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는 어떻게 위험을 ‘콜’ 했나
콜센터는 어떻게 위험을 ‘콜’ 했나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5.18 00:00
  • 수정 2020.05.18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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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업무 전문성’ 가진 ‘미래 유망 직업’으로 등장
‘노동의 유연화’ 가속화되면서 벼랑 끝으로 몰린 안전

커버스토리 ➊ 우리 시대의 안전은 외주화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의 미래

87체제 넘어서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 바람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노동도 예외는 아니다. 콜센터 노동환경의 문제부터 시작해 재택근무, 노동시간 단축, 공공노동영역의 강화 등 수많은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 변화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변화인지, 아니면 노동의 미래를 바꿀 변화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우리 노동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체제는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시기에 여전히 갇혀 있다. 세계적 흐름이었던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노동의 힘이 세지면서 충돌과 갈등을 전제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흐름과 ‘전투적 협조주의’가 맞서는 시대 또한 겪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체제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를 진단한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불안.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불안은 공포와 다르다. 위협이나 공포의 대상이 필요한 공포와는 달리 대상 없이도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막막함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잘 설명하는 키워드다.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에 불안을 확산시켰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에 대한 불안은 금세 확산됐고, 초기에는 이것이 타인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불안은 노동으로도 확산됐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기침체는 당장 고용불안을 불렀다. 항공, 관광 등의 관련 산업 노동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전히 이 불안은 현재진행형이다.

3월 초 노동환경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코로나19 확진자가 130명을 넘어섰다. 다닥다닥 붙은 공간, 저임금으로 인해 도시락을 나눠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집단감염의 원인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바이러스의 숙주 노릇을 한 셈이었다.

30년 전 콜센터의 시작

이전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콜센터 노동환경이 코로나19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콜센터는 어떻게 위험을 ‘콜’한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꼬박 30년 전 발흥한 ‘콜센터 상담원’이라는 직업의 변천사를 천천히 따라가 보자.

하나. ‘미래 유망 직업’의 탄생

한국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콜센터 상담원이 생겨난 건 1986년이다. 미국계 카드회사인 다이너스에서 최초로 콜센터를 구축한 이후 씨티은행, AIG생명보험도 그 행렬에 동참했다. 주로 외국계 회사들이 자국에서 부흥하던 콜센터 시스템을 국내에도 도입했다.

1990년 12월은 콜센터 상담원이 한국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정착한 때였다. 한국통신(현 KT)이 ‘080 클로버 서비스’라는 수신자부담 전화서비스를 실시한 것이다. 이후 보험업부터 은행, 카드사뿐만 아니라 제조업, 공공기관까지 대대적으로 콜센터가 설치됐다.

이 시기 콜센터 상담원은 ‘미래 유망 직업’이었다. 그냥 전화를 걸고 받으면 되는 단순 업무가 아니었다. 해당 산업과 관련된 정보를 익혀야 했고, 이를 누구보다 잘 설명해줄 고도의 ‘업무 전문성’이 필요했다. 고용형태나 처우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둘. IMF, 직접고용 → 파견노동자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콜센터 상담원이라는 직업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기업들은 외환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비용절감을 모색한다. 1998년 도입된 정리해고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도와주는 수단이 되었다.

기업들은 인건비 절약을 위해 콜센터 업무를 파견업체에게 맡겼다. 파견 노동자들이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한은 원칙적으로 1년이며 이후 협의를 통해 1년 추가하더라도 총 2년이었다. 2년이 지나면 기업들은 파견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해고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파견법 시행 이후 2년이 흐른 2000년 7월 1일 파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파견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어느 기업에서나 상관없이 파견 노동자를 ‘물갈이’했다.

셋. 외주화, 파견노동자 → 간접고용

이후 기업들은 노동자를 파견 받는 게 아니라 아예 콜센터 상담 업무 자체를 분리시켰다. 대기업의 경우 콜센터 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아웃소싱, 곧 외주화를 단행했다.

“아웃소싱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인건비를 빼먹는 구시대 산업이 아닙니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제때 공급해줘 업무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21세기 초고속 성장산업으로 새롭게 인식돼야 합니다.”
2002년 4월 1일자 한국경제, [아웃소싱 대표 주자들] ‘제니엘 박인주 대표’ … “맞춤 人力”

콜센터 업무의 외주화가 확대되자 기존 파견 전문 업체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콜센터업계에 뛰어든다. 2001년 6월 한국통신은 콜센터 전문 파견 인력업체인 KTCS와 KTIS를 동시에 설립한다.

그동안 한국통신은 콜센터 외주업계의 거대 고객이었다. 한국통신이 콜센터 외주업계에 직접 뛰어든 건 중소 외주업체에 큰 타격이었다. 한순간에 주요 거래처가 사라지고 막강한 경쟁업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콜센터 외주업체의 과당경쟁을 불렀다. 계약 성사를 위해 콜센터 외주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도급 단가를 인하했다. 이는 곧 콜센터 상담원의 인건비 절감 및 강도 높은 노무관리로 이어졌다.

콜센터 업무의 외주화와 직접고용 사이에서 대기업들은 갈팡질팡했지만, 2000년대 초반이 되면 외주화 쪽으로 기운다. 그래도 직접고용을 고수하는 업종은 금융사 쪽이었다. 업무전문성에 대한 이슈였다. 비용절감 효과는 있지만 업무 전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신태웅 신한은행 콜센터 실장은 “은행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상품과 서비스지식이 요구된다. 전문 업체는 상담원 관리측면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업무전문성 측면에선 아직도 열위에 있다. 또한 우량고객 DB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 때문에 자체운영이 기본방침”이라고 말한다.
2004년 4월 1일 매일경제, [비즈니스] 콜센터 효율성 논쟁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이 되면 콜센터 직무에 상담원을 직접고용 해왔던 금융사까지 외주화 행렬에 동참한다. 이른바 ‘토털아웃소싱’이다. 비슷한 시기 공공부문에서는 민원인을 위한 콜센터가 처음 설립됐다. 하지만 콜센터 외주 형태의 변화는 없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107 손말이음센터는 2005년 개장 첫해에 직접 운영했지만, 이듬해 바로 외주화를 실시했다. 2007년 서울시 다산콜센터는 개장부터 3개 콜센터 외주업체에 아웃소싱 했다. 다산콜센터가 직접고용으로 전환된 건 10년 후인 2017년이다.

ⓒ 서비스연맹

넷. 코로나와 챗봇, 간접고용 → ?

2017년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주로 공공부문에서 종사하는 콜센터 상담원을 중심으로 직접고용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기준 공공부문 콜센터 업무 직접고용 전환율은 36%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활황이었던 콜센터업계는 정점을 찍고 하향국면을 보인다. 콜센터 상담원은 저임금-고강도-비정규 노동의 대명사가 됐다.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원의 평균 근속은 3~4개월, 평균임금은 131만~150만 원선으로, 정규직 일반의 40~60% 수준에 불과하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더불어 콜센터 상담원들은 공고한 원-하청 구조 아래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신희철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코로나19로 말미암은 ‘에이스손해보험 구로콜센터 집단 감염’ 사태를 예로 들었다.

“예를 들어 이번에 3월 9일 에이스손해보험 구로콜센터의 집단감염이 터지고 나서야 조치가 이뤄졌죠. 그렇지만 집단감염이 터지기 직전인 2월까지 코로나19 대책을 각 사업장마다 만들어야 하니 마니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노동조합이 있는 콜센터에서 ‘마스크 지급이 필요하다’, ‘대책이 필요하다’, ‘아프면 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노사 면담을 요청해도 다 무시했어요. 심지어 노조와의 면담도 무시하니 노동조합이 없는 대부분의 콜센터들은 문제가 있어도 이야기하면 혹시 눈엣가시로 생각되고 불이익을 당할까봐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정규직 노조인 사무금융노조가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대책에 대해서 면담을 하자고 했죠. 그랬더니 이 일은 해당 도급업체의 일이기 때문에 교섭사항이 아닙니다, 딱 이렇게 못을 박더라고요.”

코로나19는 전 세계적 재앙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콜센터 상담원에게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문제제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콜센터업계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칸막이를 높게 세우거나 재택근무를 지원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술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와 대구 콜센터에서 잇달아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산되면서 콜센터 재택근무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 챗봇을 활용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 늘고 있다. (중략) AI챗봇 확산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 아마존은 최근 자사 블로그를 통해 AI 챗봇이 상품 구매부터 취소처리까지 모든 고객 상담을 사람의 개입 없이 진행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올해 말까지 자사의 고객상담 서비스의 85%를 AI 챗봇에 맡길 계획이다.”
2020년 3월 12일, 매일경제. “코로나 걱정없네”…콜센터 AI 챗봇, 24시간 고객만족

콜센터 상담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을 외친다. 하지만 콜센터업계에서는 비용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노동권 보장보다 일시적으로 사태를 무마하거나 아예 노동자를 줄이는 방식의 해법을 찾는다. 신희철 조직국장은 정부도 이러한 업계의 경향에 맥을 같이 한다고 비판한다.

“외형적으로는 콜센터 상담원 자리마다 가림막을 굉장히 높게 세워요. 외형적으로 그나마 바뀌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아파도 휴가를 낼 수 없어요. 고용노동부도 성과평가 등의 문제로 여전히 콜센터 상담원들의 기본적인 노동권이 제한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콜센터 상담원들은 코로나19가 이대로 마무리되고 기존에 했던 것처럼 쥐어짜듯이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게 될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 서비스연맹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기 전에

한국사회에서 콜센터 상담원이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1990년 이후 현재까지 30년이 흘렀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30년의 시간 속에는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특징이 응축돼 있다.

이동통신이라는 최신 기술에 힘입어 등장한 콜센터 상담원은 ‘비용절감’이라는 모토 아래 점점 외주화됐다. 고숙련이 필요한 업무조차 결국 노동유연화의 흐름에 버티지 못했다.

콜센터업계의 원-하청 구조가 공고해지면서 임금은 적어지고 노동 강도는 올라갔다. 아웃소싱이 “인건비나 빼먹는 사업”이 아니라지만, 아직도 콜센터 외주업계는 그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의 유연화에 따라 밀려난 노동자들을 뒷받침 해줄 사회안전망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최신 기술에 콜센터 상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에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곧 노동의 배제와 절약이라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콜센터 상담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국사회 모든 노동자가 맞이한 상황이다. 87년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던져놓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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