동물의 숲은 무인도 숲 속에서 동물과 이야기도 나누고, 이것저것 DIY로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접속한 유저들과도 대화도 나누고, 그러면서 힐링하라고 만든 게임이다. 집을 지을 때,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땡전 한 푼 없는 초보 유저들에게는 ‘너구리 아저씨’가 게임 머니도 빌려준다. 빚 독촉 없이 대출은 무기한 무이자 대출이다. 넓은 집 안 지을 거면 안 빌려도 된다. 그냥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한국인들은 달랐다. 빚을 내고 ‘대출금을 몇 시간만에 갚았어!’라고 좋아한다. SNS에는 “과일 따고 선물 주고 진짜 숲 속 라이프 즐기는 건데, 한국인들은 '동숲' 켜면 개처럼 일해서 집부터 삼”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국인은 하다 하다 게임 속에서도 너무나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숲을 밀고 집을 지어 도시로 만드는 유저들도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이 어땠으면 게임에서도 이러냐며 '웃픈' 현실에 자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을 통한 한국인의 치유는 숲 속에서 한가하게 과일 따고, 밭에서 손수 농사를 짓고, 따사한 오후 햇살을 길가에서 맞으며 이웃과 노닥거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마음의 치유는 부드럽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겨우 내내 얼어붙었던 땅을 녹이는 방식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현실의 무거운 돌덩어리를 산산이 조각내고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아무리 일해도 내 집은 없고, 대출금은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는 답답함을 동물의 숲에서는 ‘열심히 일하니 다 되네?’라는 재미난 상황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원 게임의 세계관이나, 게임을 기획했던 사람들의 의도는 그것이 아닐지라도 게임을 즐기고 있는 한국인들은 알아서 잘 힐링 중인 것이다.

한국인들은 동물의 숲을 무기한 무이자 대출금 세계 최단 시간 갚기 대회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동물의 숲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조작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동물의 숲에 저녁에 한 잔 할 수 있는 횟집도 만들고,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호국요람 논산 육군훈련소도 만들고, ‘돈 모으면 뭐하고 싶어요?’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들 대답한다는 커피숍도 만든다. 숲 속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차리고 재밌게 논다. 가격이 얼마냐는 손님의 물음에 ‘싯가’라고 능청스럽게 횟집 주인은 말한다.

동물의 숲은 일을 너무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종특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일을 너무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답답한 현실을 엉뚱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리고 얼마나 그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해 박제된 꿈들이 많은지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꿈이 소박해 소박함이 얼마나 특별한 것이 됐는지도 알려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내 친구가 동물의 숲에서 횟집을 한다면 오늘 저녁에 들러 우럭 회 한 접시 시키고 매운탕 정도는 서비스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조금 어렵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