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권한과 책임 확대해야 경영참여 실질화
노동의 권한과 책임 확대해야 경영참여 실질화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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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참여를 어렵게 하는 것들
의사결정 지연은 없어 … 숙의는 집행에서 걸림돌 제거

커버스토리 ③ 노동의 참여를 위해 넘어야 할 산들

노동, 참여를 돌아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의 사회적 위치는 어디쯤일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하거나 일터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시민권을 보장받는 존재는 아닐까?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가장 잘 알지만 일터에서 이뤄지는 온갖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고, 신속한 의사결정, 경영의 효율성 같은 논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 노동이 배제된 의사결정의 결과는 그리 신속하지도 않고 효율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다수가 배제된 의사결정은 사회적 갈등을 잉태하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폭발해 해결되지 못한 채 막대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후적인 대응에만 머물렀던 노동자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고 나아가 일터를 개선하는 데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노동의 참여’의 의미를 짚어본다.

노동의 참여는 어렵다. 어렵다는 것은 두 가지로 분리해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경영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다. 다른 하나는 ‘참여는 했지만 형식적 참여에 그쳐 실질적으로 노동이 경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기 때문에 나오는 어려움’이다. 서울시 산하기관에서는 전자의 어려움을 ‘노동이사제’라는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서울시의 다른 공기업이나 다른 지방정부에서의 노동이사제 시행으로 노동의 참여 자체는 어려움을 넘어서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이사제를 통한 노동의 참여가 형식적인 참여를 넘어서고 있냐고 물었을 때는 ‘아직’이라고 답할 수 있다. 물론 노동이사제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확산 중이고 선도적으로 시행한 서울시에서도 만 3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참여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평가는 섣부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의 더 나은 참여를 위해서 현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를 뽑아볼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서울시는 노동의 참여가 우리 사회에 좀 더 뿌리내릴 수 있게 노동자이사제 2.0을 발표하기도 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의사결정만 늦추는 것 아닌가?

① 알지도 못하면서?!
다시 말하면 경영의 내용을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자가 모를 것이라는 전제다. 경영의 언어와 노동의 언어가 다르니 회사의 경영 전략과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는 미신에 가까운 믿음이라는 게 전반적인 분석이다. 개괄적으로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은 지금까지 노동이사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 공기업에서 소위 ‘경영을 잘 알지도 못하는 노동이사들’ 때문에 공기업 경영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평은 없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렇게 따지면 사외이사도 똑같고, 공기업 낙하산 인사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외부에서 온 이사들보다 그 기관에서 일한 사람이 회사 사정을 전반적으로 더 잘 알고 전문적이 않겠냐”고 반문했다. “재무제표를 볼 때 필요한 회계 영역의 지식은 마이크로한 부분이고, 이것도 사실 경영진이 스스로 다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즉 경영 용어의 낯섦은 있을 수 있지만 회사의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감각이 빛을 발할 수 있다.

②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의사결정의 지연
회사 경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의사결정이 비효율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동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소위 말하는 딴죽을 계속 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노동이사제 도입 과정에서 의사결정 지연은 도입 반대 측의 주요 근거였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이 서울시 노동이사제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의사결정 지연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었다. 노동이사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 공기업의 노동이사, 사외의사, 노동조합, 서울시 및 관계 단체, 서울시 공기업 기관장 및 상임이사와 이사회 담당 부서장 등을 면접 조사한 결과다. 노동의 경영참여의 한 방식인 노동이사제를 실제로 해봤지만 노사정 모두 의사결정의 지연은 못 느꼈다는 것이다.

오히려 변춘연 서울농수산식품공사 노동이사는 “경영의 효율성은 질적으로 높아진다고 본다. 지연이라는 건 시간적 의미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좀 더 심사숙고해 더 좋은 결정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영의 전체적 측면에서 봤을 때 시간적 지연의 의미도 무색해진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경영의 실제 집행 전 단계에서 논의를 하고 좀 더 나은 경영 방침을 만들기 때문이다. 집행 전 단계에서 좀 더 나은 논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전과는 달리 기존 경영진이 생각하지 못했던 실제 노동 현장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논의 관점의 폭을 넓히지 못해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다시 이사회 안건으로 부의되고 다시 수정한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이 더 비효율적일 수 있다. 비효율적인 측면을 제거하고 결정 이후에는 집행에 속도를 높이는 것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경영의 전체적 측면에서 봤을 때 집행 이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게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또 다른 어려움,
형식적 경영참여

노동이사제라는 경영참여의 방식이 있어도 능동적인 노동이사의 활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노동의 경영참여는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① 정보 접근권 부족
노동이사의 권한은 경영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다. 박희석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정보와 자료를 얻는 게 경영참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며 “예를 들어 이사회 권고사항이기도 했던 성평등 노동을 추진하기 위해 직급별, 직종별로 여성노동자의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입사일과 승진일 데이터를 요구했는데 어디다 쓰려고 하냐는 경계심을 먼저 보내더라”고 예를 들었다.

비슷한 일이 종종 있었다. 계약 입찰 자료와 당시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들을 분석해 투명한 계약이 이뤄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련 자료를 얻는 과정도 험난했다. 박희석 노동이사는 “결국 나중에 외부 수사기관에서 관련 사건들이 터지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전에 필요한 자료들을 얻었더라면 인권 경영에 좀 더 부합한 경영 전략을 세우고 내부적 자정활동을 통해 방만한 경영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했다. 이처럼 노동이 경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경영정보 접근 문턱이 이전보다는 낮아야 한다.

② 노동조합과 관계, 사용자와 관계
변춘연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의 힘을 배경으로 활동할 때 경영참여가 더 효과적이고 조직 내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노동이사의 역할이 회사의 경영 행위에 현장의 시각을 반영한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이사는 사용자와 불가근불가원 관계”라며 “사용자와 너무 가까우면 어용 시비를 불러오고 경영에 비판적 시각을 갖기 어렵고, 너무 멀면 노동자들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경영에 반영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고 전했다.

이러한 설명대로라면 노동이사의 위치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 ‘끼인’ 위치다.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의 역할을 비판적 협력자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치적 행위로서 사용자와의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 필요하기도 한데, 노동조합에서는 이를 두고 적나라하게 “한 때 노동운동했던 선배라는 사람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이사의 ‘끼인’ 위치는 유용하다.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이 법과 제도의 틀 때문에 혹은 노사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관여하기 곤란한 경영 활동에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이사 스스로의 처신도 중요하지만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노동이사를 바라볼 때 단순히 어느 편에 속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이사제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경영참여 위해 노동의 책임성도

이 외에도 노동이사의 형식적 경영참여를 만드는 조건들은 많다. ‘노동이사가 참여할 수 있는 회의가 이사회뿐인 거냐,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다른 회의에 참여하지는 못하는 것이냐’라는 제기도 있다. 감사청구권은 주는 게 맞느냐, 안건 부의권은 어떻게 확대해야 하느냐 등이다. 노동이사의 적극적 경영참여를 위한 권한 확보 측면이다.

앞서 말한 것들이 노동이사제가 가진 특수성으로 보이지만 일반적으로 노동이 경영에 참여할 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노동이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노동이 현재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경영 전반으로 확대한다는 뜻이다.

노동조합이 추천한 이사이든, 노동이사이든, 노동조합이 직접 참여하든 지금까지 경영진의 것으로 분류됐던 경영 행위 권한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이사제도의 특수한 문제에서 확장해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노동이사의 ‘끼인’ 위치도 노동조합에서 직접 경영참여를 하더라도 경영 회의에 참여하는 대리인이 언제나 겪을 수 있는 문제다.

한편으로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노동의 경영참여를 위한 권한의 확대만큼 노동의 책임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노동이사제가 아직은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여서 당장 제기되는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노동의 경영참여 시 경영 전반을 함께 결정했다는 의미에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노동의 경영참여를 실질화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결정은 했지만 책임은 없다면 누구도 권한을 공유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