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해고된다면 대한민국은 노동자에게 비전이 없는 거죠”
“저희가 해고된다면 대한민국은 노동자에게 비전이 없는 거죠”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5.14 16:38
  • 수정 2020.05.14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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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협력사 성암산업 6월 30일 해고예고 …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

[인터뷰] 박옥경 금속노련 성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박옥경 금속노련 성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두 달 만에 재회한 박옥경 성암산업노조 위원장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특히 까까머리가 돼 있었다. 박옥경 위원장은 "매주 월, 수, 금에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때마다 삭발식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처음 박옥경 위원장을 만난 건 지난 3월 13일 포스코 본사 앞이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노조 조끼’를 입었다고 성암산업노조 조합원의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성암산업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협력사다.

그러나 두 달이라는 시간에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박옥경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성암산업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알리기 위해 청와대 앞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오기 전 박옥경 위원장은 포스코, 광양시청, 고용노동부 여수지청, 고용노동부 광주지청, 세종시 고용노동부, 지방언론사까지 모두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포스코에서 노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담담한 어조로 털어놨다. 그에게 조합원의 믿음은 어려운 환경을 견뎌내게 하는 힘이었다.

*인터뷰는 12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진행됐다.

처음에 알아 보지 못했다. 머리가 짧아졌다.

지금 성암산업노조는 매주 월, 수, 금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그 때마다 삭발식을 한다. 14일에는 상암동 MBC문화방송국 앞에서도 집회한다. 여수MBC가 성암산업의 문제를 보도하기는 하는데 ‘팩트’를 말하지는 않고, 단지 성암산업 노사문제로만 치부하더라. 물론 성암산업 노사문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출입을 막는 바람에 사태가 심각해졌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출입통제의 이유를 ‘조업 지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조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포스코 자신이다.

성암산업의 요구는 ‘분사없는 매각’이다. 성암산업이 기존에 보유한 작업권 5개를 쪼개지 말고 통째로 다른 하청업체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3월 작업권 2개는 쪼개져 다른 하청업체에게 돌아갔다.

2017년에도 같은 이슈가 있었다. 당시에도 작업권을 포스코에 반납했다. 포스코는 처음에 분사(작업권 분할)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서 당시 천막농성 등 항의를 통해 2018년 분사 없는 매각을 하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 당시 통으로 매각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신준수 소모그룹(성암산업 소유사) 회장이나 유재각 성암산업 대표는 성암산업을 자기들 지인에게 매각하려 했다. 당시 매각에 관심을 보인 회사가 많았는데 그러다가 매각에 실패한 것이다.

지금 유재각 성암산업 대표는 따로따로 분리해서 팔겠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포스코가 2018년 성암산업노조와 맺은 약속에 따라 분리하지 않고 통째로 매각하라고 하면 된다. 명분도 있다. 조업 안정을 위해서 빨리 사서 빨리 안정화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끝나는 문제다. 포스코가 작업권 분리 매각을 받아주니까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5월 12일 청와대 앞에서 박옥경 성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성명서를 읽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포스코가 성암산업노조 조합원의 출입을 막고, 성암산업의 ‘분리 매각’을 허용해주는 이유를 ‘노조탄압’이라고 보는 것인가?

포스코는 공식적으로 하청업체 노사관계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포스코는 성암산업노조 조합원의 출입을 막는다. 그것 자체가 하청업체 노사관계 개입이다. 우리 조합원들도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일하면서도 투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에서 조합원의 출입을 막는 이유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다. 사실 웃긴 것이 보안규정에 ‘조끼’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없다. 포스코 보안기준에는 반입금지 물품으로 현수막은 있지만 조끼는 없다. 그런데 협력업체들은 조끼가 위반이라는 내용으로 공문을 보낸다. 협력업체는 ‘포스코에서 입지말라고 했다'는데 근거가 없다.

물론 우리가 서비스업이나 항공업 노동자라면 조끼 착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끼 입었다고 조업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조끼 입는 게 뭐가 보안규정에 위반되는가. 그런데 고용노동부도 쩔쩔 맨다. 고용노동부가 정확하게 지침을 내려서 출입통제를 못하게 해야 하는데 답답하다.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더 있는가

저희가 고용노동부 광주지청에도 갔다오고 세종시 고용노동부 본부 앞에도 갔다왔다. 가서 이렇게 물어 봤다. ‘우리가 고발을 해야지만 수사를 하는 것이냐, 아니면 근로감독관이 인지하면 수사가 가능하냐.’ 대답은 인지로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인지해서 수사 한 게 도대체 뭐냐.’ 아무 것도 없다. 고발 건도 몇 달째 걸리고 있다. 말 그대로 지지부진 하다는 것이다.

현재 조합원 출입을 포스코가 막는 바람에 다른 회사 직원들이 성암산업에 와서 연장근무를 많이 한다. 타 회사에서 4조3교대를 3조3교대로 변형해 운영하고 한 개 조를 성암산업에 투입하는 식이다. 연장근무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위반 사항을 조사하고 제재를 가하면 우리 조합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걸 놔두고 있다.

이렇게 고용노동부가 손을 놓은 사이 현장에서는 그대로 제재를 당한다. 현재 위원장과 사무장의 월급도 타임오프 적용문제로 안 나오고 있다. 그렇게 못 견뎌서 조합을 탈퇴하고 현장에 들어간 조합원이 50여 명이다. 고용노동부가 몇 달 걸려서 나중에 제재를 가하면 뭐하나. 조합이 해산돼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 법에서 이긴들 아무 의미 없는 거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포스코와 협력사의 관계는 어떤가?

협력사들은 포스코가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한다. 성암산업은 경영진이 따로 있지만 대부분 협력사는 포스코 OB출신인 경우가 많다. 포스코 전 임원이 협력사 사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협력사 사장님들은 기본적으로 ‘포스코맨’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또한 협력사 지분 구조도 한 요인이다. 옛날에 협력사 사장의 지분이 50% 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포스코에서 통제가 안 되다보니 지분을 20%로 만들었다. 그리고 협력사끼리 협력사의 지분을 20%씩 들고 있게 만들었다. 45개 협력사가 지분구조로 엮여 있다. 그러니 포스코에 대응할 수 있는 협력사 사장이 없는 거다. 협력사 사장이 지분을 20% 들고 있다고 해도 나머지 80%로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 그래서 포스코가 임기 끝났다며 협력사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면 군말 없이 나가야 한다.

더욱이 1년에 한 번씩 갱신계약에 임금과 단가를 계산할 때 만약 한 협력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조합원이 증가한 경우 단가를 확 쳐버린다. 단가가 떨어지면 협력사에서도 많이 힘들어진다. 더욱이 단가가 줄면 임금협상이 어려워져 노동조합도 어렵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5월 8일 어버이날에 성암산업이 6월 30일자로 해고예고 통지서를 보냈다. 당시 심정은 어땠나?

예상을 하긴 했었다. 그렇지만 조합원들한테 많이 미안했다. 그러나 상실감, 박탈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부터 진짜 싸움이다’,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중압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위원장님이 안 좋은 일로 돌아가셨다. 그 때 위원장님은 혼자 조합의 일을 다 안고 가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나갈 때 거울을 보면서 ‘우리가 정당하고 명분이 있다’고 되새긴다.

사실 성암산업노동조합이 32년 됐다고 하는데, 기수를 따지면 제가 19대 위원장이다. 정상적으로 임기 3년을 채웠다면 10대 위원장인 게 맞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회유에 못 이겨서 넘어가고, 조합원들의 탄핵을 받아서 내려갔겠나. 참 많이 봐왔다. 그렇게는 되지 말자, 신뢰와 믿음을 지키자,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어떤 것을 결정하기 보다는 미래의 후배들이 도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고 생각한다.

6월 30일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진짜 폐업이 된다면 진짜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와 포스코에도 말한 사항이다. 전면전인 거다. 다만 최근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얻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도 투쟁을 했다. 그때는 진짜 암울했다. 그때보다 지금이 사회적 여건이 훨씬 더 좋다. 저희들이 6월 30일에 해고가 되고 성암산업이 폐업한다면, 대한민국은 비전이 없는 거라고 본다. 딴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노동자들에게는 비전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합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암산업노동조합은 믿음과 신뢰를 자주 이야기했다. 그 말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질 거다. 지금까지 따라온 조합원들을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다. 2017년처럼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

사실 저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일 뿐이고,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조합원들이 뒤에 있고 따라주기 때문에 강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집회하고 돌아가는 조합원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분들에게 실망감이나 허탈감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저와 조합을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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