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새로운 줄기, 장애인노동조합
노동운동의 새로운 줄기, 장애인노동조합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증장애인들은 노동할 수 없다는 생각, 장애인노조가 바꿀 것”

[인터뷰] 정명호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

2019년 11월 2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가 출범했다. “왜 노동조합인가?”라는 물음에 “답답해서”라고 답했다. 정명호 지부장은 “취미도 특기도 데모”라 할 만큼 10여 년 동안 투쟁현장을 누볐다. 장애인운동을 해왔고 노동운동 현장에서 연대도 했다. 변화는 더뎠다.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나서야 노동권을 쟁취할 수 있다고 느꼈다. ‘자본주의 사회가 나를 거부하면 자본주의 사회가 내게 맞출 수 있도록 만들자’는 기치 아래 조합원을 모았다.

정명호 지부장은 “이동하는 것도, 교육받는 것도, 탈시설 해서 자립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결국 자아를 성취하고, 먹고살 돈을 버는 ‘노동’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노동권 쟁취가 장애인 인권 향상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명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정명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노조를 출범하기까지 힘들었던 점은?

초동모임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었다. 노조 출범을 위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장애인 동지들과 2017년 12월부터 격주로 모임을 가졌다. 격주라고 해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각자 활동하는 단체가 있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모임을 소중히 여겼고, 노동조합이 출범할 때까지 각종 세미나, 회의, 자료수집 등을 틈틈이 진행했다. 그 결과 전태일 열사 기일 즈음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사전 대회에서 공식 출범할 수 있었다.

노조 출범 준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내가 사는 곳이 인천 계양구다. 언젠가 서울 성동구에서 모임을 했는데, 그날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인천에서 갈아탈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하필 그해 겨울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콧물이 흘러 얼어붙는데, 야간이라 장애인콜택시도 없었다. 추위 속에서 두 시간을 떨다가 겨우 집에 갔다.

삼성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도 기억에 남는다. 삼성은 대기업 중 장애인의무고용률이 최하 수준이고 벌금도 제일 많이 내는 기업이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내는 벌금이 한 해 70억 원이다. 그래서 맛보기로 1인 시위를 했다. 삼성을 상대로 한 첫 번째 공식 시위라 기억에 남고 뜻깊었다.

두 개를 꼽았지만, 사실 출범 준비 중 겪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는다. 노조 출범을 위한 2년은 힘들었어도, 돌이켜보면 즐거운 시간이었다.

장애인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보다 생계비를 지원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언뜻 편해 보이지만, 장애인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발상이다. 그런 시각은 장애인을 철저하게 시혜와 동정의 관점에서 대상화하는 거다. 노동은 말 그대로 복지나 재활이 아닌, ‘몸을 움직여 일하는 행위’이다. 당당하게 일하며 자기가 번 돈으로 먹고사는 생활은 아주 당연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다. 노동이 헌법상 국민의 4대 권리와 의무로 명시돼 있는 것도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초생활 수급 정책에서 일정 부분 어려운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있지만, 이는 아주 최소한의 보장이다. 중증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일할 의지가 있다면 일하며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그 구조를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노조 출범 당시 “어떤 노동조합보다 정부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일이 잦은 노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노동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실업이다. 전체 등록장애인 중 약 65%가 일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등 각종 장애인 실업 대책, 고용 정책들을 변화시키려면 정부와 싸우고 교섭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문제,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실제 등록장애인 비율(4.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 등도 정부를 상대로 풀어야 할 문제다.

노동은 헌법이 규정한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역설적으로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현재 사회 구조에서 중증장애인은 일터에 거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을 할 수 없다는 관념 때문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노동할 수 있는 환경만 뒷받침해주면, 중증장애인들도 노동할 수 있다.

노동절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재난상황 및 노동현장 차별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장에서 정명호 지부장이 보완대체의사소통장치(AAC)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노동절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재난상황 및 노동현장 차별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장에서 정명호 지부장이 보완대체의사소통장치(AAC)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우리는 일할 수 있을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새로운 노동을 정의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자본가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어야만 ‘노동’으로 인정하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에게는 필요(욕구)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고 했다.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살아 숨 쉬는 것, 존재하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잘못된 사회구조에 맞서 싸우는 데모도 중증장애인에겐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열심히 데모하니 장애인 관련 예산이 1조 원 이상 늘었다. 노동자가 생산한 것의 일부를 떼어주는 자본주의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던 일이었다.

장애인 노동을 정의한다면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장애인 노동, 특히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는 문제는 출범 전부터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한 시간에 열 개 생산하는 사람과 한 시간에 한 개 생산하는 사람의 노동 가치를 동등하게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명쾌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그 틀을 깨는 상큼 발칙한 상상력이 나오지 않는다. 참 힘든 일이긴 한데, 아직도 조합원들과 열심히 논의 중이다. 장애인 노동의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서, 정책기획실 등 각 국·실별로 다양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장애인노동조합과 별도로 장애인노동담론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서도 외국 사례나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장애인노조는 민주노총 산하조직으로 출범했다. 노총과 소통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나?

많이 부족하다고 본다. 1995년 당시 민주노총 준비위원회에서 장애인운동 420집회 연대발언을 통해 ‘올해 춘투 단협안에 장애인의무고용 2%를 넣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실행된 적이 없는 거로 안다. 민주노총은 장애인노조와 함께 ‘장애인 노동’의 내용, 그리고 장애 인식 개선을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장애인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나 차별 여부부터 조사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산하조직 내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제안하고 진행 중이다. 이러한 조사 등을 시작으로, 민주노총 내에서 장애인노동자가 한 부문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소외된 모든 이들과의 연대’를 장애인노조의 중요 활동으로 꼽기도 했다.

진심 어린 연대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거로 믿는다.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한 원주민 여성이 한 말이 있다.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왔다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행복이 나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 장애인뿐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많은 소수자가 차별받고 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바람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우리 노조는 얼굴만 빼꼼 내밀고 눈도장 찍는 연대가 아닌, 진정 마음을 담은 연대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갈 거다. 물론 조직력이 일정 정도 담보되어야 하겠지만.

정명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이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정명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 지부장이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올해 장애인노조의 중점 과제가 궁금하다.

무엇보다 조합원을 늘리는 거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 숫자에서 나온다. 조합원을 최대한 늘려 더 큰 노조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사안별로는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 투쟁’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장애인을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단 3개 국가뿐이다. 최저임금은 인간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다. 단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의 노동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현재 보호작업장 등 국가가 운영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체 중 대다수가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다. 이 같은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이 올해 중점사업이 될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부분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들 거다. 지금까지 보수 언론사들이 노동조합을 ‘빨갱이’로 몰고 간 탓이 크다.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고. 하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에게 오아시스다.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은 그 오아시스를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장애인노동조합과 함께 투쟁하며 장애인 노동의 새 지평을 열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