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위에 쌓은 철도지하철의 ‘빠름’과 ‘편안함’
죽음 위에 쌓은 철도지하철의 ‘빠름’과 ‘편안함’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4.23 07:44
  • 수정 2020.04.23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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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철도지하철 사업장 개통 후 공식 산재 사망 노동자 2,546명”
궤도협의회, “경쟁과 효율 중심의 철도지하철 정책이 노동자 죽게 만들어”
공공운수노조가 22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안전한 철도지하철, 지금 당장 인력을 충원하라'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공공운수노조가 22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안전한 철도지하철, 지금 당장 인력을 충원하라'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1990년 12월 주간 선로점검 중 순회표 기록으로 손전등 비추다 열차에 치여 사망
1996년 07월 차량사업소 구내에서 궤도선로 점검 중 열차에 치여 사망
1997년 11월 야간근무 퇴근 후 수면 중 심장마비 사망
2000년 01월 본선 터널 구간 점검 중 열차에 치여 사망
2010년 06월 변전소 정전작업 중 감전으로 인한 화상으로 사망
2013년 07월 출근 중 의식 잃고 뇌간출혈로 사망
2015년 10월 12년간 지하 터널작업. 디젤매연, 금속·광물성분진 등 노출로 폐암 4기 판정 후 치료 중 사망

<부산지하철노조 제공 자료 편집>

치여 죽고, 감전으로 죽고,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죽고, 유해물질로 죽었다. 1985년 개통 이후 부산지하철 사업장에서 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다.

다른 철도지하철 사업장의 경우도 같은 이유의 산업재해로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1974년 개통한 서울지하철은 2003년과 2017년 사이에 32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철도공사는 1899년 개통 이후 2,501명의 노동자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철도공사는 공공기관 중 산재발생 1위의 오명을 안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이하 궤도협의회)는 지난 20일 ‘궤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고, 22일에는 이어서 공공운수노조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공동행동에 함께했다.

궤도협의회는 철도지하철 사업장의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 사고의 원인에 대해 경쟁과 효율 극대화를 중심으로 한 철도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빠르고 편안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위해 현장을 뼈를 깍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22일 공동행동의 발언자로 나선 신상환 서울메트로9호선 지부장은 “슬림화라는 명목으로 말도 안 되는 멀티플레이를 해야 한다”며 “열차 장애가 일어나도 터널에 혼자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한다”고 경영 효율성 극대화의 폐해를 지적했다.

또한 “단순한 사다리 작업도 2인 1조가 안 지켜지고 있는 상황이고, 결국 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한 전체 시민의 안전도 위협하는 셈”이라며 “안전 인력을 충원하고 철도지하철이 공공재로서 안전성을 높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한창운 궤도협의회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참여와혁신>과 통화에서 경쟁과 효율 일변도의 정책이 철도지하철 사업장에서 어떻게 안전사고를 발생 시키는지 설명했다. “철도의 경우 경쟁 효율화를 목적으로 진행한 시설과 운영의 분리가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지하철의 경우 민간위탁 지하철 사업장(9호선, 서해선, 용인경전철 등)이 대표적인 경쟁과 효율 논리로 안전사고 위험성이 높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효율적 운영이라는 명목으로 인건비를 줄이니 노동자 수 자체가 보통 지하철 사업장의 절반 수준으로 운영이 돼 장시간 노동이 발생하고, 휴게 시간이 엉망”이라며 “운영한지 얼마 안 됐으니 안전사고가 아직 크게 일어나지 않았지 안전사고 위험성은 상당히 내재돼 있다”고 지하철 민간위탁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한창운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산업안전보건법과 철도안전법의 미흡함도 지적했다. 산안법 상 철도지하철 터널에서 나오는 유해물질, 미세먼지 등의 측정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철도안전법은 벌칙 조항과 같은 징벌적 조치에만 집중해 있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항은 부족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어떤 작업에서는 2인 1조 작업을 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다는 뜻이다.

궤도협의회는 경쟁과 효율이 아닌 안전과 공공성을 우선하는 철도정책과 제도를 요구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안전 인력 충원 ▲징벌적 철도안전법 개정 ▲안전 투자 확대 등을 밝혔다. 안전 인력 충원으로 1인 근무를 줄이고, 철도안전법 개정으로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닌 안전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구축하는 제도를 정비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궤도협의회는 다음 주 4월 28일 세계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까지 추모 사업을 이어간다. 산재로 사망한 철도지하철 노동자를 기억하고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철도지하철을 만들기 위해서다. 추모 사업으로는 추모 리본 달기와 추모 포스터 역사 부착 등을 진행한다.

종로3가역 역사 안에 부착된 4.28 세계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 포스터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종로3가역 역사 안에 부착된 4.28 세계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 포스터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