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단단해질 선원노련을 꿈꾸며
더 단단해질 선원노련을 꿈꾸며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0.04.04 00:00
  • 수정 2020.04.03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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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탄생한 재선 위원장

[인터뷰]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제30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이하 선원노련) 위원장 선거는 치열했다. 기호 1번 김두영 후보(SK해운연합노조 위원장)와 기호 2번 정태길 후보(29대 선원노련 위원장)가 출마했다. 전체 대의원 중 132명이 참여한 첫 번째 투표 결과는 65대 65(무효 2표), 동점이었다. 이어서 진행된 2차 투표에서는 63대 67(무효 2표), 단 4표 차이로 정태길 후보가 제30대 선원노련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선원노련 위원장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30년 만이다. 선원노련의 또 다른 3년을 이어갈 정태길 위원장을 부산에서 만났다.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치열한 접전 끝에 제29대 위원장에 이어 제30대 위원장을 역임하게 됐다. 소감이 어떠한가?

2차 투표를 거쳐 재선에 성공하게 됐다. 선거가 그만큼 치열했던 이유는 상대 후보도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원노련 역사에서 최근 30년 동안 재선에 성공한 위원장이 한 명도 없었다. 재선하지 못 한다는 전통을 깨기가 참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다. 지난 3년 동안 분열돼 있었던 3개 연맹인 해상노련, 상선연맹, 수산연맹을 하나로 뭉쳐 통합을 선언한 것이 재선의 결과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 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건 미완성된 정책들을 마무리 짓는 데 앞장서서 일하라는 대의원들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기고 있다.

선원노련 제29대 위원장으로 활동을 했는데, 스스로 평가한다면?

지난 3년, 위원장 재임 중 가장 큰 성과는 통합이다. 흩어져 있던 3개의 연맹을 하나로 만들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회의도 수십 차례 진행하고, ITF(국제운수노련) 본부에서 아시아권의 임시선원위원회를 만들어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이 한국의 노동조합을 모니터링을 하는 회의를 1년간 진행했다. 통합 과정에서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 통합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다시 하라고 한다면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다.(웃음) 하지만 제29대 집행부 선거에서 공약 1호가 통합이었고,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면 선원들의 정책이 정부나 사용자에게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책이 하나로 만들어져야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통합을 이룬 2018년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통합 위원장 선거를 다시 치렀다. 그 결과 통합노조 초대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아직 아쉬움이 있다면 연맹은 하나로 뭉쳤는데 상선연맹 소속 일부 회원과 해운협의회가 아직 통합되지 않았다. 조금의 갈등은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까지 하나가 된다면 완전한 통합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통합을 이루어나가는 데 힘쓸 생각이다.

장기간 배를 타야 하는 선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평균적으로 선원들은 30~40년 정도 배를 탄다. 많이 타면 50~60년까지도 배를 타는데, 그러다보니 주위에 친구가 없다. 부모의 장례식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식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식, 졸업식에도 갈 수 없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고 배 안에만 있다 보니 대화하거나 소통할 기회도 없다. 오랜 기간 배만 타다가 육지로 돌아온 선원들은 피폐한 생활을 하게 된다.

사실 선원이라 해도 배를 타면 배 멀미를 한다. 거친 노동환경 특성상 거친 말을 하며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배에는 3~4개 국적의 선원들이 함께 타는데 대화하기가 어려워 혼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육지에 돌아와서도 가족과 대화를 어려워하기도 한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육지에 오는 선원들이 많다. 하지만 선원들을 위한 복지센터는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신음하는 곳이 많다. 선원노련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작년 12월부터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전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퍼지게 될지는 생각도 못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나서 선원들에게 바로 피해가 발생했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물동량 99.7%는 배를 통해서 운송된다. 중국에 입항하면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다는 위험이 있으니 선원들의 상륙을 허가해주지 않는다. 출입이 불가능해 배 안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선원에 대한 혐오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선원법 상에는 전쟁 위험지역 외에는 항해권을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위험에 대한 걱정이 크다 보니 선원들이 겪는 불편함이 많다. 최근 정부에서는 마스크 사재기를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지정한 날에만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선원들은 장기간을 바다 위에서 생활하는데 육지에 내려 마스크를 살 수가 없다. 코로나19에 대한 예방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정태길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지난해 선원노련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가 국방부 앞에서 진행된 승선근무예비역제도 폐지 반대 집회였다. 승선근무예비역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

승선근무예비역제도는 장차 대한민국 해운수산업의 미래를 책임지는 예비 해기사들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병역이행제도다. 하지만 정부는 병역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선근무예비역제도를 축소·폐지하려 하고 있다. 승선예비역 대상자는 대부분 해양대 출신 학생들이다. 해기사를 축소하게 되면 장시간 공부해 온 학생들이 배를 탈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승선근무예비역제도는 국가 기간산업의 역군이자 국가 안보 및 유사시를 대비한 필수적인 해기인력을 유지하는 제도로, 1958년 해군예비원 제도에서 출발한 역사가 깊은 제도다. 6.25전쟁 당시 전쟁에 투입된 선원들이 해군 작전에 함께 했다. 목숨 걸고 항해하며 물자를 수송했던 선원들은 전쟁이 끝나고도 관련법과 제도가 없어 별도로 군복무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이 제도가 만들어지게 됐다. 또다시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승선근무예비역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평상시엔 선원으로 해운수산업에 종사하지만, 전시엔 군인 신분으로 전환돼 국가수호의 임무를 바다에서 수행하게 된다. 만약 전시상황에서 외국 해기사들이 자국으로 귀국해버린다면 배는 누가 수송해야 하나. 이 제도는 단순히 병역 특례를 받는 게 아니라 아주 필수적인 병역 요원으로 최소 1,000명은 유지돼야 한다.

작년에 국방부 앞에서 집회를 하고 국방부 인사들을 만나고 교육부총리와 국무총리, 대통령께도 탄원서를 냈다. 그 결과 2025년까지 현행대로 유지하고, 2026년부터는 800명을 유지하는 걸로 정부의 확답을 받았다. 우선은 2025년까지 유지해 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선원정책의 문제점은 어떤 것들이 있나?

비정규직 선원들을 정규직화하는 부분에서 애로점이 많다. 선원들의 65%가 비정규직이다. 기업의 입장이 각자 존재하다보니 정규직 전환에 대한 고심이 많다. 비정규직들은 계약기간이 있다 보니 4개월이나 6개월씩 승선하다 하선해야 한다. 또 다른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다. 노사 간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지만 점진적으로나마 임금이 상승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산업으로 보면 휴어기 및 금어기로 인해 어업활동에 종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개월까지 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산업에는 비정규직이 대다수이고 어업을 쉬는 동안에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기본적인 생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복지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해운산업위원회가 업종별위원회 중 처음으로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와 같은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 2018년 11월 정식으로 출범한 해운산업위원회가 약 1년 3개월 만의 대장정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선원노련에서 5억 원, 한국선주협회에서 5억 원을 출연하고, 정부가 30억 원을 지원해 1년에 40억 원의 일자리기금을 마련하게 됐다. 10년 동안 총 400억 원의 기금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운 환경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2017년에는 세계 7대 선사 중 하나인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많은 선원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또한,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해 임금 하락은 물론 복지후퇴, 고용불안까지 많은 고통을 견뎌야 했다.

해운산업위원회에서 만든 기금은 노사가 먼저 금액을 창출해서 해기사에게 지급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노조 입장에서도 5억 원이라는 큰돈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 25차례 회의를 진행한 결과 해운산업이 위험에 처해 있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한국인 해기사를 계속해서 고용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경영진이 겪고 있던 고급인력을 유지하기 위한 압박을 노사정이 협조해서 보전해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제도가 자리를 잡는다면 해운산업에 유익한 제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도가 다른 산업에도 적용되면 고용불안을 없애고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 획기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30대 위원장에 임하는 앞으로의 각오는 무엇인가?

대통합을 넘어 가맹조합이 주인이 되는 대혁신 노동존중 시대를 열어보고 싶다. 과거 80년대에는 산별체제로 운영되고 있던 노조가 강제로 해산되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됐다. 다시 산별체제로 전환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지만,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30년 동안 기업별 노조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기업들도 산별 전환에 반대할 것이고, 단위노조 위원장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대표자 회의는 물론, 방안 수립을 위한 연구 용역도 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가맹조합 대표자들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연맹이 하는 일과 가야할 길에 소통하고 단결해 산별체제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현장 선원에 대한 각종 법·제도를 개선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노동조합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끝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험한 파도와 싸우고 있을 현장 조합원의 안전항해와 대어만선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