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날고 싶은 나, 너무 큰 꿈인가요?
자유롭게 날고 싶은 나, 너무 큰 꿈인가요?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05.16 07:07
  • 수정 2020.05.1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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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채현 녹색연합 녹색이음팀 활동가 | elephant@greenkorea.org
ⓒ 국립생태원(김영준)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건물 유리창, 투명방음벽 등 전국 56곳에서 조류충돌 발생 현황을 조사했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건축물과 투명방음벽, 폐 사체 발견율 등을 반영해 전체 조류충돌 피해량을 추정한 결과 유리창과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어간 새가 연간 800만 마리, 하루 2만 마리라고 합니다.

“차라리 새들이 펑 터지는 토마토라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어요. 그러면 새들의 유리창 충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를 수가 없거든요.” 국립생태원에서 새 충돌 문제를 연구하고 조사하는 활동을 해 온 김영준 수의사가 전한 말입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지만 그 피해에 비해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아 표현한 답답함이지요. 유리창에 혈흔이 남지 않는 데다 사체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일까요? 하루 2만 마리라는 통계가 무색하게 유리 건축물과 유리 방음벽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국의 안내서에는 12~18m 구간이 제일 취약한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도심 내 가로수 등의 높이가 대개 이 정도 높이까지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는 4층 이하의 낮은 건물의 높이인데 우리나라에 4층 이하의 건물은 약 670만 채로서 전체 건물의 66%가량을 차지합니다. 도로 확장에 따라 지방도와 국도 주변에 경관을 이유로 1~2단 투명방음벽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인데요. 사실상 방음벽은 양쪽에서 새가 충돌하기 때문에 2배의 위험이 있습니다.

새들은 왜 유리창에 부딪힐까요? 투명 유리를 경험으로 학습한 사람과 달리 새들은 투명 유리의 존재를 모릅니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눈이 측면에 있는 새들은 정면에 있는 구조물과의 거리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더군다나 투명하고 반사되는 유리창의 경우, 개방된 공간으로 인식해 그대로 돌진합니다. 사람은 유리에 부딪혀도 이동속도가 느려 큰 피해를 입지 않지만, 새들은 골격 구조가 비행에 최적화되어 텅 비어있는데다 36~72km/h의 빠른 속도로 비행해 큰 부상을 입거나 대부분 즉사합니다. 피해는 멧비둘기, 물까치,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나 직박구리 등 텃새가 대부분(88%)을 차지하지만 참매, 긴꼬리딱새와 같은 멸종위기 야생생물도 포함돼 있습니다.

투명 방음벽에 5*10cm 간격으로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녹색연합 활동가들. 이 경우 새들은 투명방음벽을 장애물로 인식해 피해간다. 

새가 충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기존 건물의 유리창과 투명방음벽을 새의 눈에 띄도록 바꾸는 방법을 시도하면 됩니다. 아직도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 놓은 곳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5×10 규칙입니다. 새들은 높이 5㎝, 폭 10㎝ 미만의 공간은 통과하지 않습니다. 건물 유리창에 높이 5㎝, 폭 10㎝ 간격으로 물감, 스티커 등으로 점을 찍거나 선을 표시하면 새들은 자신이 지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유리창을 피하여 비행하게 됩니다. 줄을 늘어뜨리거나 자외선 차단 시트지를 붙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녹색연합에서는 지난해 두 차례 시민들과 새 충돌을 줄이기 위한 스티커 부착 자원봉사 활동을 진행해보니 연간 약 100마리의 새가 부딪혀 죽던 서산시 649번 지방도의 투명방음벽 구간에서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인 이후 사체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설치된 유리 건축물의 ‘저감방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설치될 유리 건축물에 대한 ‘예방 방안’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식 확산과 제도 변화가 병행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에서는 건축물 관련 규정에 조류충돌 방지를 제도화하고 가이드라인 발간, 충돌 방지 제품 인증이 추진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노력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하늘은 본래 새들이 먹이를 찾거나 가족을 만나러 다니는 삶의 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유리벽을 세워야 한다면 새들이 최소한 유리벽을 피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없는 아침을 맞지 않으려면 말이죠.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