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노동자’로 노동절 맞는 김정남 씨 이야기
‘해고노동자’로 노동절 맞는 김정남 씨 이야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5.01 20:10
  • 수정 2020.05.15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 고용위기 직격탄 맞아 정리해고 당한 공항노동자
내년 노동절에는 복직해서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고파
5월 11일부로 정리해고 노동자가 되는 '아시아나케이오'의 김정남 씨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5월 11일부로 정리해고 노동자가 되는 '아시아나케이오'의 김정남 씨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59세,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공항노동자 김정남 씨는 해고노동자가 됐다. 5월 11일부로 그가 일하러 들어갔던 공항의 출입증은 정지다. 코로나19로 시작된 항공·공항서비스 업계의 위기가 고용위기로 빠르게 번졌다. 빠르게 번진 고용위기는 김정남 씨를 덮쳤다.

10년 동안 공항에서 수하물 분류, 공항 이용객들의 가방과 캐리어가 제 주인을 찾을 수 있게 분류하는 노동을 했다. 앞 5년은 인천공항에서, 뒤 5년은 김포공항에서 말이다. 10년 전 사업 실패와 건설 현장에서의 노동을 반복하다가 찾은 공항이다. 그런 공항에서 다시 맞은 ‘불안정’이다.

5월 1일 오후 2시 서울역 서부광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130주년 노동절을 맞아 공동행동을 열었다. 5월 첫날은 후덥지근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쌀쌀했는데, 봄은 건너뛰고 여름이 찾아왔다. 서울역 서부광장에 모인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은 저마다 손부채질을 하며 윗옷 목깃을 연신 풀썩였다. 김정남 씨를 그곳에서 만났다. 손부채질을 하는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부장인 그는 자신이 맞은 정리해고와 현장 이야기를 조합원들에게 들려줬다.

공공운수노조의 노동절 주요 요구는 ▲모든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 ▲비정규직 정리해고 중단 ▲공공의료 강화, 사회안전망 확대 등이었다. 비단 공공운수노조만의 요구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와 산업의 위기가 노동의 위기로 번지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 지적한 것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장기 경제위기 전망 속에서 지금 당장의 해고는 언제 다시 노동시장으로 들어설지 모르는 장기 실업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고, 특히 해고 대상으로는 비정규직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혹여나 노동시장 밖으로 떨어져 나가더라도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안전망의 그물코는 너무 성겨서 많은 노동자들이 그 보호를 받지 못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 프리랜서들, 예술노동자들,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제기되는 3가지 요구를 설명하기에 김정남 씨가 겪은 현실은 충분했다. 해고당한 노동자였고, 비정규직에 다름없는 최저임금 수준의 무기계약직이었다.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에어포트-아시아나케이오‘로 이어지는 하청의 하청노동자이다. 김정남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는데, 현실은 전혀 반대”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 순간이었다.

작년 노동절, 김정남 씨는 일을 했다. 남들이 쉴 때 공항노동자들은 바쁘다. 작년 노동절은 수요일이었고 목금 연차를 낸다면 그 다음주 월요일(당시 대체휴일)까지 최장 6일을 쉴 수 있었다. 공항은 이용객이 된 노동자들로 붐볐다. 대체 휴무를 기약하며 김정남 씨는 열심히 이용객의 수하물을 분류했다.

김정남 씨는 누군가 여행을 갈 때 바쁘게 몸을 움직이며 일했다. 바쁘게 10년 동안 일한 그는 손목에 염증이 생겼다. 몇 번 병원에 가 관절 주사를 맞았다. 많은 수하물을 손으로 운반하고 분류하다보면 흔히 이 계통의 노동자들이 겪는 직업병이다. 그가 속한 아시아나케이오지부의 노동자들은 수하물 분류 노동자도 있지만 기내 청소노동자도 있다. 항공기 안 다닥다닥한 좌석을 구석구석 닦기 위해 쪼그려 앉고 몸을 구부리다보면 기내 청소노동자들에게 무릎 관절염은 기본이다. 손가락 마디도 굵어지고 휜다. 그래도 보람 있었다. 이용객들이 자신들의 노동 덕분에 편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케이오지부' 기내 청소노동자의 손, 7-8년 동안 걸레를 쥐고 청소를 하다보면 손가락 마디가 굵어지는 건 예사고 손가락이 휘기도 한다(왼쪽 사진). 좌석 위 짐칸 청소를 하다가 무거운 물건에 손을 찍혀 생긴 흉터가 아직 검지 손가락에 남아있다(오른쪽 사진).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올해 노동절, 김정남 씨는 해고자가 됐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히 코로나19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 위기로 노동자들에게 선택지를 줬다. 무기한 무급휴직, 희망퇴직, 그마저도 선택하지 않으면 정리해고였다. 김정남 씨는 “전체 500명 중에 무기한 무급휴직 370명 정도, 희망퇴직 120명 정도, 나를 포함 정리해고 8명”이라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조금 더 나빠졌다고도 했다. 회사가 얼마 전 무급휴직 희망자 중 5월 상황을 봐서 필수유지인원 160명을 남기고 2차로 해고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정남 씨는 “무기한 무급휴직도 언제 복직할지 모르고, 또 이렇게 몇 명만 남기고 해고한다는데 무급휴직도 정리해고랑 다를 게 뭐가 있나?”고 반문했다.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이 있었음에도 회사는 신청하지 않았다. 초기에 내놓은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이 후지급 형태이어서 현금유동성이 부족한 회사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김정남 씨는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러면 정부 정책이 지원금 선지급 형태로 바뀌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정부는 선지급 형태로 정책을 바꿨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을 신청하지 않았다.

여기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발생한다고 김정남 씨가 말했다. 그는 지금 아시아니케이오지부가 임금체불 소송 중인데, 고용유지지원금 정책을 신청하지 않고 경영상 위기로 임금체불 노동자를 손쉽게 해고하거나 퇴직시키기 위해서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정남 씨는 회사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90%를 받는데 나머지 10%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경영상 어려움을 피력했다고 전했다. 이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현재 160명 정도가 한 달 스케줄을 잡고 일을 하고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이 월 200만 원 정도를 받는 상황에서 단순 계산하면 3억 2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 그런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서 무기한 무급휴직자를 유급휴직으로 돌리고 일해도 8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 뭘 선택해야 하는지는 보이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정남 씨는 석연치 않은 회사의 태도에 의문을 계속 제기하고, 자신을 포함한 8명의 복직을 위해 앞으로 싸울 것이라고 서울역 서부광장에서 대한항공 서소문사옥으로 행진하며 다짐했다. 같이 행진하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행진하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해결 방법이 노동자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내년 노동절은 어땠으면 좋겠냐고 김정남 씨에게 물었다. 그는 복직이 돼서 노동절 휴일을 맞아 공항을 이용하는 이용객들에게 짐이 섞여 잘못 전달되지 않게 열심히 분류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쉬고 싶다가 아니었다. 130주년 노동절을 맞아 거리에 선 노동자들의 외침은 결국 하나였다. ‘일하고 싶다’였다.

‘모든 해고 금지’ 손팻말을 든 김정남 씨는 조합원들과 계속 걸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