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보다 시급한 ‘기후위기 산업전환’
4차 산업혁명보다 시급한 ‘기후위기 산업전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4.04 00:00
  • 수정 2020.04.03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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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베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 … 미국-유럽 ‘녹색 전환’ 가속
한국 주요 정당들 ‘그린뉴딜’ 공약 … “기후행동 더 필요해”

[리포트] 그린뉴딜이 어쨌다구?

‘공부해봐야 뭐해요. 2050년이면 지구가 망할 건데!’

밀레니얼 세대들이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했다면 새싹같이 푸른 청소년들은 ‘지구의 멸망’에 좌절하고 있다. 열일곱 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2018년 8월 등교거부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렸다. 툰베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전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한국의 청소년들도 2019년 3차례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진행했다. 2020년 3월 13일에는 대통령과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후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전 세계 청소년들의 주장을 그저 어리고, 어리석은 말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상기온 현상, 산불, 태풍, 허리케인 등 기후 재난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빈번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린뉴딜’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한국에서도 녹색당, 정의당, 더불어민주당 등 3개 정당이 총선 공약으로 그린뉴딜을 채택했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그린뉴딜은 우리에게 낯설다. 어쩐지 겉으로만 환경정책이었던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린뉴딜이 무엇인지, 또한 ‘한국형 그린뉴딜’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톺아보자.

 

2019년 9월 27일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 현장 ⓒ 청소년기후행동

그린뉴딜이 어쨌다구?

그린뉴딜은 생태주의자들의 기획이다. 생태주의자들은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영위하는 삶의 형태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지구가 1년에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한도 안에서 인간의 소비와 생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생태주의자들은 이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지구해방전선(The Earth Liberation Front)과 같은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은 벌목 장비 망가뜨리기, 산업현장 급습 등 환경보호를 위해 불법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르네 네스(Arne Næss)를 필두로 한 심층 생태주의자(Deep Ecology)들은 인간 내면의 생태적 본성을 회복하는 활동을 해왔다.

생태주의자의 노력은 유럽 녹색당의 원내 진출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태주의자들은 전통적인 노선과는 결을 달리하는 노선을 기획했다. 그 결과가 바로 그린뉴딜이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산업의 영역’을 직접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린뉴딜의 목표는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국가총동원’ 수준으로 정책을 집행해 ‘단기간’에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국가총동원이라는 지점에서 미국의 생태주의자들은 세계대공황시기 시행된 뉴딜(New Deal)정책을 따왔다. 뉴딜 정책을 시행한 적 없는 유럽에서는 그린 딜(Green Deal)로 구분해 부른다.

그린뉴딜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화석연료기반 에너지의 재생에너지 전환 ▲생산 공정상 온실가스 제로화 ▲주택,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성 증대 ▲자원 순환 경제 ▲지속가능한 식품 생산 및 소비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무배출 생산’, ‘지속가능한 소비’, ‘지속가능한 식품’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의 그린뉴딜, 생태주의자 × 노동계급

미국의 그린뉴딜과 유럽의 그린 딜은 각국의 산업적, 정치적 상황에 맞춰서 고안됐다. 산업적 측면에서 두 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유럽의 그린 딜은 촘촘한 계획이 특징인 반면 미국의 그린뉴딜은 정치적 지향이 뚜렷하다.

김재삼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전문위원은 “미국의 그린뉴딜은 미국의 진보주의자, 특히 생태주의자들이 기후변화라는 생태위기를 해결함에 있어서 누구와 동맹을 맺어서 싸우고 전환의 이익을 누구에게 돌릴 것이냐를 결정하는 종합적인 강령”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생태주의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동계급과 손을 잡았다.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된 세계화에 따라 미국 내 금융자본과 화석연료기반의 산업계는 큰 이익을 봤다. 반면, 생산시설의 제3세계 이전으로 미국 노동계급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19년 11월 14일 버니 샌더스와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공공주택 확충을 주장하기 위한 그린뉴딜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버니 샌더스 유투브 채널

미국의 그린뉴딜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세계화로 파생된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한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슬로건은 이 기획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크게 세 측면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전환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여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적극적 의미의 정의로운 전환으로 불린다.

미국의 그린뉴딜은 적극적 의미의 정의로운 전환을 특히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 민주당 내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그린뉴딜 공약에는 ▲노동조합 가입 일자리 확충 ▲적정 임금 일자리 확충 ▲최전선 취약계층에 대한 400억 달러 규모의 기후정의 회복 기금 조성 등이 명시돼 있다.

유럽의 그린 딜, 녹색당 × 기업가

정의로운 전환의 두 번째 측면은 기존 화석연료기반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재교육해 신산업 진입을 지원하는 부문이다. 마지막은 전환 과정에서 처지가 열악해질 수 있는 극빈층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가령 난방효율성이 떨어지는 빈곤층의 주택개량이나 에너지 보조금 지원 등이다. 소극적 의미의 정의로운 전환에 속한다.

유럽의 그린 딜은 미국의 그린뉴딜보다 소극적 의미의 정의로운 전환이 강조된다. 더불어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세부 법안까지 준비하는 상태다. 유럽 기업가들의 참여도 높아 현실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럽의 그린 딜이 강하게 추진될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녹색당과 무너진 유럽의 산업기반이다.

유럽 집행위원회에서 발행한 ‘유럽 그린 딜 안내서(European Green Deal Communication)’의 일부. ⓒ 유럽 집행위원회

김재삼 전문위원은 “유럽이 정책적으로 녹색전환이 잘 되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녹색당이라는 강력한 중간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아젠다를 수용하지 않으면 어느 당도 집권할 수 없다”면서, “또한, 유럽은 세계화를 통한 이득을 별로 보지 못했다. 30년간 1% 성장이 고작이었다. 그린 딜이 제시하는 신산업들은 모두 기업가에게 새로운 판로다”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그린 딜의 경제 정책은 ‘순환경제’ 조성을 통해 내수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원료의 재활용보다 재사용 중점 ▲플라스틱 순환 동맹 ▲순환적이지 않은 상품의 EU 역내 진입 제한(탄소국경세 부과) 등이다.

재활용보다 재사용에 중점을 둔다는 것은 화학적 재처리를 하지 않고, 간단한 물리적인 변형만으로 부품이나 제품을 다시 사용한다는 의미다. 가령, 자동차를 폐차할 때 전부를 폐차하지 않고 ‘살릴 수 있는 부품’은 신제품을 만들 때 다시 사용한다는 의미다. 이는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재삼 전문위원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사용하고 또 재사용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EU는 EU 외곽에서 만든 제품을 수입해왔다. 그런데 이제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내수기반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원료자원 수입을 줄이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그린뉴딜, 피할 수 없다

미국의 그린뉴딜 정책은 그린뉴딜의 정치적 기획과 대립하는 기득권 세력 및 석유화학산업계와의 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오카시오 코르테즈(Ocasio-Cortez)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주도해 발의한 그린뉴딜 결의안은 하원에서는 통과됐지만 상원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들은 앞 다퉈 그린뉴딜을 채택했다. 대선 결과에 따라서 미국의 그린뉴딜 정책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반면, 유럽의 그린 딜은 EU 27개 회원국들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한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2020년 3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은 대통령과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 청소년기후행동

이러한 국제정세는 한국에게 악재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의 녹색전환은 순환경제 및 내수기반 경제체제 성립을 강조한다. 한국과 같이 중간재 조달과 수출 주도적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에는 치명타다. 또한,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10%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탄소발자국’(개인이나 기업, 국가 등 단체가 상품의 생산과 소비 등 활동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CO2)의 총량을 의미한다)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세계 주요 소비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부과되는 탄소국경세는 국내 제품의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이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국제사회의 압박 때문이라도 우리는 그린뉴딜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EU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말하고, 미국 대선은 그린뉴딜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당선자가 트럼프냐, 민주당이냐에 따라 어디까지 그린뉴딜이 확산될지 불확실하다”면서, “한국의 거대 수출 대상국인 EU와 미국이 그린뉴딜을 논의하고 있다. 굉장히 큰 변수다. 한국은 어떤 필요와 목적으로 그린뉴딜을 설계할 것인지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그린뉴딜은 어렵다

이유진 팀장이 지적하듯 한국은 그린뉴딜을 어떤 방식으로든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중요 기반이 석탄화력발전, 석유화학, 철강 등 화석연료기반 산업과 그와 연관된 조선, 자동차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탈원전 논란’의 갈등을 겪은 바 있다.

김재삼 전문위원은 녹색전환 과정에 따른 ‘좌초산업’ 문제를 제기한다. 좌초산업은 전 세계적 에너지전환에 따라 폐기되는 산업을 말한다. 그런데 전 방위적인 온실가스 감축의 측면에서 보면 좌초산업의 범위는 한없이 커진다. 대표적으로 철강산업이 있다. 철강산업에서는 공장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상관없이 생산 공정 자체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만약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없애지 못하면 철강산업 또한 좌초산업이 될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연관 산업인 조선, 자동차 산업으로 영향이 확대되는 건 당연하다.

김재삼 전문위원은 ‘선제적 산업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인 그린뉴딜, 녹색 전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관련 산업을 먼저 발전시키자는 제안이다. 탈석탄-재생에너지 확충과 더불어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공정 개발, 생물기반 플라스틱 개발 등 신산업에 ‘바로 지금부터’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진 팀장도 “예를 들어 내연기관 판매 종식이 국제사회의 영향과 수출국의 정책 변화로 인해서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면서 “변화를 빨리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 정부와 노동자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지금부터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망에서 두산중공업이 현재 처한 상황은 의미심장하다. 두산중공업은 경영실적 악화로 지난 2월 1,000여 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김재삼 전문위원은 “보수언론에서 말하듯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는 탈원전 정책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에너지전환 때문”이라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지 않는다. 두산중공업 같은 운명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전환의 과정,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생기는 산업전환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 청소년기후행동

두 가지 파국
‘기후 행동’으로 막자

한국에서 그린뉴딜은 어렵지만 다뤄야 하는 과제다.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녹색전환이 진행되면 한국경제는 경제구조 때문에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미국과 유럽이 녹색전환을 진행하지 않으면 전 세계에 기후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진 팀장은 “그린뉴딜은 단기 정책이 아니다. 사회의 법과 제도, 경제체제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하다”면서 “이번 선거 이후 그린뉴딜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체제를 흔드는 외부효과에 대응해 지금까지 유지했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변환할 큰 그림을 짜야 한다. 그 큰 그림을 짜는 그림판의 이름이 그린뉴딜”이라고 밝혔다.

김재삼 전문위원은 한국에서 그린뉴딜의 실현을 위해 ‘기후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왜 기후위기인데 아무것도 안 하냐’고 말해봐야 소용없죠. 정부가 안 한다고 비난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아요. 정부와 정당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큰일 나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죠. 청소년들이 ‘왜 우리가 살 이 땅을 다 더럽히나. 공부할 필요가 없다. 2050년이면 지구 다 망할 건데!’라고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거죠. 그게 선행돼야 한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