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님의 동선] 벨파스트, 런던을 거쳐 인천까지의 여정
[강한님의 동선] 벨파스트, 런던을 거쳐 인천까지의 여정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4.30 22:40
  • 수정 2020.04.30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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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 움직이는 방향을 나타낸 선] 자주 만나고 싶어요.

‘3월 24일 오전 아홉 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런던으로 가는 중이다. 모두 다닥다닥 붙어서 비행하는 걸 걱정했는데 내 좌석 쪽에 아무도 없다. 세 자리씩 나뉘는 비행기인데 혼자 다 쓰면서 간다. 마른기침도 눈치 보여서 못 하겠음. 아무것도 못 먹겠고 배고파.’

런던행 비행기에서 쓴 글의 일부다. 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귀국한 유럽발 입국자다. 한국 날짜로 3월 25일,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히드로 공항을 경유해 인천으로 들어왔다. 비행시간은 열 두 시간 정도. 대기시간을 합치면 더 길다.

그간은 북아일랜드에서 자원 활동가로 일했다. 유럽에서 확진자가 폭증하자 일터는 문을 닫고 국제 활동가들을 모두 귀국시켰다. 공항이 닫힐 가능성이 있으니 서두르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과 작별 인사할 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했다. 유럽 확진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매일 뉴스를 보며 서로의 국가와 우리의 안녕을 걱정했다.

우간다에서 온 다른 활동가는 비행 하루 전 국가가 국경을 닫아 돌아가지 못했다. 다행히 나는 8월 한국행 항공권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날짜 변경에만 13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원래 왕복 비행기 표 값이 그 정도다. 비행기 표를 새로 구하기 위해서는 200만 원, 300만 원까지도 지불해야 했다. 운행하는 비행기 자체가 많이 없었던 탓이다.

공항에서 마주친 한국인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고글, 방호복 같이 생긴 옷들도 보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땐 길게 줄을 서서 발열 검사를 기다렸다. 특별검역신고서 작성할 때 볼펜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입을 여는 게 부담스러웠다. 공항 관계자는 내 핸드폰에 위치 추적 어플을 설치했고,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한국 번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바로 핸드폰 정지를 풀었다.

갑작스럽게 일을 잃게 된 슬픔, 비행 중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불안이 공존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심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참담하게 느껴졌다. 코로나19 해외입국 확진자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부 여론은 해외입국자 유입을 막자고 했다. 어쩔 수 없는 귀국이었음에도 죄송했다.

코로나19는 내 세상을 바꿨다.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할 여러 지점들을 남기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 3월 코로나19 관련 상담이 773건의 제보 중 247건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제보에는 무급휴가 강요, 연차휴가 소진 강요, 해고·권고사직 강요 등이 포함됐다.

지난 4월 22일, 민주노총의 노동자 건강권 쟁취 공동행동 취재를 다녀왔다. 기사에 다 적지 못했지만 민주노총 이선규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콜센터는 언제나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였다. 근로조건 개선을 무수히 많이 외쳤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콜센터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책임은 원청에게 있다. 원청은 도급단가를 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건강권과 감염병 위험은 아무 관심도 없다. 고용유지 지원금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은 고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콜센터 노동자의 계약서에는 장비와 시스템이 원청 소유라고 명시된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국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벼랑 끝으로 몰린다.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한국에서의 시간도 벌써 한 달 정도가 흘렀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선명하게 비췄다. 물론 긍정적이고 감사한 부분도 있었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외출이 금지된 나를 위해 지자체에서 체온계를 보내줬다. 구호단체는 먹을거리를 배송해줬다. 담당 공무원과 하루에 세 번 증상여부를 확인했다. 공무원은 아예 나가지 말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자가격리 기간 중 생활 쓰레기는 택배로 온 주황색 봉지에 밀봉하고, 또 일반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렸다. 방문은 닫고 창문을 열어 집을 환기시켰다. 

새로운 감염병이 다시 올 것이라고들 한다. 그 때 한국은 또 어떤 모습일까. 현재 청각장애인 학생들은 온라인 개강으로 인한 화상강의 시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남병원 입원환자들은 집단감염 됐다. 특정 국적과 지역은 기피 대상이 된다. 이 가운데 언론은 불안의 조력자였다. 펜을 들기 전 충분히 고민해야 할 이유겠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