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참여하면 뭐가 바뀌는데?
노동이 참여하면 뭐가 바뀌는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05 00:00
  • 수정 2020.04.06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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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견제·공조 → 경영 활성화
경영활동에 노동의 관점을 녹인다

커버스토리 ④ 노동의 참여, 노사 모두에게 기회다

노동, 참여를 돌아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의 사회적 위치는 어디쯤일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하거나 일터를 벗어나야만 비로소 시민권을 보장받는 존재는 아닐까?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가장 잘 알지만 일터에서 이뤄지는 온갖 의사결정에서는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고, 신속한 의사결정, 경영의 효율성 같은 논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 노동이 배제된 의사결정의 결과는 그리 신속하지도 않고 효율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다수가 배제된 의사결정은 사회적 갈등을 잉태하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폭발해 해결되지 못한 채 막대한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후적인 대응에만 머물렀던 노동자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고 나아가 일터를 개선하는 데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노동의 참여’의 의미를 짚어본다.

노동의 참여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당시 이유를 살펴보면 과도하게 많은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도입 사유였다. 흔히 현장 노동은 노동자의 것, 경영은 사용자의 것이라고 분리하면서 경영진의 경영 방침에 대해 노동자들은 사후적으로 접한다. 여기서 노사 갈등이 벌어질 여지가 나타난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바꿔 경영 행위 결정 단계에서 노동이 참여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어 갈등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기업의 민주적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경영진의 경영 활동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활동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효과 중 하나다. 그렇다면 실제 노동이사제로 노동의 참여를 실현한 공간들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느린 걸음이 가장 빠른 걸음
숙의하지 못해 일어났던 일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속하게 뭘 해야 한다기보다는 의사결정을 신중하게 해야 하고 그런 경우가 더 많다”며 “4대강 사업이라든지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경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대부분 넘어갔다. 그 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이미 알았을 텐데 그것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결과로 우리 사회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사례를 들었다.

공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노동의 역할을 지적한 것과 동시에 노동의 참여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기업의 경영이 비효율적이어서 방만 경영으로 이어지는 데 책임을 대부분 노동자의 문제로 돌리지만 실상은 공기업이 행하는 사업 손실에서 나오는 부분이 크다. 이것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는 노동의 참여로 경영 계획을 숙의하는 것이다.

소통 활성화, 투명성 제고
의사결정 효율성은 오히려 증대

한국노동연구원이 서울시 노동이사제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구성원과 소통이 활성화됐고 경영 투명성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의사결정의 효율성은 증대됐다는 현장의 반응도 나왔다. 이사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노동이사가 들려줌으로 이사회의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고민할 텐데 이것을 들을 수 있는 안정적인 창구가 노동이사인 셈이다. 일반적인 회사와 노동자와의 관계에서는 회사가 안건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애로사항을 청취한다는 행위를 현장 노동자들이 감시와 같은 부정적 요소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노동이사 창구는 현장의 실질적 목소리를 경영진이 청취하기에는 상당히 효과적인 창구인 것이다.

박희석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현장과 관련한 안전과 기술 관련 안건은 실제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경영진이라고 해도 문외한”이라며 “현장 노하우를 경영에 반영하고 기술적 요소를 경영에 반영하는 데 노동이사의 역할이 가능하다”고 예를 들었다. 또한 “하남선 연장에 관해서 장기적인 노선 운영 시 교통공사가 손해 보는 일이 없는지, 특히 노동자에게 손해를 부과하는 방식이 되지 않는지 재검토를 요구해 다시 논의하기도 했다”며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될 수 있는 경영참여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종합적으로 노동의 적극적 경영참여로 인한 소통 활성화는 일종의 메기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변춘연 서울농수산식품공사 노동이사는 “일단 직원들이 직접 선출한 노동이사의 발언에 기관장을 포함한 상임이사, 당연직 이사뿐만 아니라 비상임이사까지 경청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며 비상임이사 또한 그동안 소극적인 발언 내지 참석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면 이제는 안건에 대해 노동이사와 협의하고 적극적인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는 등 살아있는 실질적인 이사회가 되고 있다”고 윈-윈 효과가 있음을 경험에 비춰 설명했다.

경영 활동에 없었던 것?!
노동의 관점을 녹이다

노동이사제가 추진되면서 경영 활동에 노동의 관점이 추가되며 실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앞서 박희석 노동이사가 제기했던 하남선 문제는 노동의 관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의 하남선 연장 개통으로 인해 추가 채용 인원이 215명이었고 실제 채용까지 이뤄졌다. 차량을 확보하고, 인원을 뽑아 배치까지 했다.

박희석 노동이사는 “하남선의 경우 총 7.7km 중 1.2km만 서울시에서 만들었고 나머지는 하남시가 만들어 운영을 맡는데, 하남시가 맡은 노선에 연간 186억 원이 유지를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하남시 재정자립도로 분담이 가능한가를 문제제기했다”며 “문제제기한 이유는 (하남시의 재정자립도로 비춰봤을 때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하남시가 디폴트 선언을 하게 되면 하남시가 맡은 노선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경우 이들의 고용승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노동자의 고용 문제를 걱정하면서 제기했던 문제로 인해 이사회에서 다른 경영진들도 문제로 인지했고 하남선 연장 개통은 제기된 문제점을 보완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었다.

또 다른 경영상의 변화도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출산휴가, 육아휴직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자회사 비정규직으로 계속 노동을 했지만, 모회사 정규직으로 일한 지 1년이 넘지 않기 때문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박희석 노동이사는 “문제제기를 했고, 사측은 많은 임산부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해 직접 확인을 하니 전환 대상자 중 임신한 노동자는 1명뿐이었다”며 “회사의 파악도 잘못됐고 고용승계 과정에서 좋은 것이 있으면 그대로 승계해주는 것이 일반적 원칙이라며 경영진과 논의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처럼 노동의 경영참여를 통해 경영진의 관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점들을,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지점들을 경영에 녹일 수 있다. 노동의 관점이 회사 경영에 녹아들면서 단순히 노동자에게 유리한 발판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고용 문제는 회사의 장기 재정적 미래와도 연관돼 있다. 노동자의 노동조건 문제는 생산성을 높여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의 문제와 직결되기도 하고, 직장에 대한 노동자의 믿음으로 돌아와 노동자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노동의 참여,
유기적 기업 활동을 위해

결국 노동의 참여로 메기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노동의 관점을 경영 활동에 녹이는 것도 기업의 민주적 지배구조를 만드는 효과로 귀결한다. 지금까지 경영은 경영진의 것이고 노동자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비춰졌던 것에 대한 실체 없음이 조금씩 밝혀지는 것이다.

노동이 참여함으로 좀 더 나은 변화와 효과가 있었다. 노사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민주화하고 서로에 대한 견제, 감시, 공조가 있었을 때 긍정적인 기업 활동을 초래한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기업 활동에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이미 오랜 기간 사회에 자리 잡은 작동 원리이다. 그런데 기업 활동에서 노동자와 경영진의 화합과 상생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강조한다. 이는 물리적 결합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단순히 한 공간에 함께 있다고 상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참여를 통해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넘어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좀 더 나은 기업 활동 전망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