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집회의 의미
[최은혜의 온기] 집회의 의미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5.05 00:00
  • 수정 2020.05.04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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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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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의 막바지다. 이번 황금연휴에는 노동절이 끼어 있었다. 노동기자로 오래 일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절 집회는 11월 전태일 열사의 기일 즈음에 진행되는 전국노동자대회와 함께 양대노총의 '대목'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지난해는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노동절을 맞아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올해 노동절에는 대규모의 집회는 없었다. 특히 내가 출입하는 한국노총의 경우, 여당과의 고위급 정책협의회만 있었을 뿐, 야외 행사는 없었다. 물론 고위급 정책협의회라는 빅 이벤트로 정신없는 노동절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집회가 없는 노동절이 참 생소했다.

노동절에 기사 작성을 위해 20년 만에 노동절에 쉬는 노동조합 활동가와 통화를 했다. 나는 그 활동가에게 “만약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고 모든 노동자가 노동기본권을 쟁취해낸다면, 노동절에 집회를 안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집회는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동절마다 이어진 우리의 요구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것과 노조할 권리 보장, 그리고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로 압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열심히 외쳤고 아직 온전하게 쟁취하지 못했다. 사실 이 모든 걸 온전히 쟁취해낸다면, 노동절에 집회 대신 모든 노동자가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통화한 활동가는 내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노동절의 집회는 요구 그 이상의 의미라는 것이다. 노동절이나 전국노동자대회 때 집회는 그 시기 노동이 앞으로 해야 하는 뜻을 결의하고 조직하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및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고 모든 노동자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되어도 집회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그동안 내가 집회를 단편적으로 본 건 아닐까 고민했다. 집회가 요구를 위한 자리라면, 집회를 주최해온 노동은 단지 요구자에 불과한 건지, 그렇다면 사회주체로 자리매김한 노동을 내가 객체로 인식해온 것은 아닌지 등 여러 생각이 얽힌 실타래처럼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혔다.

벌써 연휴의 마지막 날이고 집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에겐 집회라는 강력한 요구 수단이 아직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직된 노동의 힘을 가장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 집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