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숙하며 기능경기대회 준비하던 고3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
합숙하며 기능경기대회 준비하던 고3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0.05.08 15:48
  • 수정 2020.05.08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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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ㅅ고등학교 기능반 고 이준서 학생 추모 기자회견
직업교육 경쟁에서 협력으로, 평등한 삶 위한 교육으로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학생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학생들의 건강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5월 8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을 위해 제주도에서 온 고 이민호 학생 아버지 이상영 씨는 경북 ㅅ고등학교 기능반 고 이준서 학생을 추모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 현장실습 중 사망한 이민호 아빠입니다. 서울, 교육부, 국회를 다니면서 제발 민호 같은 사고, 저 같은 부모들이 안 나오기를 바랐습니다. 이 사고 소식을 접하고 진짜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왜 이런 책임은 부모들이 져야 합니까. 저도 아들이 기계에 눌리는 그 동영상 모습만 계속 머리에 남아 있는데 준서 부모님은 오죽하겠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이런 사고가 없게끔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자는 “이 자리 때문에 제주도에서 올라오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3시 반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2017년 11월, 제주시 구좌읍에서 열여덟 살 고 이민호 학생이 현장실습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목과 몸통이 제품 적제기 프레스에 눌렸고, 열흘 뒤 사망했다. 다시 2020년 4월, 경북 ㅅ고등학교 고 이준서 학생은 지방기능경기대회 메카트로닉스(2인 1조) 직종 출전을 준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5월 8일인 오늘이 사망 한 달째다.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권정오)은 경북 ㅅ고등학교 기능반 고 이준서 학생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직업교육 실태를 비판했다. 전교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고인은 두 차례에 걸쳐 기능반을 그만두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계속해서 대회 준비 훈련으로 내몰렸고, 코로나19 사태로 등교 개학이 네 차례나 연기된 상황에서도 기능반 학생들은 합숙 훈련을 해야 했다"며 :기능대회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메달 따는 기계로 내몰고 학생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대표적인 교육 적폐"라고 지적했다.

또한 교육부와 정부에 ▲직업계고 학생들의 전인적 배움 보장과 직업교육 정상화 ▲기능반 학생들의 건강권·학습권 보장 ▲올해 기능대회 즉각 중단 및 비교육적 기능대회 전면대검토를 요구했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매년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준석 학생의 죽음을 끝으로 다시는 이런 죽음이 교육 안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수사당국에 엄정한 수사와 관련자의 처벌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진광우 전교조 경북지부 정책실장은 당시 상황을 공유했다. 그는 “학교 해당 조합원 쌤에게 내용을 확인하니까 쌤들도 학교에서는 학생들하고 선생님들이 충격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면서도 “교육청은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고 이준서 학생은 3월 2일, 3월 29일 두 차례 합숙 훈련장을 이탈했다. 당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학이 연기됐음에도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3학년 16명은 학교에서 기숙 훈련을 해야 했다. 고 이준서 학생의 아버지는 학교의 강압적 기능경기대회 준비를 비판하며 경찰에게 사고 원인 조사를 요청했다.

학부모 단체들도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나명주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장은 “학부모들은 소중한 내 아이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안전하게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한다고 믿고 있기에 절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며 “어떤 경우든 교육 현장은 소외와 불평등을 야기해서는 안 되고, 인권침해는 더더욱 안 된다”고 분개했다. 그는 이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한 명도 잃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은경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대표도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자리를 수 없이 많이 섰고, 또 다시 늘 했던 대로 슬퍼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 되어선 안 된다”라며 “비통하고 부끄러운 심정으로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 사회 진정한 반성을 기대해 본다”고 했다.

설문조사 결과 현장 교사 91.7%, 현재 기능대회 “문제 있다”

국내기능경기대회는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폴리메카닉스 ▲자동차정비 ▲산업용로봇 ▲웹디자인 및 개발 ▲한복 ▲화훼장식 등 다양한 경기 직종으로 구성된다. 지방기능경기대회는 매년 4월에, 전국기능경기대회는 9월에 개최된다.

중학생부터 경기에 참가가 가능하기에, 직업계고 학생들이 참여자의 대다수다.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에 따르면, 2019년 열린 전국기능대회 전체 참가자 1,847명 중 1,387명이 직업계고 학생들이었다. 2018년 6월 학생들은 ‘고등학교 기능반 수업도 안 듣고 밤 10시까지 작업’이라는 국민청원을 내고 “수업이 너무 듣고 싶다”고 했다.

민주노총 전교조는 전국 직업계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기능경기대회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진행된 조사는 조합원 314명이 참여했다. 전교조 경북지부에 고 이준서 학생의 사안이 접수된 이후다.

문항은 “기능경기대회 제도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를 묻고 1. 현재 상태 유지 2. 교육적 활동으로 개선 3. 비교육적 활동임으로 폐지 중 하나를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설문 결과 91.7%(288명)의 직업계고 전교조 조합원들은 기능경기대회 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할 것을 원했다(개선 48.1%, 폐지 43.6%). 현재의 상태 유지를 고른 조합원은 8.3%(26명)였다. 교사들이 지적한 기능대회의 문제점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부 기능반 학생에 집중된 기능훈련은 일반 학생이 교육여건을 열악하게 만들게 되고 전체적으로 직업교육 성취결과를 낮게 만드는 원인임.”

“직업계고 대부분의 기능반 학생들이 수업을 하루 종일 듣지 않고 기능대회 준비를 하거나 오후부터 시작해서 저녁 늦게까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과정 이수가 어렵습니다. 학생들이 준비과정에서 부담을 많이 느끼고 지치기도 합니다.”

“교사들도 같이 남아 지도를 하기 때문에 퇴근 후의 삶이 거의 없고 방학도 거의 없습니다.”

“학생과 교사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심사위원 로비, 과제선정 로비 등으로 금품이 판을 치고 학교에서는 그 비용을 만들기 위해 꼼수를 쓰고, 그 돈을 심사위원 등 관련자들이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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