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즐겁게 ‘노는’ 광대이고 싶다
무대에서 즐겁게 ‘노는’ 광대이고 싶다
  • 라인정 기자
  • 승인 2008.10.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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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꿈, 행복한 꿈, 벅찬 꿈…그는 오늘도 꿈꾼다
포기를 모르는 배우 길별은

“저보고 장애를 극복했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제 언어장애도 보행장애도 없어졌겠죠. 근데 저는 장애를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이지, ‘극복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2008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의 초청공연인 댄스뮤지컬 ‘낙원을 꿈꾸다’의 주인공으로 열연한 길별은 씨. 그는 뇌병변 장애를 안고도 열정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공연을 앞둔 그에게선 긴장한 기색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어서 빨리 무대에 올라 즐기고 싶단 마음뿐이다.

독립영화 촬영과 개인트레이닝, 공연준비로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찾아가 보았다. 지독한 연습으로 땀범벅이 되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배우 길별은은 참 유쾌한 사람이었다.

 

 

불가능이라는 성(城)을 정복하다

“안녕하세요. 길별은입니다. 이렇게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기획사 복도 건너편에서 다가 온 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서글서글’하다.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계기부터 물으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고등학생 때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고3 수험생활 1년 동안 그가 본 영화는 무려 250여 편. 그렇게 그는 영화에 ‘중독’돼버렸다.

“예전 저희 동네에 500원만 내면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는 극장들이 있었어요. 종일 영화만 본 날도 많았죠. 그러다 영웅본색을 보게 된 겁니다. 주윤발처럼 저도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선 ‘아, 이게 내 길이다. 난 이 길밖에 없다’고 결심해 버린 거죠.”

결심은 쉬웠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장애를 갖고 있기에, 더구나 배우를 꿈꾸기에 수없이 잦은 상처의 날이 계속됐다. 장애를 이유로 20대 초반 첫사랑과 이별했을 때나, 다니던 대학의 교수로부터 배우가 아닌 다른 길을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는 ‘연기’라는 끈을 놓지 않았다.

대신 하루하루의 감정들을 다스리며 언젠가 무대 위에서 자신을 맘껏 분출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그는 차분히, 그리고 꾸준히 배우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배우는 사실 그도 불가능하다 여긴 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불가능의 ‘불’을 떼어 내 활활 타는 열정으로 뒤바꿔버렸다. 2004년, 뮤지컬 ‘크리스마스캐럴’에 참여할 장애인 객원배우 오디션 공고를 보자마자 달려가, 단번에 ‘말리의 유령’ 배역을 따낸 것이다.

“사실 그때 1인 2역이었어요. 말리의 유령도 했지만, 마을 사람 15인가 16도 했었죠. 하하. 보통 배우들이 한번 서기도 어렵다는 예술의 전당에서 정식 데뷔를 했어요. 운이 참 좋았죠.”

행운은 꾸준히 준비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결실의 기회다. 무대에 서기까지의 그의 노력은, 마침내 서게 된 후에 오히려 더욱 치열해졌다. 가장 큰 문제였던 발음 교정도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하는 ‘뚝심’으로 조금씩 나아져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렵죠. 배우가 몸도 잘 움직여야 하고, 발음도 정말 중요하고, 발성도 익혀야 하는데 전 그 세 가지가 다 안됐으니까요. 카메라 울렁증도 있었고요.”

지금의 활기로는 도저히 그런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끈질긴 노력으로 가속도가 붙은 그의 자신감은 한 해 한 해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며 무대 위에 자신의 이름처럼 ‘별’을 쏘아 올렸다.

 

 

무대 위, 또 다른 ‘나’를 꺼내다

배우 길별은의 필모그래피 

_1975년 11월 11일생

_2004년 뮤지컬 ‘크리스마스캐럴’로 정식데뷔

[출연작품]

영화

2007 기다립니다 / 2007 공익광고 소외된 사람들 2006 아이엠독 (기독교영화제 개막작)            

2006 위험했지만 뜻깊은 여행 / 2005 지하철

2005 작심삼일 / 2005 12월 1991 비디오에 갇힌 아이들 (시나리오 겸 연기감독)

뮤지컬

2008 낙원을 꿈꾸다 / 2007 쑈룸

2006 크리스마스캐럴

2006 우리마을 / 2006 통장아 사랑해

2005 코카시아의 백묵원 2004 크리스마스캐럴

연극

2008 날개 없는 천사들 / 2007 한여름밤의 꿈

2005 나눔연극제 ‘초대받지 않는 방문자’

1992 수화연극 ‘김동철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외 다수

퍼포먼스

2005 극단 어우름 창단공연 ‘더불어’

2005 퍼포먼스 ‘마음에서 몸짓으로’외 다수

2005 퓨전타악팀 카터 퍼포먼스

“예전에 ‘우리 읍네’를 뮤지컬화 한 ‘우리 동네’란 공연 무대에 올랐어요. 한 관객이 제가 대사를 하고 움직이니까 크게 소리 내 웃더라고요. 기분 나빴죠. 공연 끝나고 배우실에 앉아서 사람들하고 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가 절 찾아왔대요. 나가보니 아까 웃었던 그 사람이에요. 저에게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일반인이 장애인 연기를 진짜 잘해서 그게 재밌어서 웃었는데 정말 장애인인 줄은 팜플렛 보고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공연할 때마다 그런 분들이 꼭 계세요,라며 어깨를 으쓱해 버리는 길별은 씨. ‘우리 동네’ 공연 땐 재치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연기 도중 무대 위에서 걷다가 휘청해 앞으로 엎어질 뻔 했죠. 슬픈 장면이었기에 자칫하면 극의 흐름이 끊길 수 있었어요. 그 때 제가 순간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아, 왜 여기 돌멩이가 있냐. 에휴’라고 말하곤, 돌을 주워 무대 뒤로 던지고 자연스레 퇴장했어요. 하하.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죠.”

무대 위의 그는 자신을 맘껏 ‘방목’한다. 그가 리허설 때 하지 않은 애드립을 무대 위에서 펼칠 때마다 상대 배우들은 당황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론 5명을 죽인 거지 역할을 꼽았다. 한겨울에 얇은 옷만 입고 촬영했다는 그는 자신이 구걸하다 행인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고, 그 사건의 목격자들이 연쇄적으로 생겨나 결국 모두를 죽이게 된다는 내용이라 설명했다.

“난 거지고, 배운 게 없고, 밥을 먹기 위해서 돈을 구걸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모멸감은 참을 수 없다. 수없이 나 자신과 말을 했죠. 근데 그러니까 정말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눈에 살기도 띄고요.”

살기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선한’ 눈빛에 순간적으로 날카로운 날이 선다. 앞으론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꼭 한번 아주 잔인한 ‘악역’을 맡고 싶다는 소망도 슬쩍 내비친다. 악역은 연기력을 인정받은 사람만이 맡을 수 있고, 또 멋지게 소화해 낼 자신도 있기에 연기자로서 욕심이 난다면서.

또 다신 꿈을 꾼다, ‘칸’을 향하여

92년부터 쌓아온 연기 경력은 올해로 벌써 17년 째. ‘중견배우’라 불릴 만도 하지만, 길별은 씨는 이런 표현에 펄쩍 뛴다.

“전 저를 소개할 때도 배우라고 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배우는 100, 200 정도에 가 있는 존재들이고요. 저 같은 경우는 이제 1이나 될까요? 그래도 아직은 1이지만 언젠가 100, 200이 되고 싶은, 그런 사람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길별은’을 입력하면, 유수의 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검색되는 것 역시도 여전히 그에겐 신기하다. 아직까지 정말 ‘대박’이라 생각하는 명장면도 없고, 자신의 연기에 주저 없이 ‘-20’이란 야박한 점수를 매기는 길별은 씨.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를 호평할 때도 끊임없이 내부의 자신을 채찍질한다.

“지도하시는 분이나 주위 분들이 ‘연기 참 잘하세요’라고 할 때마다 매번 자문합니다. ‘이렇게 연기하는 게 맞는 걸까? 어쩌면 내가 장애인이라서 그 기준에 못 미쳤는데도 좋게 얘기하는 게 아닐까’라고요. 제 눈엔 항상 한없이 부족해 보이니까요.”

자신에겐 너무도 엄격하고 겸손한 길별은 씨. 그에게는 불리고 싶은 호칭이 하나 있다.

“전 광대라는 이름이 너무 맘에 들어요. 자유롭죠. 널찍한 마당에서 관객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져 한바탕 신나게 노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려요. 광대 길별은, 멋지지 않나요?”

‘너, 참 무대에서 잘 논다’란 말이 최고의 찬사라는 그는 그저 무대에서 맘껏 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달콤한 ‘꿈’같다고 말한다. 대선배 김인문 씨의 연기지도도 그 중 믿을 수 없이 벅찬 ‘꿈’ 중 하나다.

 “김인문 선생님이 하루는 ‘별은아, 너 전원주 알지?’ 하셔서, ‘예. 선생님’ 했더니 ‘그 사람은 자기 나이 쉰다섯 살에 인기 얻었다’ 이 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건 저도 한 길만 파면 전원주 선생님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뜻이었죠.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만난 선후배들, 무대에서의 공연, 언론과의 인터뷰. 이 모든 게 실감이 안 나는 좋은 꿈 같다고 되뇌인다. 마치 이번 공연명처럼 낙원을 꿈꾸고 있다는 길별은 씨.

“전에는 악몽도 있었어요. 하지만 악몽도 꿈이죠. 좋은 꿈도 꿈이고. 나중에 제가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써졌으면 좋겠어요. ‘좋은 꿈을 꾸다 간 사람, 길별은’이라고요.”

그렇다면, 앞으로 그가 꾸게 될 행복한 꿈들은 또 무엇일까? 그는 단번에 ‘칸에 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외국 배우 중엔 다운증후군을 딛고 ‘제8요일’에서 열연한 파스켈 뒤켄이 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직은 말도 안 되는 꿈이라 웃으면서도 “좋은 감독님과 작품을 만나면 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며 조심스레 묻는 그의 눈동자에 열정이 그렁하다.

2시간 가까이 시종일관 ‘배우 포스’를 내뿜은 길별은 씨에게 과연 ‘연기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니, 자신이 ‘감히’ 말씀은 못 드린다며 이내 손 사레를 친다. 하지만 곧 진지한 눈빛으로 덧붙인다.

“저 말고 다른 이들의 인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빈부 차이, 직업 별로 사람들이 앉는 자세도 다르다는 거 아세요?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을 관찰하고 알아가는 것이 정말 재밌습니다.”

어떤 사람이건 한 분야의 달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길별은 씨는 아직 다른 사람을 울리는 것도, 웃기는 것도 자신에게 까마득히 먼 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연기의 달인이 되고픈 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기는 말이 있다. 오뚝이처럼 쉼 없이 자신을 일으키고, ‘배우’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한 발짝씩 앞으로 나서게 하는 그의 주문이다.

“자, 포기하지 말자! 저 모퉁이만 돌면 희망이라는 녀석이 보일지 모른다. 불가능이란 결국 포기하는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