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문제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안전 문제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5.07 18:28
  • 수정 2020.05.09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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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 시민사회단체, 문재인 정권 3년차 맞아 ‘2020 안전한 나라를 위한 제안’
“2020년을 안전한 나라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7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출범 3주년, 안전한 나라를 위한 제안’ 기자회견 현장에서 발언 중인 김훈 작가.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재난 참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압니다.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다 압니다. 대통령부터 노동자까지 다 알고 있어요. 갈 길이 빤히 보여요. 어디로 가면 해결되는지 보여요. 그런데 우리는 그 길로 가지 않아요. 가지 않으니까 갈 수 없는 거예요.” 기자회견에서 김훈 작가의 말

2020년 4월 29일,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서른여덟 명의 노동자가 화마로 숨졌다. 전날은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었고, 이틀 후는 노동자의 날이었다.

안전은 제일의 가치이지만, 실상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안전하게 사는 방법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시민들의 소망이 청와대 앞에 모였다.

재난·산재 피해가족 및 시민사회단체는 7일 낮 10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3주년, 안전한 나라를 위한 제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반올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정치하는엄마들 등 35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안전문제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안전 총괄 ▲생활 안전 ▲일터 안전 등 3개 분야에서 17개 과제를 청와대에 제안했다.

생명·안전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17개 과제에는 모든 사람의 생명·안전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현행법상 생명·안전권은 여러 헌법 조항의 조합으로 도출되는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며 국가의 보호 의무를 명시한 헌법 제34조6항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등에 의해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상징물이 공개됐다. 해당 상징물은 3년전 '대선후보 국민생명안전 약속식'에서 '생명안전의 눈'이라는 조형물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쓴 글귀다.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생명·안전권을 사법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을 통해 생명·안전권의 기본권으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본권으로서 생명·안전권을 확립한 후에는 ‘생명안전기본법(가칭)’을 제정해 안전을 법률의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는 작업이 뒤따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안전 관련 하위 법률에는 노인·어린이·장애인·여성·청소년 등 ‘안전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세상에 가장 낮은 자들은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격리되고 있다. 노인 장기 요양보호소에 가야하는 노인들, 탈시설을 바라는 장애인들은 격리돼 보이지 않는다”면서, “코로나19 시국에 사회적 약자들의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고 말했다.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로

일터 안전에 대한 과제도 눈에 띄었다.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일터 안전을 위해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 ▲모든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험 적용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과로사 예방법 제정 ▲노동자·시민의 알권리와 참여 보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유가족과 아픔 나누고 함께하기 위해이천 참사현장 분향소에 갔다. 왜 이러한 참사가 계속 반복돼야 하는지 왜 이렇게 매일 억울한 사람이 생겨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된 조사는 빠져있다. 노동자 참여가 필요한데 여전히 미봉책이다. 결국 대충하다가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면 그냥 없었던 일처럼 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 4.16세월호가족협의회의 일원인 '재욱 엄마' 홍영미 씨가 대표로 작성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날 기자회견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낭독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저와 새 정부는 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 것을 국민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19대 대통령 후보로서 서명하신 문구”라면서, “안전문제로 죽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윤 때문에 생명과 안전을 희생해온 구시대를 마감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이후 민주노총과 시민단체 대표 6명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및 사회조정비서관과 면담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