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부장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5.18 00:00
  • 수정 2020.05.18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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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절감’ 기조 아래 ‘장시간-저임금 노동체제’
노동의 ‘참여’ 통한 일하는 방식의 ‘노사 합의’ 필요

커버스토리 ➌ 장시간 노동체제,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노동의 미래

87체제 넘어서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팬데믹 바람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노동도 예외는 아니다. 콜센터 노동환경의 문제부터 시작해 재택근무, 노동시간 단축, 공공노동영역의 강화 등 수많은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 변화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변화인지, 아니면 노동의 미래를 바꿀 변화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우리 노동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체제는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시기에 여전히 갇혀 있다. 세계적 흐름이었던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노동의 힘이 세지면서 충돌과 갈등을 전제한 체제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흐름과 ‘전투적 협조주의’가 맞서는 시대 또한 겪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2020체제가 필요하다고 제기한다. 그래서 새로운 노동체제가 과연 가능할 것인지를 진단한다.

화섬식품노조 SG길드(스마일게이트지회) 공식 깃발. ⓒ 스마일게이트지회

신자유주의는 낭비를 싫어한다. 비용절감은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특징이다. 특히 인건비를 줄이려 한다. 많은 고용을 신자유주의는 못 견뎌 한다.

하지만 적정고용과 최소고용은 다르다.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비용절감 논리는 한국사회의 기형적 임금체계와 조응해 장시간 노동체제를 형성했다. 사실 비정상적인 임금체계와 장시간 노동은 노사 간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임금을 억제하던 시절, 노사는 돌파구를 장시간 노동으로 찾았다. 결국 이 불합리는 낡은 노동체제의 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체제가 굳어져 일종의 문화가 되자 역효과가 나타났다. 한국사회 노동자들은 번아웃에 빠질 만큼 장시간-고강도로 일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생산성은 하염없이 추락했다.

이제 기업은 노동생산성을 근거로 들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용을 줄이거나 외부화하려고 한다. 반면 노동은 장시간 노동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용을 늘리거나 최소한 유지해야 한다고 맞선다. 그러나 낮은 노동생산성의 근본적인 이유는 일을 하는 방식에 있다. 장시간 노동체제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일하는 방식의 의문을 제기하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의 여러 풍경을 변화시켰다. 그 중 일터에서 가장 변화된 장면은 바로 재택근무였다. 한국사회에서 익숙지 않았던 재택근무가 ‘강제 도입’되자, 노동자들은 기존 일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료 = 에브리타임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한 재택근무 후기는 ‘웃픈’ 현실을 보여준다. 재택근무 1일차에 “하루 종일 걸렸던 작업을 2시간 컷하고 하루 종일 놀았다. 사무실에서는 왜 효율이 안 날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던 작성자는 재택근무 3일차에 ‘부장님’이 지시한 ‘세미정장’ 화상회의에 좌절한다. 윗옷은 블라우스를 갖추고, 보이지 않는 아래는 추리닝을 입고 참석하던 화상회의는 재택근무 8일차, 우연히 부장님에게 딱 걸리면서 한바탕 뒤집어진다.

이 외에도 ‘부장님’은 코로나19 와중에 금요일 회식을 제안하는가 하면, 무급휴일과 유급휴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키면서 누리꾼들의 분노와 공감을 자아냈다. 다른 한편, 작성자는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점점 향상하는 업무 효율성을 체감하기도 했다. “오전에 회의를 몰아서 하고 오후는 알아서 일하자”는 ‘과장님’의 제안에 작성자는 “이 사람이 미쳤나 싶다”며 매우 놀라워한다.

누리꾼들에게 절절한 공감을 얻은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재택근무가 사무실근무보다 더 나은 근무형태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의 세미정장, 하의 추리닝’으로 상징되는 고답한 일하는 방식에 경종을 울렸다고 봐야 한다. 집에서 일하든, 사무실에서 일하든 애초에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노동생산성의 함정

한 누리꾼의 재택근무 후기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생산성이 낮은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여기서 노동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생산성은 ‘인풋 대비 아웃풋’의 비율로 정의된다. 투입한 생산요소(자본, 노동, 원재료)로 얼마만큼의 생산물(상품, 서비스)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는 지표다. 원리는 간단하나 정량화해 계산하기는 굉장히 까다롭다.

노동생산성이란 여러 생산요소 중 노동이 생산물에 기여한 비율이다. 연간 생산량에 노동자의 수, 노동시간, 노동자의 숙련정도 등을 나누어 계산한다. 여기서 함정은 생산량은 ‘생산물’로 측정되지 ‘매출’, 즉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건이나 서비스나 팔아야만 돈이 된다.

즉, 단순 노동생산성으로는 업종 간 비교가 불가능하다. 예컨대 서비스업종이 제조업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서비스 가격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가별 비교 시에는 각국의 물가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스위스에서 이발하는 비용과 한국에서 이발하는 비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료 = 에브리타임

따라서 노동생산성은 동질적인 업종 혹은 단위 사업장 내에서 시간차를 두고 비교하는 게 옳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에서 분모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이 길면 길수록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공리다. 기계가 아닌 이상 더 오래 일한다고 더 많이 일하는 게 아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하루 종일 걸렸던 작업을 2시간 컷하고 하루 종일 놀았다. 사무실에서는 왜 효율이 안 날까”라는 ‘재택근무 경험자’의 항변을 다시 기억해보자.

우리는 왜 ‘빡세고’
비효율적으로 일하는가

사용자 입장에서는 의심이 들 수 있다. ‘여태껏 2시간에 끝낼 일을 8시간 동안 늘어져서 했던 것 아니야?!’ 소위 말하는 ‘월급루팡’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장님’의 의심과 달리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태업’하지 않는다. 그렇게 늘어지게 일하도록 ‘구조’가 시킨 것이라고 해야 맞다.

한국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체제는 산업화 초기에 형성됐다. 권위주의 정부는 경제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자본을 일방적으로 밀어줬다. 하지만 당시 근로기준법에는 ‘주6일 하루 8시간, 가산 수당은 1.5배’ 원칙이 존재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자본은 가산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을 최소화한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기본급이 낮은 배경이다. 노동자들은 정규 근무시간으로는 생계비를 벌 수 없어 장시간 노동을 통해 만회했다.

한국의 산업화가 성숙된 이후 장시간 노동체제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주5일제 도입이나 최근 주52시간 상한제 도입과 같이 법제도 개선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도모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은 행정과 입법 및 판례의 엇박자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 사이 한국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1991년 “새벽 3시의 커피타임”이라는 삼성전자의 광고 문구와 같이 ‘인재’의 조건에는 남들보다 오래 일하는 것이 포함됐다. 사무실에서 오래 일하고 봐야 ‘이쁨과 인정을 받는 유능한 신입사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 일 시켜도 페널티는 없었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체제가 문화적 현상이 아닌 제도로 표출된 사례다. 비교적 신산업에 속하는 IT 및 게임업계에 만연하다. 지난 2019년 10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스마일게이트지회(이하 SG길드)는 노동조합 조직 이후 회사와 교섭으로 포괄임금제 폐지에 합의했다.

포괄임금제는 일상적으로 주40시간 이상 초과 근무할 경우, 초과근무수당을 날마다 계산하여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약정된 금액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자율출퇴근제, 탄력적 근무시간제 등과 같이 법률에 명시된 제도는 아니며 판례와 행정해석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2018년 7월 1일 주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선택적 근무시간제를 도입했다. 한 달 기준으로 160시간을 일하되 평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필수업무시간(코어타임)을 적용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는 폐지하지 못했다. 약정된 시간을 추가 근무하고 수당을 따로 받았다.

그러다보니 주52시간 상한제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시행 이후에도 노동시간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오히려 주52시간을 넘어서 근무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2018년 10월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스마일게이트, 넥슨 등에서 주당 근무시간이 주52시간을 넘을 경우 근무시간 입력시스템이 자동으로 꺼지는 꼼수 운영을 폭로하기도 했다.

ⓒ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

법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부실하기에 발생한 일이기도 했다. 차상준 SG길드 지회장은 포괄임금제 폐지 이후에서야 실제적인 변화가 감지됐다고 말한다.

스마일게이트의 경우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다른 게임업체와는 달리 포괄임금제 폐지 이전에 받던 연봉 모두를 기본급화 하는 데 성공했다. 기본급에 각종 수당이 붙는 임금체계에서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했다. 이러한 조건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한 후 6개월가량이 흐른 지금 차상준 지회장은 “조직 내부의 문화자체”가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팀장, 실장 등 조직장이 바뀌었어요. 한 직원이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업무가 과도하게 많으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상승돼요. 그렇게 되니까 연속적으로 야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예쁜 게 아니게 된 거죠. 기본급 100%가 되니까 가산수당도 엄청나게 올라갔어요. 게임업계 노동자들은 살면서 수당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다가 풀로 근무해서 수당을 받아보니 한 30~40% 가까이 더 금액이 더 나오거든요. 그렇게 처음 받아보고 여태까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 묻기도 하더라고요.”

과거에 회사는 포괄임금제로 추가 근무가 당연시되니 일을 시키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가근무에 따른 가산수당이 “채용을 하는 게 나을 정도”로 늘어나자 소정근무시간 내에 일을 완수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업무의 효율성을 자율적으로 모색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포괄임금제 폐지 이전에는 소정근무시간 안에 일을 마치지 못했어도 ‘야근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면, 폐지 이후에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스스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됐다.

“회사가 관성대로 일을 시키면 전체 인건비가 갑자기 40%가량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와요. 그렇게 되니 회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그렇다고 해서 생산성이 떨어졌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포괄임금제 폐지 당시 엄청 많이 토론했어요. 교섭하면서도 회사에서 문제 있는 것 아니냐, 생산성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했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회사의 매출이 크게 떨어지는 게 없었어요. 지금까지의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거죠.”

포괄임금제 폐지 이후 게임업계에서 논란이 됐던 주제는 ‘근태 관리’였다. 노동조합이 없는 넷마블 같은 경우에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15분 이상 자리를 비울 시 근무시간에서 차감하기로 결정했다. 커피를 마시든 담배를 피든 화장실을 가든 15분 이내로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넥슨의 경우에는 15분 이상 비우는 경우 근무시간에서 차감되나 소명이 가능한 구조다. 엔씨소프트는 업무공간과 비업무공간을 구분하고 비업무공간에서 5분이상 머무르면 근무시간에서 제외된다. 다만, 비업무공간에서 업무를 한 경우에는 소명을 받을 수 있다. 사용자 나름대로 노동자들의 생산성 관리에 나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노동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

원-하청 불공정 구조,
하청업체 노동자는 번아웃될 수밖에 없다

포괄임금제 폐지는 사용자로 하여금 어떻게 일을 효율적으로 시킬까를 생각하게 했다. 손해비용이 커지니 회사도 효율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를 원-하청 관계에서 하단부에 있는 중소기업에까지 적용하기는 한계가 있다. 도급비용은 고정돼 있고, 인건비를 줄이는 만큼 이윤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쥐어짜듯’, ‘사람을 갈아 넣는’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인 예가 콜센터업계다. 현재 일부 공공기관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에서는 콜센터 업무를 하도급으로 운영하고 있다. 콜센터 상담원들은 원-하청 구조 아래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기본급과 성과연동 인센티브제라는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콜센터업계의 성과평가는 상대평가로 구성되며 보통 5등급으로 세분화된다. 가장 하위 등급은 인센티브가 없거나 CJ텔레웍스 같이 기본급을 차감하는 곳도 있다. 가장 높은 등급과 가장 낮은 등급의 인센티브 차이는 대개 40만~50만 원 정도다. 이러한 임금구조상 콜센터 상담원들은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신희철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대부분의 콜센터는 주기적으로 응대실적보고서를 제출한다. 또한, 상시적으로 상담원 전체의 콜 실적이 얼마나 되는지 전체가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올려둔다”면서, “이렇다 보니 상담원들은 어떻게든 최대한 콜을 많이 받아야 하는 구조다. 친절하게 콜을 받으면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콜센터업계는 상담원들이 성과에 쫓겨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통화 품질 관리’에 대한 부분을 강압적인 노무관리로 대응하고 있다. 신희철 조직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경기도 콜센터 상담원들이 2018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그때 주요사항 중 하나가 피드백을 하려면 휴게실에 가서 피드백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관리자가 다른 사람들 모두 있는 곳에서 ‘전화 제대로 안 해?’ 하면서 소리 지르는 게 많으니까요. 상담원 입장에서는 인간 모욕이죠. 또 말투나 문구 하나를 누락한 것도 성과에 반영돼서 감점이 돼요. 정말 친절하게 통화하더라도 말실수 한 번으로 인센티브가 갑자기 깎이는 경우가 있죠. 90콜 정도는 열심히 잘 했어도 1콜에서 실수가 있다면 현장에서는 하루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노동의 ‘참여’가 해법이다

사용자들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 결국 ‘혁신’이 필요하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이윤창출 방식이 노동자를 혁신의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올리고,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지 않는다.

이 경향은 중소기업으로 가면 더 커진다. 지급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최소한 노동법의 테두리를 지키는 내에서 노동 강도 강화를 도모하거나 효율적인 운영방식을 고민할 여유가 있다. 하지만 원-하청 구조의 밑바닥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은 노동법 위반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갈아서’ 만든 이윤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기업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나, 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나 노동자들은 기업들이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혁신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동의 참여를 기업만의 고유한 권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상준 SG길드 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임금시스템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요. 그리고 바뀌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선순환 구조로 갈 수 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임금체계나 평가구조에 의견을 개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특히 인사권이라고 해서 대화 자체를 막아버리잖아요? 그런데 인사권이라는 게 달리 생각하면 노동자가 노동자를 평가하는 구조이기도 하거든요. 왜 노조는 의견을 낼 수 없냐는 의문이 들어요.”

코로나19를 ‘절대평가’ 도입 계기로

콜센터 상담원들은 성과연동형 인센티브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보다 상대평가로 성과가 측정되는 방식이 상담원을 괴롭히는 동시에 전반적인 상담의 질에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콜센터업계에서 상대평가제도는 맹신에 가깝다.

신희철 조직국장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져도 최소한 상대평가제도만큼은 교섭 주제가 아니라고 사용자들이 이야기한다. 기업의 인사권이라는 것”이라며, “서울시 다산 콜센터 상담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 서울시에서 선도적으로 절대평가제를 도입하자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는 상대평가에 대한 콜센터업계의 절대적인 믿음을 부수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시와 다산 콜센터, 노동조합이 코로나19로 전화 민원이 쇄도하면서 한시적으로 개인평가와 콜센터 기관평가를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콜센터 상담원들은 서울시 다산 콜센터의 실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동자를 줄 세워 평가하는 방식만이 ‘더 많고 더 질 좋은 전화 상담’을 가져오지 않음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프론티어 정신’이 덕목인 사용자들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아래 여태까지 관성적으로 이어온 일하는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생한 말을 믿지 못하는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만만찮게 할 말이 많다. 터놓고 이야기를 듣자. “부장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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