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기다림, '태아 산재' 대법원 인정했다
10년의 기다림, '태아 산재' 대법원 인정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4.29 18:46
  • 수정 2020.04.29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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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주의료원의 비극 … 간호사 12명 임신, 5명 유산, 4명 심장질환아 출산
“엄마와 태아는 한 몸” 1심 판결 뒤집은 2심 … 대법까지 6년 더 걸려
4월 14일 오전 10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대법원은 제주의료원 간호사 엄마의 업무상재해로 인한 태아의 선천적 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라!' 기자회견 현장에 참석한 현정희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임신 기간 중 업무상 이유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간호사가 있다. 그 간호사가 낳은 아이가 엄마의 산업재해로 인해 선천질환을 가지게 됐다면, 산업재해 적용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황당하게 들리지만 여태까지 간호사의 아이는 산업재해를 적용 받을 수 없었다. 아이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엄마와 태아는 한 몸’이라는 상식이 10년 만에 바로 잡히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오전 10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제기한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심으로 다시 재판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12년 내려진 1심 판결과 유사했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라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여성노동자와 태아는 업무상 재해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 및 시민단체는 즉각 환영의 입장을 표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에 591만 명(고용보험 가입기준)의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현장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고 있다”면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10여 년 넘는 법정싸움이 또 다른 노동자들에게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서울고등법원이 태아 산재를 부정한 판결의 근거인 산재보상보험법의 시급한 개정이 필요하다. ‘태아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상보험법의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현실에 뒤떨어진 산재보상보험법은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직업성 2세 질환 문제를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태아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인으로는 약물 뿐 아니라 화학물질, 중금속, 전리방사선, 교대근무, 중량물 취급,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산재보험 법제도를 제대로, 그리고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전 사회적으로 그동안 가려진 2세 질환 문제를 드러내려는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료원지부가 속해 있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서도 이날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의료연대본부는 “근로복지공단과 제주의료원의 항소로 인하여 무려 6명의 세월이 더 흘렀다는 점에서 근로복지공단과 제주의료원,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면서, “10년의 세월, 아픈 아이들과 함께 이번 판결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 온 의료연대본부 제주지부 동지들과 연대해주신 모든 동지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