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정작 나는 어떤가
[박완순의 얼글] 정작 나는 어떤가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22 10:01
  • 수정 2020.04.2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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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최근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관련 취재를 했다. 취재를 하며 건설노동자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이 퇴직금 수준과 그 수준을 그마저도 꾸역꾸역 올려온 역사와 과정을 보면 맨 밑바닥에는 ‘무슨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퇴직금까지 받나?’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사판에서 = 열악한 곳에서 = 흔히 말하는 3D에서 = 사람들이 다 기피하는 곳에서 = 비천한 곳에서’ 일을 하면 곧 천한 사람이고, 천한 노동자는 일반적 노동자들이 받는 퇴직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이야기하면 ‘머슴이 밥이나 먹으면 됐지’라는 전근대적 인식이다.

취재 중에 건설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례 하나를 들었다. 건설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의 회의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전에는 컨테이너에서 잘도 자더니 요새는 모텔 안 잡아주면 안 자더라.”
“아니, 상무님이나 전무님이 출장 갔는데 모텔 안 잡아주면 어떻겠냐? 똑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이야기 하지 마라.”

건설노동자는 건설 현장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하기 때문에 숙소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누구는 컨테이너에서 자고 누구는 갖춰진 숙박시설에서 자야 하는 법은 없다.

이런 인식을 발생시키는 건설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 불법다단계하도급인데, 법이 정한 하도급 이상으로 하도급을 주는 관행 때문에 가장 밑에 있는 건설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낮아지고 작업 환경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전체 공사비 파이가 밑으로 내려오며 줄어들기 때문에 인건비, 안전 장비에 대한 투자 등이 줄어든다. 결국 건설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그렇게 3D 직종이 된다.

그래서 구조와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때로는 인식 개선이 선행될 필요성도 있다. 사회적 편견이 돼지비계처럼 두껍고 질기게 형성돼 먼저 도려내지 않으면 살코기인 구조적 문제에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껍고 질긴 돼지비계를 걷어내는 일도 쉽지는 않다. 자기 인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건설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취재가 아닌 다른 이유로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을 인터뷰해야 했다. 인터뷰 질문지를 끄적거리다가 이런 질문을 썼다.

‘투쟁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썼다가 그 글을 보고 볼펜으로 줄을 박박 그었다. 그 문장을 쓰기 위해 건설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이나 교섭 방식이 어땠는지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이미 언젠가부터 나도 뭔가 망치를 쥐고, 무거운 것을 나르며, 투박한 공간에서 거칠 것만 같은 건설노동자의 이미지를 사회문화적으로 학습해 내재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전투적’일 것이라 쉽게 판단한 것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사회적 편견이 작동한 결과다.

정작 나는 어땠나? 정작 나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정작 나는 어떤가’라고 평상시에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부분이었다. 스스로 많이 물지 않으면 돼지비계는 질겨서 뜯어지기 쉽지 않다. 여러 사회적 편견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담이지만, 이런 이유로 손으로만 떠드는 것 같아서 가끔 ‘글쓰기’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