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노동] “들짐승 취급받는 노인일터는 무법천지”
[책에서 만난 노동] “들짐승 취급받는 노인일터는 무법천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5.17 00:00
  • 수정 2020.05.18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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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라는 이유로 감수하는 학대
‘임계장’은 주변 어디에나 있어

얼마 전, 어느 '경비노동자의 죽음'에 조정진 씨는 "엉엉" 울어버렸다. "살기 위해 노동한 경비노동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그도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다 2016년 60세 나이로 퇴직한 뒤 5년차 시급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버스회사 배차계장, 아파트 경비원, 고층빌딩 경비원 겸 주차관리원, ‘터미널고속’의 보안요원으로 차례로 일했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이름은 첫 일터에서 얻었다.

그는 네 일터에서 모두 해고됐다. 버스에 머리를 부딪혀 다쳐서, 화단에 물 줄 때 양동이로 퍼부어 아파트 자치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빌딩 본부장 사모님의 차량이 주정차 위반을 해 호루라기를 불어서, 마지막엔 뜨거운 여름 매연이 자욱한 버스터미널에서 쓰러져 해고당했다. 이후 7개월간 투병생활을 했다. 장기간 항생제를 맞아 콩팥이 손상돼 신장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상했다.

노인 일터는 사람의 일터라 말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노인노동자들이 “아프면 바로 잘리고, 들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자존이 무너지는 상황은 수시로 찾아왔다. 처음엔 근로감독관에게도 이야기해봤다. 그는 신고 내용이 일상적인 일이라 행정력이 미치기 어렵고, 자신이 개입하면 당신은 해고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알려줬다. 임계장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틈틈이 메모했다. 그리고 병상에 누웠을 때 "비장한 마음"으로 밤마다 몰래 노트북 자판을 쳤다. 그렇게 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가 세상에 나왔다.

지금 그는 투병 뒤 주상복합 빌딩에서 경비원 겸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아직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지금 형편에서는 치료할 시간도, 경제적 여건도 안 돼서”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지 않아 큰 다행”이라고 말하는 임계장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책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 씨 ⓒ 조정진
책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 씨 ⓒ 조정진

- 38년 일한 공기업 퇴직 후, 왜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나요?
직장에 다니는 동안 나름대로 노후대비를 했어요. 하지만 삶이 늘 그렇듯 퇴직 무렵 변수가 많이 생겼습니다. 당시 막내아들이 대학 3학년이었는데요. 요즘 문과대학에서 정규직 취업률은 10%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막내는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서 3년 과정 전문대학원에 갔습니다.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살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양기간이 늘어나면서 일을 계속하는 것밖에 방도가 없었습니다. 제 시급노동 동료들 중에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자녀도 많습니다. 경쟁률이 엄청 치열해서 지역에서는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을 보내야 합니다. 합격을 기다리며 기약 없는 세월을 뒷바라지하려면 고령의 부모들, 정말 피눈물 납니다. 자식들을 정규직으로 살게 하고 싶다면, 부양기간이 5년에서 10년까지 늘어납니다. 이것이 예상에 없던 길에 들어서게 된 이유예요. 자식 가진 부모는 다 닥칠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노인노동자의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사정으로 퇴직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겁니다. 

- 그럼 어쩌다 시급노동에 뛰어드셨어요?
퇴직 후 일자리를 알아보니 나이 든 퇴직자를 원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젊은이들 일자리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노인들은 이른바 ‘양질의 일자리’는 고사하고 단순노무직도 쉽지 않았죠. 그래도 저는 사무직 일자리를 한 번 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젊은 직원들이 저를 “아버님, 아버님” “어르신, 어르신”이라고 부르면서 동료로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상사는 일을 시키기 어려워하고요. 견뎌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나이 든 퇴직자에게 경력이나 자격증은 녹슨 훈장에 지나지 않더군요. 대부분 노인에게 주어지는 일이 단순노무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제가 사는 이 도시만 해도 생활정보지에 하루 2만개의 일자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대부분 더럽고 힘들어 청년들은 피하고, 노인에게 몫이 돌아오는 그런 일들입니다.

- 퇴직 이후 ‘고령층, 비정규직, 시급노동자’로 살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일한 곳은 대부분 차마 사람의 일터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일터에는 고령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아주 심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정신적·육체적 학대가 일상적으로 나왔어요. 특히 대기업인 ‘터미널고속’에서 많이 겪었는데요. 고령노동자들이 질병에 걸리면 ‘노환’이라고 치부했습니다. 병에 걸리면 무조건 노환이니 일을 그만두고 알아서 치료하라는 거죠. 또, 한겨울에 춥다고 했더니 “노인도 추위를 탑니까?” 되묻더군요.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요구했더니 이런 답을 들었습니다. “다 늙은 노인이 얼마나 더 살고 싶어 그러냐?” 이 세 마디에 노인노동의 환경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용주들이 이런 말을 쉽게 하는 데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노인이니까. 늙었으니까.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믿을 수 없는 학대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인노동자들이 들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처음 '메모'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정규직으로 오래 일해봐서 비정규직 일터에 오니 바로 차별을 느낄 수 있었어요. 동료들은 노인 시급일터는 다 그런 거라고 체념하고 사는데, 물론 지금 저도 그렇고요. 처음엔 눈에 보이는 불법을 도저히 넘길 수 없겠더라고요. 근로감독관한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제가 신고한 내용은 일상적인 일이라, 행정력이 미치기 어렵고 오히려 근로감독관이 나가면 사용자가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경비노동자를 해고시킬 거라는 거예요. 그때 절망했어요. 시급일터는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구나, 그걸 안 거죠. 그래도 가슴 속에 울분이나 분노는 쌓여가는데, 얘기할 데가 없으니 수첩에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 메모는 어떻게 '책'이 되었습니까? 
메모하면서 책 낼 생각은 안 했어요. 제 네 번째 직장이 '터미널 고속'이라는 대기업이었거든요. 거기서 보안원으로 일했는데 제가 여름에 쓰러지니까 입원 다음 날 바로 해고통지를 하더라고요. 제가 의료보험, 건강보험 등이 관계가 있어서 질병휴가 좀 달라고 사정했지만 참 잔인하더라고요. 대체 노동자가 없으니 아프면 그만둬야 했죠. 제가 그때 척추를 뚫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통증이 심해서 마약성 진통제도 계속 처방받았는데 '계속 살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수첩을 들여다보니 비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이겠더라고요. 그래서 병상에서 낮에는 수첩을 살펴보고 저녁에 간호사 선생님 몰래 침대를 세우고, 긴 수건으로 상체를 고정해둔 채로 노트북 자판을 막 두들겼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통증을 이기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때 조정진 씨가 쉬던 지하 휴게실 ⓒ 조정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때 조정진 씨가 쉬던 지하 휴게실 ⓒ 조정진

- 노인노동자들이 ‘늙은 소’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늙은 소가 굴레를 쓰고 일하는 모습을 본 적 있으십니까? 아마도 ‘소니까 힘들게 일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생각들 하실 거예요. 마찬가지로 노인이나 비정규직이 힘든 노동을 하고 있어도 그야 노인이고 비정규직이니까 당연하다고 보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인이나 비정규직은 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 어떠한 노동도 귀천을 이유로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 헌법정신이고요. 사람이 하는 노동이라면 모두 신성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 험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될 수 있어요. 고령자 노동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나의 일입니다. 고령노동 문제에 당장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면, 한 발짝 나아가는 개선의 방안이라도 찾는 데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 노인 일터에서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감시·단속적, 줄여서 ‘감단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예외 규정을 없애는 것입니다. 감단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습니다. 감시가 주 업무로, 놀면서 쉬엄쉬엄 노동을 한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경비원은 간헐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오르자 근무인력을 최소로 감축했어요. 제가 근무했던 아파트는 제 담당구역에서 7명이던 인원을 1명으로 줄였어요.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경비원을 가리켜, 쉬엄쉬엄 일하는, 그러니까 ‘간헐적으로 일하는’ 감단노동자라고 계속 그렇게 말하더군요. 고용노동부가 이것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을 모르기야 하겠어요?

- 노인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바라는 정치의 역할은요?
정치인들은 노인에 대해 고약한 편견이 있어요. 보수 정당은 노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어차피 표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보 정당은 노인들 표를 다 보수 표라고 치부해서인지 노인노동 문제에 관심을 덜 갖는 것으로 보이고요. 한 번은 아파트 경비원 간담회가 열려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요. 어느 정치인이 격려사에서 “노인이 일하면 건강에 좋고 거기에 용돈까지 벌어서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용돈 벌려고 일터로 나오는 노인은 요즘 거의 없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오죠. 지난 총선 때 어느 국회의원 후보자는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고도 했죠. 늙음은 곧 장애이니까, 차별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정치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수가 고령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봅니다. 정치인부터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노인을 위한 실효성 있는 입법이나 노인노동 보호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급 일터에서 정치에 기대를 거는 노인노동자 동료들을 저는 아직 만나지 못했어요.

- 노동조합에는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 노동조합은 소속 조합원들을 위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여요. 조합원이 아닌 노인노동자들의 문제에 뛰어들 여력도 부족하겠고요. 또한 고령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조합원이 될 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인 일터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비정규직 지원단체들이 하고 있어요. 서울노동권익센터, 각 지자체 비정규직 지원센터들이 나서서 우선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했어요. 이들의 활동으로 고령노동자 보호를 위한 조례가 제정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런 조례들은 대부분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앞으로 노인노동자의 문제를 비정규직 지원센터 같은 기구에 의존하지 말고 노동조합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해요.

조정진 씨가 일하면서 틈틈이 남긴 메모 ⓒ 조정진
조정진 씨가 일하면서 틈틈이 남긴 메모 ⓒ 조정진

- 여전히 ‘메모’를 하고 계신지요. 책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텐데요.
네, 메모는 제 오랜 습관이기도 합니다. 출판 전 초고를 프린트해서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이러더라고요. “이 책이 널리 읽혀 노인노동의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족에게는 이 책을 절대 보이지 말라”고요. 그래서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만한 내용은 따로 많이 뺐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초 2,000매이던 원고가 반으로 줄었습니다. 책에는 직접 겪은 일 위주로 썼지만 보고 들은 것까지 다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일들이 훨씬 많습니다.

- 동료분들은 책을 읽어보셨나요? 
거의 다 읽어봤죠. 그런데 너무 약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에요.(웃음) 제 체험에 국한했기에 들은 이야기는 다 뺐거든요. 동료들은 현실을 다 반영하지 못 했다고 불만들이 많아요. 저도 처음에는 다 써보려고 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직접 겪은 일과는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동료들이 고맙다고 해요. 

- 지금 내용만으로도 놀란 독자도 많을 텐데요. 
몰랐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처음 알았다고요. 이런 노인노동자들의 현실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런 현실들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어요. 

- 독자분들에게 메일도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네, 제 책날개에 메일주소를 썼더니 하루에 수십 통씩 와요. 그런데 책을 읽은 분들은 다 선량한 분들이에요. 책을 읽지 않아도 경비노동자를 무시할 분들이 아니죠. 오히려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분들이 열심히 읽고 감동하세요. 저는 제 책을 정치인들, 고용노동 담당 공무원들, 노동조합 간부들이 꼭 읽어 주셨으면 해요. 실효성이 보장된 정책이 나오려면 실태를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제 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지금 정부는 노인 일자리 개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업적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자리의 개수를 늘리는 것, 아주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일터의 위생 등 노동환경도 노약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사망한 사람은 대부분 노약자입니다. 나이가 들면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일했던 터미널고속에서는 대원들이 이불과 베개를 공동으로 사용하며 서로 딱 붙어 잠을 잤어요. 독감 같은 감염병을 피하려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잤습니다. 그래도 한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했죠. 경비원들은 지금도 밤마다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런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데도 코로나19 상황 내내 노인 경비원의 건강을 신경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노인노동의 현장은 안전에 관한 법령도, 보건에 관한 법령도 무시되는, 무법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복지국가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마음을 다하여 큰 소리로 구하면 응답이 있으리라고 굳게 믿어요. 노동계에서도 노인노동자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