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아파트 입주민 갑질에 눈물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아파트 입주민 갑질에 눈물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5.14 16:00
  • 수정 2020.05.14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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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럼 군림하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폭언·모욕·사적지시 일삼고 해고까지
‘경비원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 엄벌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35만 돌파
직장갑질119,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책임져야”

“아파트에서 감단직(2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감시단속적 노동자)으로 24시간 맞교대하는 기능직입니다. 입주민의 민원 억지와 협박이 야간시간, 불특정시간에 민원 응대 업무를 지속하면서 정신적 고통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아래는 통화 내용입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상담합니다.”

"여기 관리사무소 진짜 이상하네. 말 같은 소리를 하셔야지. 왜 맨날 얘기하면 안 된다고만 하시는 거예요. 알지도 못하면서. 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어요. 당장 구해달라고 했어요. 아니, 저기요. 아저씨 왜 말귀를 못 알아들으세요. 왜 이렇게 답답하세요. 입주민 카페에 올릴 거예요. 말도 안 듣고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왜 입주민 얘기를 안 들어주는 거야. 사고 나서 그렇다는데. 내가 가서 관리소장이 됐든 컴플레인 제대로 할 거예요. 관리사무소는 본인 말만 다 하는 거예요? 훈계받으라고 하는 거예요? 통화 녹음됐다고 하니까 누구 잘못인지 시시비비 가리자고요. 저 가만 못 있으니까. 아셨죠?"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기능직으로 일하는 A씨가 직장갑질119에 제보한 사연에는 아파트 주민이 A씨에게 퍼부은 폭언이 함께 담겼다. 주민의 악성 민원 전화는 11분이나 계속됐다. A씨는 “민원으로 정신적 고통이 한계치에 도달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강북 우이동 모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 촉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당 경비노동자의 죽음이 담긴 ‘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14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35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했다. 청원 작성자는 “문재인 대통령님, 부디 약자가 강자에게 협박과 폭행을 당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가 없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14일 직장갑질119는 “아파트에서 주민들을 돕는 경비원, 미화원, 가전기사들이 주민들의 갑질에 울고 있다”며 아파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 사례를 발표하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아파트 주민·소장 갑질 사례>

“주민이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2020.4)
어머니가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고 계세요.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어머니를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 주민분이 어머니께 내일부터 당장 그만두라고 사람 다시 찾을 거라고 소리를 빽빽 질렀다고 해요. 그리고 일부러 모래를 쏟고 음식물 쓰레기를 아파트 내에 뿌렸다고 해요. 모래나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경우는 사진으로 남겨놨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갑질을 받고 억지로 그만둘 경우에 돈을 더 받거나 보상이 있나요? 증거물이 유효한지 앞으로 나오는 증거물을 신고하려면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입주자대표회장이 왕처럼 군림해요”(2020.1)
아파트입주자 대표회장이 20년 동안 관리사무실에 책상까지 갖다 놓고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며 장기집권 중입니다ᆢ. 아침 직원회의 때마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자기가 왕이다, 자기가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내쫓을 수 있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실제 입사일과 4대 보험 취득신고일이 다른 문제를 제기하자 “XX 고소할 테면 하고 나가라”면서 직원들 앞에서 계속 소리를 쳤습니다. 결국 저희는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관리소장이 세차를 시켜요” (2019.11)
시설기사 파견계약직 형태 직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관리소장이 개인적인 업무, 자차 청소 및 기스 제거 광내기 등을 시키고, 명절에 벌초하고 온 후 자신의 예초기 청소도 시킵니다. 현금이 없다며 은행에서 돈을 출납해오라는 업무도 하게 하고요.
또, 자신과 친분 있는 사람들의 부탁을 저희가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전혀 상관없는 타 회사에 대해 인터넷 통신선을 깔라고 지시하고, 남의 물건을 챙겨서 자기 사무실 및 자기 차로 옮기라고 지시 등등 사실 너무 많아서 말을 못 합니다. 회식을 강요하는데, 회식비를 직원들에게 부당하게 합니다. 나이가 많은 경비들에게 연금 받으니까 회식비 내라고 합니다.

“미화원이라고 함부로 대해요” (2019.12.)
신설아파트 미화원으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힘든 구역에 배치하고, 업무지시도 자기 내키는 대로 시킵니다. 연차휴가도 편하게 못쓰게 합니다. 퇴사시키고 싶은 사람을 찍어 싸움을 걸고, 사무실에서는 반장 말만 무조건 들어주며 다른 사람의 말을 묵인하기도 합니다. 미화원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무조건 밀어붙여서 업무를 시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보고 하대를 하고, 비인격적으로 대우를 해오고 있습니다.

“LH 임대아파트는 갑질 무풍지대에요”(2019.7)
LH 임대아파트 임차인대표들은 의결이 아닌 협의기구임에도, 임대주택표준관리 규약에 그들이 협의해야 할 협의 사항이 명시되었음에도, 협의 사항을 무시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경비원을 상대로는 경비업체에서 지정하지 않은 정년을 임차인대표회의에서 지정하고, 본인들이 지정한 정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정년이 넘었다며 부당해고는 물론, “경비원 채용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또는 “내가 데리고 왔어도 일 못 하면 잘라라.” “경비원 휴게시간을 조정하라.”는 등 직원 인사 전반에 개입하며 마치 내 직원 다루듯 하고 있습니다.
청소원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다.” “일을 못 한다.” 등 갖은 핑계로 본인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수시 교체를 하고 있습니다.
관리소장 교체를 수시로 관리회사에 요구하고 관리회사에 직접 찾아가 교체에 응하지 않으면, LH에 찾아가겠다는 등 협박을 일삼고, 관리소장에게는 “소장업무는 경리에게 맡기고 너는 나가서 담배꽁초나 줍고, 풀이나 뽑아라.”라며 직원들에게도 부당하게 간섭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나는 죽어서야 여기서 나간다. 너희 직원들은 여기 아니어도 갈 데가 많지 않냐? 그러니 네가 나가라.”라고 소리칩니다.

아파트 내 입주민·소장 ‘갑질’ 해결 방법은?

직장갑질119는 “경비원들, 미화원들은 고령자가 많아 갑질을 당해도 인터넷으로 신고하기도 쉽지 않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도 매우 적다”며 “서울 강북구 우이동 모 아파트 경비원의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아파트 입주민 갑질, 소장 갑질로부터 고통받지 않도록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아파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방법이 있는지 법적 검토를 거쳤다.

먼저,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노동자나 미화노동자에게 폭언을 하면 형법상 모욕죄로, 폭행에 대해서는 형법상 폭행죄, 상해죄 등으로 고소할 수 있다.

현행법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관리사무소장의 업무에 대한 부당 간섭 배제 등) 제6항에는 “입주자 등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 주체 등은 경비원 등 근로자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위반 시 처벌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에는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피해를 당했을 때 사업주에게 업무중단 및 전환조치, 치료 및 법률절차 지원 등을 하게 되어 있지만, 갑질 가해자인 입주민에 대한 조치를 담고 있지 않다.

직장갑질119는 “이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갑의 위치에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고,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의2를 신설하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같은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소속 변호사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고용하든지, 위탁관리가 불가피하여 직접고용이 어렵다면 용역업체와 공동으로 사용자책임을 지도록 공동주택관리법에 명시해야 한다”며 “사용자로 명시하면 감정노동자 보호법에서도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로서 같이 책임을 지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