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을지로 골목, 위기의 소상공인들
[르포] 을지로 골목, 위기의 소상공인들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4.14 17:02
  • 수정 2020.04.14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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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한 번, 도시재생사업으로 두 번 운다

4월의 오후는 무심할 정도로 고요하고 평온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기 악화가 이어지고 있고, 즉각적인 타격을 받는 소상공인들이 앞 다투어 달려가 대출 지원을 받으려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 건 불과 몇 주 전이다.

을지로로 접어드는 초입부, 서울지방노동청이 단박에 보이는 사거리에는 고개를 들어보기도 힘든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정오가 되면 세미정장 차림으로 끼니를 챙기러 나오는 이들로 거리가 붐빈다. 모두가 마스크를 꼈다는 것 외에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그러나 골목의 사정은 달랐다.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문 닫은 점포에 붙인 스티커.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볼트·전기·빠우·철강·용접 등 간판을 단 골목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골목 도입부 일부 점포를 제외하고 길 아래쪽 점포는 문을 닫았다. 도시 재정비 사업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사장님, 이 라인에 몇 집이 나간 거예요?”

“이 밑으로 다 나갔잖아. 코로나 그거 이전에는 그나마 장사가 좀 됐는데, 요즘엔 일이 하도 없어서 물품도 안 팔리고, 저-기 앞에서 공사하면서 나가라고 하니깐 다 나갔지. 없는 사람들 다 죽여 놓고. 다 쫓겨난 거지, 집주인들한테. 옛날에는 장사도 잘됐는데 상권도 다 죽어버렸지, 뭐. 이제는 뭣도 못해. 나도 이제 한 달 뒤면 나갈 거여.”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평상시 금속성으로 요란스럽던 골목이 고요하다.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2006년부터 세운지구 개발 계획을 이행 중에 있던 서울시는 지난달 초 기존 개발 계획을 180도 바꿔 ‘도시재생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이달 5일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세운 3-8구역과 3-10구역이 해제될 경우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인 세운 3-9구역의 진입로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지적하며 ‘세운 3-8, 3-10구역 촉진지구 해제 추진 철회’ 청원을 의결하기도 했지만, 소상공인들에게는 어떤 선택이든 달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디자인하고 조소하는 대학생들, 졸업 작품 만든다고 자주 찾아오고 해. 근데 코로나 때문에 등교 못하지, 그러면 일도 줄지. 요 옆집은 인공위성 부품도 깎아주던 곳인데 다 힘들어. 내가 이 골목에서 35년을 일했어. 저쪽 라인은 이제 다 허물 거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30-40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야. 재생 사업인지 뭔지 때문에 어찌된 게 우리보다 저쪽 공사장 소음이 더 커. 못해도 70년 이상 된 상권인데 우리보고 굶어죽으라는 거지. 나이 먹고 어디 취업을 해? 막노동도 못하는데. 여기는 상권 자체가 더불어 사는 상권이야. 소비자들이 이거 필요하다고 하면 이거는 저쪽 집에서 사라고 하고 그런다고. 사람들 다 나가면 문래동이고 용두동이고 다 돌아다녀야 돼. 센터를 짓든가 해서 상권을 보존해줘야지, 큰 건물만 지으면 뭐할 건데?”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정부가 중소상공인 지원 역량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재개발로 30년 넘게 일하던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들은 두 번 운다. 오랜 협업 관계로 이뤄진 이 제조 특화 지역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봄이다. 그러나 을지로·청계천 일대 골목에는 아직 볕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