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타다드라이버, 한국 노동자의 초상
[손광모의 노동일기] 타다드라이버, 한국 노동자의 초상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4.20 12:50
  • 수정 2020.04.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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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먼 훗날 사람들에게 2020년 4월 10일은 어떤 날로 기억될까. 한국 1세대 벤처 창업가 이재웅 전 대표의 ‘실패의 날’로 기억될까. 아니면 1만 2천 타다드라이버가 맥없이 구조조정을 당한 날로 기억될까.

지난 10일 자정을 마지막으로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운영 종료됐다. 플랫폼운송업체 ‘타다’가 출범한지 550일 만이었다.

이재웅 타다 전 대표는 출범 이후 줄곧 본인의 SNS 계정에서 열렬한 홍보전을 펼쳤다. ‘타다는 곧 혁신’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2년여의 논쟁 끝에 국회는 타다가 혁신이 아닌 ‘편법’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이재웅 전 대표는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한국사회를 일컬어 ‘반혁신적’이라고 비난했다. 3월 6일 국회에서 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통과되자 한 달의 말미를 두고 미련 없이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접은 이유였다.

이에 따라 1만 2,000여 명에 달하던 타다드라이버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투잡이든 전업이든 어떤 형태로든 일한 타다 드라이버들은 ‘여태까지 수고했다’라는 따뜻한 위로는커녕, ‘회사를 접으니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라는 차가운 통보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타다와 타다드라이버는 남보다 더 못한 사이였다.

타다 베이직 서비스가 종료되는 당일, 나는 타다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양재동과 서울대병원 강남분원 차고지를 찾았다. 타다비대위는 현장에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참여할 타다드라이버를 구했고, 나는 그들에게 이러저러한 개인사를 캐물었다. 질문을 하고보니 약간은 무례한 질문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다드라이버들이 사뭇 담담하게, 동시에 어른의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말로 털어둔 이러저러한 개인사 속에서 그들의 자존심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고지에서 만난 타다드라이버들은 모두 쉰에 약간은 모자라거나 조금 넘은 ‘흔한 아저씨’들이었다. 여느 아저씨들처럼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돈이 필요했다. 본인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돈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도 타다드라이버는 돈이 필요했다. 타다드라이버가 노동자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40만 원이 필요했다. 20만 원은 소송 수수료로, 나머지 20만 원은 변호사 선임비용에 쓰일 돈이다. 40만 원을 가장으로서, 생계비로 쓸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로서 쓸 것인가. 소송의 취지를 건네들은 타다드라이버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타다드라이버들은 직장 생활부터 자영업까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겪었고, 또한 겪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은 앉아서 천리를 봤다. 타다드라이버들은 이재웅 전 대표가 말하는 만큼 타다가 혁신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인 구조가 혁신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타다드라이버들은 이재웅 전 대표의 ‘혁신’이 배달의 민족처럼 높은 값으로 타다를 팔거나 ‘상장대박’을 이루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경제와 정치를 두루두루 섭렵하며 앞으로의 정세를 통찰하는 타다드라이버들은 영락없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운전대에 앉아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기력했다. 타다는 14일 타다프리미엄 서비스 사업 설명회를 진행했다. 550여 일 간 같이 일했던 타다드라이버는 잊고 택시업계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재웅 전 대표가 말하는 ‘혁신’은 노동자를 더 이상 사용자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련 없이 떠나는 타다와 맥없이 다른 일을 찾아보는 타다드라이버 사이에서 현재 한국사회 노동자의 초상을 엿볼 수 있다. 여느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타다드라이버들의 왕년은 눈부셨다. 마치 33년 전 1987년의 여름이 노동자의 세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날의 기억으로 어찌보면 관성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노동계와 타다드라이버의 모습은 묘하게 닮았다.

타다드라이버들은 현재 한국사회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초상이다. 1만 2천 타다드라이버들이 맥없이 잘려나갔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앞날도 그리 밝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타다비대위의 실험, 타다드라이버들의 노동운동을 응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