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튈 때, 법제도는 어디 있었나?
불꽃이 튈 때, 법제도는 어디 있었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5.07 18:46
  • 수정 2020.05.07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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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와 같은 중대재해는 명백한 중대범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소리 높아져...
기존 법제도 작동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다면적 접근도 필요
지난 4월 29일 화재 참사가 일어난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지난 4월 29일 화재 참사가 일어난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로 다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제도가 있음에도 처벌 수준이 낮아 이번 참사는 물론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는 게 이유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봐도 처벌 수준이 낮음을 알 수 있다. 2007~2016년 10년 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형사재판 건수는 모두 5,109건(1심 기준)이었다. 이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28건으로 0.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에 달하는 3,413건이 벌금형이었고 집행유예 582건, 선고유예 194건 순이었다. 2016년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 원에 불과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당연히 비용-편익을 고려하는데, 처벌 수준이 낮으면 안전관리에 비용을 들이겠나”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등 현행 법제도를 준수해야 할 동기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우리나라 형법상 법인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데 한계가 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가진 높은 수준의 처벌이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어떻게 대한민국 법체계로 구현할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시 논의해야 할 부분을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것은 명백히 중대범죄가 맞다”며 중대범죄로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는 신중한 입장도 덧붙였다.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 처벌 강화 및 대표이사의 안전보건 관련 계획 수립과 이행 의무를 부과했는데, 이것이 역부족인지는 체계적으로 평가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며 전부 개정된 산안법이 올해부터 적용됨에 따라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에 대한 처벌이 김용균법의 실효성을 확인하는 자리일 것이라는 의견들과 궤를 같이 한다.

박지순 교수는 “제도 적용을 막는 산업의 구조적 문제도 바라보는 다면적 문제 해결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설 산업에 만연한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최저가 입찰의 비용 절감 구조가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사 기간을 단축해야 하고, 결국 우레탄 작업과 용접 작업을 동시에 작업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박지순 교수는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의 역할과 임무 수행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노동부가 근로감독관을 늘렸는데도 산업 현장의 안전을 감시하고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오성 교수 역시 “우리나라 근로감독이 임금체불에 집중돼 있고, 오히려 제역할인 안전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에서 근로감독을 추진하는 내용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게 박지순 교수의 설명이다. 아무래도 지방정부에서 지역의 상황을 자세히 알기 때문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가 이후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방정부의 근로감독 추진과 강화를 이야기했다.

해마다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터로 나가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 특히 끼이거나, 깔리거나, 불에 타거나, 질식하거나 등의 재래식 사망사고가 많다. 따라서 현대에 재래식 사망사고조차 막지 못하는 법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은 처벌 수준이 높은 제도 신설 ▲불법하도급 구조 청산 ▲노동부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고민 등 여러 차원의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또한 21대 국회 개원을 앞둔 현재 당정이 노동안전을 위한 구체적 고민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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