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코로나19와 노동조합의 '상상'
[정다솜의 다솜] 코로나19와 노동조합의 '상상'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4.24 21:27
  • 수정 2020.04.2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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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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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일상을 잠식한 지 3개월째다. 같은 기간 취재 일정도 코로나19로 꽉 찼다. 전례 없는 재난 상황에 노동자들이 속속 쓰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 사회안전망 바깥에 선 '약한고리'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터져 나왔다. 이에 정부는 강력하고 신속한 조치로 '총력대응' 하겠다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사각지대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한참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어느 특수고용노동자가 말했다. "정부도 참고할 해외사례가 없어서 이러는 것 같다." 노동자들이 전례 없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고용보험가입자, 산재보험가입자 등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예전처럼 문턱이 높아 약한고리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지난주에 만난 학습지노조 위원장도 "주변에서 코로나19로 정부의 도움을 받은 교사를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사방이 답답한 가운데 노동조합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리고 꼭 필요한 대책을 요구하는 일은 물론이고 전례 없는 상황인 만큼 대안을 만들거나 제시하는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 17일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속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정부에 "아이들 '밥', 함께 논의하자"는 제안은 눈에 띄었다. 

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주 교육부에 학생들의 학교급식 대체 방안 논의를 함께해보자고 제안했다. 장기화된 개학 연기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해 급식노동자들과 교육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 교육공무직본부는 미국 뉴멕시코주, 텍사스주 등 교육당국이 학교급식 대체 방안을 마련한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급식노동자들은 일부 지역에선 돌봄교실 학생들이나 교직원 중식을 마련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대체직무로 위생·안전교육을 받거나 교내 청소 등을 하고 있다. 따라서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한 학교급식 대체 방안 마련은 급식노동자들이 잘하는 원래 업무를 하면서도 사회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급식노동자들의 제안에 관해 어느 교육부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무직원, 교원, 공무원 등 누구나 다양한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담당 부서가 응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금세 잊고 마는 일이었다. 정책 제안은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담당 부서가 제안에 답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방향이 가능하다. 개인이 시도하기엔 벅차지만 노동조합은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잠식한 일상 속에 교육공무직본부의 구체적인 상상은 답답하기만 한 상황에 숨통을 틔워줬다. 이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동조합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장 노동자들의 상상은 늘 소중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상상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전례 없는 일들은 대부분 상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