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노크노크]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이동희의 노크노크]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4.27 20:34
  • 수정 2020.04.27 2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노동자 안전, 일터의 죽음과 관련된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다.

안전과 관련된 이슈는 (그 시급함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 한 번 한다고, 기사 한 번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 몇 년째 똑같은 구호가 반복되고 있다. 산재사망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올해도 마이크 앞에 선다.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민주노총,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과 산재피해유가족 '다시는', 한정애 국회의원실은 2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2020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고 올해 살인기업으로 ‘대우건설’을 꼽았다. 고용노동부가 한정애 의원실에 제출한 2019년 중대재해 조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우건설 현장에서만 7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다. 현대건설, GS건설이 그 뒤를 이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질식, 질식, 깔림, 추락, 깔림, 깔림, 추락.

지난해 대우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하청노동자 7명의 사망 원인을 산재발생 순서대로 나열해봤다. 건설현장은 추락, 질식, 화재, 감전, 협착 등 수많은 위험이 존재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이 위험이 노동자들에게 향한다. ‘기업’ 앞에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붙여가면서까지 비판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산재사망 노동자의 사고 경위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눈 여겨 볼 점은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라는 점이다.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는 총 13개 기업이 선정됐는데, 사망 노동자 51명 중 40명이 하청노동자(78.4%)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원청을 포함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법인 처벌은 행위자와 법인 또는 사용주를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산업안전보건법 제71조)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산업안전보건법은 양벌규정 적용을 전제로 실질적인 행위자를 먼저 처벌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법인을 독자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따로 없다. 법인의 형사처벌은 행위자의 형사처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제재 대상인 ‘실질적인 행위자’를 사업주가 아닌 '현장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근로자'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안전보건에 대한 결정권이 사업주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매우 드물게 사업주가 행위자로 처벌되는 일도 있지만, 사업주가 영세기업의 대표자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사업주가 안전보건경영상 의무 미흡으로 처벌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즉,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에 이름을 올린 대우건설과 그 사업주가 실질적인 행위자로 처벌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형 기업살인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기거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 및 정부 책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현장을 방문해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현재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오는 5월 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는 4년째 계류 중인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더 이상 죽지 않는 사회’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의 말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지난해 수원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 노동자의 누나 김도현 씨의 목소리다.

“태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향후 몇 명에서 몇 백 명이 될지도 모르는 같은 죽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 자체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기업이 내는 평균 벌금을 432만 원입니다. 사람의 목숨이 돈으로 계산되고 있습니다.

이 죽음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0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되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던,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21대 국회는 매년 2,400명 죽음의 행렬, 기업살인을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하고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